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문태준 나란히 새 시집 - "석남이 형 섬세한 서정 좋아"… "태준아, 시 독립성 지켜 고맙다"
1993년 겨울 무렵이었다. 서울 정릉 산꼭대기, 시로 갓 등단한 대학생 김연수의 허름한 자취방. 연탄보일러의 난방 호스마저 쥐가 갉아먹어 냉골 그 자체였던 자그마한 쪽방에 시인 지망생과 다섯 살 위 등단 시인이 마주 앉았다. 습작 뭉치를 늘 품고 다니던 김연수의 고향 친구 문태준과 스물여섯에 펴낸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으로 김수영문학상의 쾌거를 이뤘던 장석남. 그나마 엉덩이 밑에 걸친 스티로폼 조각 하나(물론 집주인과 시인 지망생은 이마저도 없었다)에 의지해 통음했던 가난한 겨울밤이었지만, 선배는 문태준의 품에서 나왔던 원고를 기꺼운 마음으로 응원하고 격려했다. 이듬해 시인 지망생의 신분을 시인으로 격상시켰던 문태준의 등단작 '처서(處暑)'였다. 두 시인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했다.
장석남(47)과 문태준(42)이라는 이름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서정시의 적자(嫡子). 받은 상보다 받지 않은 문학상을 헤아리는 게 더 빠른 이 두 시인의 새 시집이 지난주 나란히 출간됐다. 장석남의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와 문태준의 '먼 곳'(창비)이다. 20년째 호형호제하며 문우로 지내온 두 시인은 늘 그렇듯 허물없다. 호방한 형은 "이 녀석이 내는 줄 알았으면 나는 좀 뒤로 미뤘을 텐데"라며 껄껄 웃었고, 동생은 느릿느릿한 말투로 "형 특유의 섬세한 서정이 역시 좋더라"며 소처럼 눈을 끔벅거린다.
장석남(47)과 문태준(42)이라는 이름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서정시의 적자(嫡子). 받은 상보다 받지 않은 문학상을 헤아리는 게 더 빠른 이 두 시인의 새 시집이 지난주 나란히 출간됐다. 장석남의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와 문태준의 '먼 곳'(창비)이다. 20년째 호형호제하며 문우로 지내온 두 시인은 늘 그렇듯 허물없다. 호방한 형은 "이 녀석이 내는 줄 알았으면 나는 좀 뒤로 미뤘을 텐데"라며 껄껄 웃었고, 동생은 느릿느릿한 말투로 "형 특유의 섬세한 서정이 역시 좋더라"며 소처럼 눈을 끔벅거린다.
덕수궁 돌담길을 20년 문우(文友)가 따라 걷는다. 선배 장석남(오른쪽)이 도망가는 고요를 불러세우고, 후배 문태준은 저 멀리 있던 서정을 품에 담는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문태준의 새 시집 '먼 곳' 역시 영혼의 강장제다. 시인은 '푸른 수초 사이를 어린 피라미떼가 헤엄치고 있었다/ 그걸 잡겠다고 소매를 걷고 손을 넣은 지 몇 핸가/ 가만가만 있어라,/ 따라 돌고 따라 흘렀으나/ 거기까지 가겠거니 하면 조금 더 가서 알을 슬고/ 알에서 깨어난 것은 녹을 듯 눈송이같이 눈이 맑았다'('은하수와 소년' 전문)며, 푸석푸석해진 현대 영혼의 피폐한 체력을 증진시킨다. 형은 "이전보다 리듬감을 살리려 한 점이 좋았다"면서 "특히 종교나 사회로 빠지지 않고, 예술장르로서 시의 독립성을 지키려 한 노력이 고맙다"고 했다.
20년 전 정릉 시절만 해도 말갛던 청년들은 이제 거역할 수 없는 중년이 됐다. '덕적도 섬소년' 출신 장석남과 김천 출신 문태준이 빈 맥주병을 늘려가며 흘러간 20년을 더듬는다. 춘천 한 초등학교의 빈 교실에서 밤새 춤을 추며 보냈던 청춘 시절, 오직 캔맥주만 팔다가 망했던 '술집 주인 장석남'의 옛 술집 '8과1/2'에서 통음한 기억….
두 시인의 시집은 독자들에게 고요를 초대했지만, 정작 두 사람 사이에서 고요는 먼 곳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2012년 겨울의 광화문에서, 그렇게 또 하나의 서정이 태어났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26/2012022601325.html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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