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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96) - 존재의 혁신에 대한 염원

문근영 2013. 12. 18. 12:44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96) - 존재의 혁신에 대한 염원

 

 

 

발의 고향
 
최문자

내가 나라는 때가 있었죠
이렇게 무거운 발도
그때는 맨발이었죠
오그린 발톱이 없없죠
그때는
이파리 다 따 버리고
맨발로 걸었죠
그때는
죽은 돌을 보고 짖어대는
헐벗은 개 한 마리가 아니었죠
누구 대신 불쑥 죽어보면서
정말 살아있었죠
그때는
그때는
세우는 곳에 서지 않고
맨발로
내가 나를 세웠죠
그때는
내가 나를 세웠죠
그때는
내 이야기가 자라서
정말 내가 되었죠
불온했던 꽃 한철
그때는
맨발에도 별이 떴었죠
그 별을 무쇠처럼 사랑했죠
날이 갈수록
내가 나를 들 수 없는
무거운 발
가슴에서 떨어져나간 별똥별이죠
발도 고향에 가고 싶죠
 
 
#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시는 늘 설렘과 기대로 다가온다. 최문자 시인의 「발의 고향」은 모두에서 상실의 정서를 드러내 보여주면서 다양한 변주를 통해 잃어버린 존재의 내용들이 무엇인지 대립적 긴장의 구조로 제시한다. 기표의 연쇄를 따라 확산되는 기의의 파장은 텍스트의 전면으로 나타나 읽는 이를 압도한다.
 
낡은 의미의 세계를 전복하며 “발”은 살아 움직인다. “맨발”은 “무거운 발”과 대립각을 세우고 새로운 시의 어법으로 생동한다. “맨발”은 내가 나였을 때 즉 자아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을 때 “오그린 발톱” 하나 없었던 시절의 본원적 모습이다. 또한 생의 근간, 튼실한 뿌리로 우뚝 서 있던 형상이다.
 
한편 온갖 잡다한 이파리는 본질을 은폐하는 허식적 수사로 “헐벗은 개”의 시절을 은유하는 사물이다. 즉 남을 위해 희생하지도 않고 단지 허수아비처럼 피동적 주체로 살아가던 삶이다. 
 
화자는 끝없이 순수 근원의 삶을 지향한다. 창조적 주체로서 우뚝 서기를 염원하지만 현실은 그에 부응하지도 못하고 피폐한 존재의 양상을 드러낸다. 이 시는 시종 이전과 이후의 삶이 대립 충돌하면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다. “불온했던 꽃 한철”을 그리워하면서 “맨발”에 뜨는 “별”을 향한 화자의 내적 열망은 존재의 갱신을 기도하는 지난한 몸짓이다. 그러나 오욕의 현실 속에서 “별”은 반짝이지 않고 경쾌하게 비상할 수 있는 “맨발” 또한 요원하다. 이러한 현실을 혁파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신생을 향한 염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날이 갈수록 / 내가 나를 들 수 없는 / 무거운 발”이 앞을 가로막는다. 하나의 “별똥별”로 생존을 이어가는 존재의 형상이다.
 
그러나 화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발의 고향인 “맨발”의 세계로의 귀환과 도약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오욕의 삶을 견디는 한 방법이고 생의 동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발”이 가야할 곳은 생의 근원이 숨쉬는 비의의 자리며 가장 온전한 궁극의 존재가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다.
 
능동적이고 창조적 주체로 서고자 하는 것은 본래적 자아를 지향하는 욕망의 발현이고 표상 세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즉 다중의 질서와 관념에서 벗어나 고유성과 개별성을 지키면서 실존하고자 하는 열망이「발의 고향」의 뿌리이며 모태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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