| 전복과 교란 |
|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83) |
하루종일 노랑
김병호
후밋길을 돌아서자 화물차 한 대가 멈춰 있다
짐칸에선 오리들이 뛰어 내리고
길섶에선 바지춤 잡은 사내가 튀어나오고
낙화유수
탈주를 시작한 오리들
국도의 흙길을 가로질러
밭둑으로, 수풀 속으로 헤맨다
사내는 오리걸음으로 이리저리
헤매고
길섶이든 산기슭이든
오리들, 제 세상이다
꽥꽥거리는 노란 울음, 모퉁이에 번진다
몇이 비탈을 올라 옥수수밭으로 스미자
옥수수들은 그제야 노래진다
몇이 밭둑을 올라 참외밭으로 기울자
참외들도 따라 노래진다
벼락처럼 열리는 노랑들
여름을 막고 서 있는 노랑들
운전사도 노랗게 뒤뚱거리지만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 못한다
즐거운 교란이다. 눈앞이 환하게 열린다. 온 세상이 노란색으로 뒤뚱뒤뚱 만개한다. 제목 그대로「하루종일 노랑」이다. 잠시 화물차가 멈춰 선 사이 새끼 오리들의 탈주가 감행된 것이다. 큰일 났다. 차를 세워놓고 길섶에서 소변을 보고 온 운전기사는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모른다.
문명의 속도를 버린 오리, 정해진 국도 대신 밭둑과 수풀 속으로, 야생의 숨결 속으로 줄행랑을 놓는다. 비로소 오리 세상이다. 그것도 부화한 지 얼마 안 되는 새끼 오리들이다. 꽥꽥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져 탈주하는 오리들이 옥수수밭과 참외밭을 노랗게 물들인다. 그야말로 ‘벼락처럼 열리는 노랑들’이다. 신나는 반란이요 교란이다. 속도와 규격을 내동댕이친 오리들이 펼치는 신세계를 독자들은 즐거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눈길 하나하나도 노랗게 물들어 참외향이 난다.
지나는 다른 차들은 정차하거나 서행하면서 즐거운 반란의 드라마를 관람하고 있었을 것이다. 절묘하게 차용한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 점점이 떨어지는 꽃(오리)들을 보며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덩달아 유채꽃이나 양지꽃으로 피어났을지도 모른다. 속도에 취해 달리던 화물차 기사는 망연자실 노랗게 뒤뚱거리며 오리들의 뒤를 쫓고 있다.
이러한 희극적 상황은 곧 문명에 대한 은밀한 풍자이다. 쾌속으로 질주하는 차량과 속도를 막고 서 있는 오리들의 모습을 대비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넘실거리는 노랑의 환희가 오리 덕분에 갓 부화한 세상을 활짝 웃게 한다. 획일화되고 규격화된 일상의 질서를 전복하는 불온한 시선이 가져다주는 귀한 선물이다. 그리하여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 못’하고 킬킬 클클 껄껄거리며 지나가는 것이다. 모처럼 재미있는 시를 만났다. 머잖아 뒤뚱거리며 봄이 걸어와 지상의 밤을 노랗게 전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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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문화저널2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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