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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조와 더불어, 한국 현대사의 고개들을 넘으며 / 박진임 문학평론가

문근영 2013. 11. 7. 11:56

시조와 더불어, 한국 현대사의 고개들을 넘으며

 

                                                          박진임 문학평론가

 

 

태학사 간 《우리현대시조 100인선》의 31번 시집 《절정의 꽃》은 김호길의 문학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거기 수록된 약력을 살펴보면 1965년 ‘율’ 시조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이듬해 1966년에는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조종사로 일했음을 볼 수 있다. 1967년에는 작품 〈하늘 환상곡〉으로 《시조문학》 추천을 완료하는가 하면 1973년에는 육군 대위로 전역하여 대한항공 국제선 조종사로 근무를 시작한다. 아직도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궁핍한 경제상황 속에서 국경을 넘어 하늘을 난다는 것은 많은 한국인의 로망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 직업을 가진 이가 ‘고답적’이라느니 ‘시대착오적인 음풍농월’이라느니 하는 폄하의 대상이 되곤 하는 시조라는 문학 장르를 택하여 창작활동을 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를테면 전위적이라 할 만했던 직업과 가장 전통적인 장르의 문학…… 이 점은 김호길 시인의 시세계의 구조를 규명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한다.

 

김호길의 시조를 읽으면서 한민족, 한국의 민족주의, 한국어, 한국문학, 그리고 전지구화(globalization)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살아온 그의 삶의 여정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은 어떤 의미를 가지면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가? 전통, 그중에서도 특히 시조가 대표하는 한국의 전통은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하는 질문들이 그의 시조 작품 읽기 과정을 지배한다.


김호길 시인의 인생 항로는 반도라는 좁은 영토를 벗어나 하늘길을 찾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1981년에 그는 대한항공을 사직하고 도미하여 미주 〈중앙일보〉 문화 담당 기자로 새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또 한 번 방향 전환을 하여 1984년에는 해바라기 농원을 설립하고 미국 국경을 넘어 멕시코 땅에 농장을 일구게 된다. 그리하여 이제는 성공한 벤처 농업인으로 두루 인정받고 있다. 끊임없는 모색과 변신을 추구하면서도 한 손에는 창작의 펜을 놓지 않아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상재하였다.

 

그러므로 1981년 이후의 김호길의 창작은 ‘전 지구화’라는 시대적 변화와 그를 동반하는 디아스포라 한국문학의 문제와 연결해서 살펴야 한다. 최근 학계에서 자주 논의되는 민족과 민족주의 담론을 적용하여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문학적 주제와 소재를 김호길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조 작품들은 물론이요, 그의 인생 이야기 또한 이 주제에 함께 부응한다. 그의 생애는 곧 한국 현대사의 고비고비를 증언한다. 그는 일본제국주의 지배의 말기에 태어났고, 196,70년대의 산업화 시대를 경험했다. 그 산업화의 한 중심 축이었던 한진그룹의 부상을 목격했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직접 이에 기여하기도 한 것이고, 박정희 정권하의 베트남전 참전 경험―김호길 시인은 헬리콥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바 있다―, 아울러 이민과 개척의 삶까지 직접 이루어낸 것이다. 그리고 부연하거니와 그 단조롭지도 순조롭지도 않은 길을 더듬어 헤매며 나아간 그의 인생항로에 나침반처럼 함께한 것이 ‘시조’라는 ‘고답적’이고 ‘복고적’인 전통의 문학 양식이다.

 

김호길 시인은 시조를 줄기차게 쓰면서 디아스포라 주체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 온 것이다. 한민족의 일원임을 자신에게 부단히 상기시키고 미주 땅에서 민족문학의 맥을 이어가는 데 기여해왔다. 한국 소설사에서 안수길이 북간도의 체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일제강점기 말기, 이른바 한국문학사의 암흑기의 공백을 메워왔고 그 문학사적 재평가가 최근에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은 김호길 시인과 같은 디아스포라 문학인의 정체성과 가능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과 같은 전 지구화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한국문학의 경계가 물리적 국경을 넘어 문화적 국경으로 변경될 날도 머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디아스포라 한국문학의 최전방에서 다시 비행기를 모는 문학 조종사이며 사막 땅을 농원으로 일구어가는 문학의 벤처 농경인이라 할 것이다.

 

김호길 시인은 멕시코 농장 경영의 과정에서 느낀 남다른 감회를 한편 수필로 써서 《바하사막 밀밭에서》라는 수필집으로 펴낸 바 있다. 시조라는 정제된 형식을 통하여 암시적으로 드러나던 그의 삶의 단면들이 수필집에서는 분명한 색깔과 목소리로 재현되어 있다. 수필 전편을 통하여 그는 척박한 사막에서 조우하는 밤하늘의 아름다움과 코요테, 선인장과 순박한 이웃들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조태일은 “풀씨의 고향은 바람이 멎는 곳”이라고 노래한 바 있다. 마음이 머무는 곳, 거기가 바로 고향이라 했듯이 김호길 시인은 한반도 땅을 떠나 확장된 공간으로 고향을 끌고 다니는 시인이다. 경상도 사천 땅에서 보던 봄날 아지랑이와 새울음 소리, 빗소리와 어머니의 그림자는 멕시코의 바하캘리포니아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는 한국 디아스포라 문학의 맥을 살피는 데 중요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국경을 벗어난 국외자의 경험과 향수로 ‘디아스포라’를 언급한다면 그 의미는 반감되고 말 것이다. 그가 벗어난 국경은 물리적, 지리적 국경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한국 국경을 벗어나 있음으로 하여 한민족의 제한된 경험의 반경을 연장하고 있으며, 한국 현대 시조의 소재와 주제의 영역을 개척하고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조국에서도 각광받지 못하는 시조라는 양식을 평생 붙들고 그 양식을 지상이 아닌 하늘에서, 한국이 아닌 베트남과 하와이, 캘리포니아에서, 더 나아가 멕시코에서 실험하고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김호길 시조의 성격을 살핌에 있어 민족과 이산의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시인 자신이 ‘민족과 모국어의 관계’에 대해 매우 뚜렷한 신념을 갖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그의 수필을 인용해본다.


유태인들은 타국 생활을 몇 천 년, 몇 세대에 걸쳐 오래도록 하고 있지만 지금 세계의 어느 나라에 살든지 그들은 그들의 풍습과 고유한 전통과 종교를 지키며 그들만의 공동체를 잘 유지하고 있는데 왜 우리 한인들은 구심점이 없이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적 구심점과 신의 백성이란 선민의식이 없는 점이 근본 원인일 것이고,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는 단체가 세대를 이어 오면서 내려오지 못한 점도 원인으로 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한글을 가르쳐 언어로 연결되지 못한 점을 근본원인으로 볼 수 있다. 말과 글을 가르쳐 언어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었더라면 그렇게 한민족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하사막 밀밭에 서서》, p.146~7

 


위의 글은 최초의 멕시코 이주 한인들의 후손을 시인이 조우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1천9백 년경 약 1천 명 남짓의 한인이 유카탄 반도로 대거 이주한 바 있다. 그들은 멕시코에서 멕시코인으로 완전히 동화, 통합되어 버린 것이다. 그 후손들이 한민족의 흔적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면서 시인은 민족의 존재와 그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민족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차대전 이후 천 년 전에 사라졌던 국가를 부활시킨 후, 이미 사어화되었던 히브리어를 부활시킨 사실은 시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널리 통용되는 이디시(Yiddish)어와 경합을 벌이며 히브리어는 아직도 민족어로서 구실을 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러한 맥락에서 되새겨봄 직한 일이다.

 

김호길 시인은 멕시코 농장 근처에 있는 라파즈 집에까지 시조 잡지를 옮겨다 놓고 짙푸른 멕시코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조를 통하여 삶의 결을 다듬는다. 라파즈 지역의 아름다움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헤밍웨이가 한때 라파즈에 살면서 창작활동을 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충분할 것이다. 무시무시하도록 맑고 푸른 바다, 아주 건조한 모래땅, 그 마른 흙 사이에 뿌리내린 강인한 식물들, 또 그 식물들이 사력을 다해 물관부로 끌어올린 생명수를 마시고 피어난 정열적인 꽃들…… 바다는 잔인하게 푸르고 꽃은 미당 표현대로 “셤하도록” 붉다. 멕시코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Frieda Carlo) 그림에 보이는 꽃과 새가 왜 그리 섬뜩하리만치 분명한 색깔인지를 상기하면 멕시코의 경치가 마음의 수평선에 펼쳐질 것이다.

 

멕시코의 단순하고 선명한 색채와 풍경은 우리 시조의 내적 형식을 닮아 있다. 군더더기는 다 잘라내고 정수(精髓)만 남은…… 미지근한 중간의 색깔은 버리고 가장 강인한 극단의 색깔만 멕시코 풍경이 간직하듯이 시조의 언어 또한 그러하다. 설명하지 않는다. 제시한다.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훈련받은 독자, 리듬을 사랑하고 아껴 쓰는 말의 인색한 잔치에 기꺼이 동참할 의사를 지닌 제한된 취향의 독자를 향해서만 속살을 내보이는 것이 시조다. 그리하여 시조를 엘리트들의 전유물, 유한 계층의 ‘음풍농월’이라 부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시조의 멋과 맛은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은 단연코 아니다. 백석 시에 보이는 풍속의 성실한 재현, 고은의 《만인보》에 나타나는 질척한 사람살이의 모습,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요즘 몇 시인들의 친절하고 포근한 서정성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시조를 멀리해도 좋으리라. 헤밍웨이의 문체를 닮은 소설가 김훈의 문체를 두고 다른 소설가가 “참 인색하게 글쓴다” 고 했다더니, 시조만큼 인색한 글쓰기 형식은 달리 없을 것이다. 그런 시조의 간결하고 강렬한 양식은 김호길 시인의 기질과 부합하는 면이 있다. 요체에만 집착하고 군더더기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그는 삶을 개척해 온 것이다. 매우 도전적이며 선이 굵으면서도 동시에 섬세하고 서정적인 세계가 김호길 시인을 특징짓는다.

 


하늘을 나는 꿈에

 

김호길 초기 시조는 하늘을 나는 꿈에 닿아 있다. 조종사 경험이라는 시적 소재는 현대 시조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3만5천 피트쯤
밀려온 구름 한 자락
3만5천 피트만큼
속편해진 심사인지
이승엔 편한 날 없는
날 잡아 흔드노니

 

―〈난류〉

 


3만5천 피트와 난류, 이는 비행기 조종사에게 허여된 독특한 시적 제재에 해당한다. 공기에는 4가지 다른 성격의 권역이 있어 비행기는 처음 대기권을 통과하여 그보다 한 층위 위인 성층권에서 운항한다고 한다. 성층권에서는 기류 변화가 거의 없어서 비행기가 순항할 수 있고 기류의 저항이 가장 적어 연료의 소모도 가장 덜한 까닭이라고 한다. 그 순항고도가 국제선 비행기의 경우 35,000피트이다. 조종사는 35,000피트를 날아오른 다음에는 한숨 돌리고 순항을 기대함 직한데 간혹 난류를 만나면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치게 된다.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시인인 조종사는 이렇게 한 편의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구름은 순항고도에서 속 편하게 흐르는 한편, 조종사 시인은 난류를 만나면 마구 흔들릴 따름이다. 이를 두고 시인의 인생에는 순항고도가 없다고 노래한다. “이승엔 편한 날 없는”이라고 노래한 부분이 그것이다. 하늘이라는 공간의 이미지, 비행기, 35,000피트의 고도, 구름…… 이는 모두 상승과 초월의 이미지를 지니고 그 상승과 초월은 구속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인은 하늘조차 이승인 한, 편한 날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난류가 초래한 요동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정수리를 꼭 찔러 보이는 시조의 ‘시조됨’이 이 한 수에서 한껏 발휘되고 있다. 제목 ‘난류’가 아니었으면 독자는 이 시가 무엇을 노래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난류’를 소재로 취하면서도 ‘난류’에 대한 직접 제시나 언급은 찾아볼 수가 없다. 소재는 항공 모티프에서 취하면서 주제는 인생에 있다. 초장과 중장은 상황 설명과 묘사에 바쳐지고 종장은 급선회하여 초·중장이 배경으로 작동하며 제시하고자 한 주제를 향하여 돌진한다. 시조를 연구한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시조의 초·중장과 종장이 매우 상이한 성격의 것들이며 시조가 3장으로 구성된 것은 두 이질적인 요소가 변증법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매우 특이한 경우임을 지적한다. 즉, 초·중장은 서경(敍景)에 바쳐져 시적 화자가 경험하거나 관찰한 바가 그려지고 그 결과 일종의 배경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종장에 이르면 성격이 완전히 달라져 시적 화자는 종종 깨달음을 얻거나 초·중장에 제시된 배경을 바탕으로 내적 성찰에 이른다는 것이다. 위는 초·중장은 서경, 종장은 서정(敍情)이라는 두 이질적인 시적 요소의 변증법적 결합이라는 시조 3장 구성의 원리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시조의 예라 할 것이다.

 

〈해발 삼만 구천 피트〉는 위 시와 짝을 이루면서 동시에 확장된 시적 공간을 보여준다. 이 시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시인의 독특한 경험 공간과 그만큼 독창적인 상상력의 세계이다. 이를 두고 현대 시조의 상상 공간, 그 외연의 확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1.
해발 삼만 구천 피트 한 발 먼저 질러 와서
한사코 달려들다 부서지고 뒹구는 바람
남위도 성난 바람은 천둥 허리를 타고 온다

태평양 파도 이랑에 그림자 벗어두고
야생마 길 못들인 기류를 헤쳐나면
햇볕과 바람만 그득한 하늘 속의 하늘 나라

고층운 상상봉에 눈도 맘도 헹구어 낸
순백의 부신 평원 한나절을 널어놓고
구만리 장천(長天)을 쪼아 봉황으로 나른다.

2.
한 생애 험난한 항로 멀고 먼 각고의 길을
나와 동승한 그대 운명을 같이 지고
만리도 시름에 젖는 어둔 밤의 여로여

 

―〈해발 삼만 구천 피트〉

 


앞서 든, ‘난류’가 난기류 앞에서 잠시 인생을 들여다보는 시로서 한 장면의 사진처럼 ‘순간의 포착’에 바쳐진 재미있는 상상력의 발현이라면 〈해발 삼만 구천 피트〉는 조종사의 상상력에 포착된 인생의 진경산수화와 같다. 그 정경들은 먼저 난류 앞에서 흔들리는 비행기를 보여준다. 이윽고 위태로운 순간을 지난 다음의 순한 ‘햇볕’과 ‘바람’의 축복, 그리고 그 축복 속의 순항의 이미지가 전개된다. 삼장에서는 ‘순백의 평원’과 ‘구만리 장천’의 이미지와 더불어 ‘봉황’의 이미지가 제시됨으로 하여 조종사가 경험하는 희열의 비행이 묘사된다.

 

마지막으로 연을 바꾸어 나타나는 것은 ‘밤’의 이미지로서 여기서는 이른바 ‘야간 비행’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동원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야간비행은 인생의 비행으로 바로 비약한다. “나와 동승한 그대 운명을 같이 지고”는 시적 애매성(ambiguity)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여기서 ‘그대’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동승한 ‘아내’로도 읽힐 수 있고 확대하자면 조종사가 몰고 있는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로 읽힐 수 있다. 이 구절은 문자 그대로 한 비행기를 탄 사람들이 가지는 운명공동체로의 동정심을 드러내 보인다. 1연의 초·중·종장에서 시적 화자의 시야가 자신에게 국한되어 있었던 반면, 2연에 이르면 동행하는 사람 또는 사람에게로 연장됨을 볼 수 있다. 비행의 경험을 시인의 상상력으로 해석하여 인생의 낮과 밤, 위기와 평화, 현실과 초월등의 다양한 이항대립적 요소등을 제시한 것이다. 그 밖에도 〈하늘 환상곡 1, 2〉라거나 〈구름밭 일기〉 〈하늘 습작―새〉 등의 시편에서 한결같이 볼 수 있는 것은 하늘, 비행기, 새 등의 소재가 보여주는 초월과 상승의 이미지들이다. 그러한 이미지는 김호길 시 전반부를 지배하는 중요한 모티프로 읽힌다.


칠흑 깊이 재웠다
바닷물로 헹구었다
구름깃에 닦았다
놀로 활활 불지폈다

일천 겁
금비둘기 떼

일제히 튀는 소리

 

―〈일출〉


이 시에서는 다른 단시조 ‘그리움’에서처럼 시각적 이미지가 완만히 전개되다가 종장에서 급격히 청각적 이미지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여주며 시상을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다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거듭 드러나는 상승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제시하는 긍정성과 적극성이다. 그 이미지들은 젊은 시인의 기상과 야망을 보여준다. 시 〈하늘 습작―새〉의 “내 젊음 날개를 치며 대붕의 꿈을 펼친다”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활달하고 적극적인 이미지는 패배주의와 ‘한’과 ‘슬픔’의 정조가 주를 이루던 전후 한국의 1960, 70년대 문단의 전반적 분위기 속에서 살펴볼 때 의미 있는 성찰을 요하는 부분이다. 박재삼의 〈슬픔이 타는 가을 강〉이라거나 서정주의 〈귀촉도〉가 대표하는 상실의 정서가 문단을 휩쓸고 있을 때 그 대척점에서 김호길 시인의 위 시편이 쓰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사막에 심은 꿈을

 

1981년 미국 이민 이후에 계속 창작된 김호길 시조는 디아스포라 시조라는 한 독특한 장르의 시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구상에 인구의 교통과 이동이 없었던 적은 없지만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의 지적처럼 대규모의 인구 이동은 현대성(modernity)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 산업화의 뒤를 잇는 정보화의 시대의 도래로 인하여 지역적 경계를 넘어서는 인구 이동이 활발해졌고 이는 곧 새로운 시대, 프레더릭 제임슨(Frederick Jameson)이 이름 지은 대로 부르자면 후기자본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김호길 시인은 캘리포니아 주민으로서 서류상의 미국인이 되었지만 그의 정서는 여전히 한국적이고 동양적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심은 동양적 사유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양의 풍경 속에서 동양의 사유를 보여주는 시 〈신기루〉는 이민 이후 드러나는 그의 문화적 혼종성의 시조 중에서 유의해 볼 시편이다.


라스베가스 가는 길에
숲인 듯 호수인 듯

한참을 아른아른
어디론가 사라졌네

사는 일
꿈꾸는 것이라
일러주고 갔어라

 

―〈신기루〉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은 덩굴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는, 사막화해가는 척박한 땅이다. 풍경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그 황폐한 땅에서 함께 메마르고 삭아들기를 거부하는 ‘꿈꾸는 자’들이 세상에는 더러 있다. 라스베이거스를 불야성의 오락지대로 만드는 꿈을 꾼 한 사나이의 이야기가 있어, 영화 〈벅시(Bugsy)〉는 그 꿈꾸는 자의 삶을 그려낸 바 있다. 벅시라는 이름의 미국인이 달리던 차를 멈추고, ‘이 사막 한가운데에 환락의 도시를 이룩하리라’하고 부르짖었던 바로 그 지점에서 시인은 신기루를 본 듯하다. 사는 것이 꿈이요 꿈이 삶이라는 이 느낌은 장자의 일장춘몽, 나비의 꿈을 연상시키는 것으로서 동양인에게는 매우 친숙한 문화적 모티프이다. 라스베이거스를 꿈꾸었던 몽상가, 벅시는 그 라스베이거스가 완성되기 전에 죽음을 맞는다. 그의 꿈이 나비가 된 것일까, 그 꿈이 계속 남아 여진처럼 신기루를 이루는 것일까. 21세기, 우리의 디아스포라 시인이 동참한 것은 벅시의 몽상이었을까 장자의 나비 꿈이었을까. 아니면 그 둘이 어울려 이룬 혼종적 디아스포라의 또 다른 꿈이었을까?

김호길 시인의 꿈은 캘리포니아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나비의 넋에 이끌리어 더 태양 가까이, 멕시코로 이주해 간다. 멕시코는 적도에 가깝고 그 사막 땅은 척박하다.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지대를 차로 통과해 보면 손 닿을 듯한 거리를 사이에 둔 두 국가의 경계가 곧 풍요와 빈곤의 분계선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호길 시인은 그 멕시코 땅에 가서 맨주먹으로 농장을 일구었다. 김영하가 소설 《검은 꽃》에 그려낸 바로 그 멕시코 땅이다. 멕시코는 20세기 초반 한국인이 처음으로 ‘애니깽’이라 불리는 선인장 농장의 노동자로 이민 와 노예처럼 살았던 그 역사를 생생히 안고 있다. ‘애니깽’ 이민 이후 김호길 시인은 한국인으로서는 멕시코의 첫 농장 개척자가 된 것이다. 그의 시 〈해바라기〉는 그의 개척정신을 닮은 ‘해바라기’에 대한 송가이다. 농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시들에서도 앞에서 언급한 활달한 기상이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시인의 농장 이름이 ‘해바라기 농장’인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갈기를 날리며 구름을 일군
야생마 발굽소리

실한 소리의 메아리
알알이 박혀 있다

넉넉히 짐짓 넉넉히
굽어보는 기상으로
풀잎처럼 바람 앞에
쉽게 굴신(屈身)을 않노라

눈과 비 성신의 흐름
도도한 물결조차

거슬러 펼쳐나가는
방패꽃이 되었니라.

뜻으로 신념으로
한 세상 펼쳐보이는

그대 의지만큼
발돋움해 피어난 꽃

먼 하늘 소망도 가득
흩뿌리고 있어라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김호길 시인의 개척정신과 건강한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그것은 베트남으로 중동으로 어디든지 달려가 땀 흘리며 청춘을 바치던 시대, 1960년대, 70년대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이 시편은 김수영의 〈풀〉과의 상호텍스트성 속에서 읽을 수 있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한 김수영 시구는 흔히 풀잎이 가진 생명력과 저항정신을 보여주는 시로 해석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지가 정합적이지는 않지만 김수영의 풀은 다시 일어설지라도 바람이 불면 드러눕는 존재이다. 김호길의 해바라기는 아예 그 바람을 굽어보며 바람을 호령하는 자존과 자신감의 표상으로 읽힌다. 해바라기의 존재에 관여하는 것은 오로지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일 뿐이다.

 

김호길의 디아스포라 시조는 그의 수필집과 함께 읽을 때에 그 의미가 더욱 온전하게 드러난다. 비행사이며 농부이며 동시에 시인임으로 하여 그는 생텍쥐페리가 가진 것을 다 가진 다음 그 위에 하나를 더 가진 것이다. 그의 인생 경험은 그렇게 풍부하다. 아니 어쩌면 김호길은 오로지 한 길을 간 시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인의 길이다. 조종사도 시인이라고 그는 호명한다.


생텍쥐베리의 말을 빌면 파일럿 또한 “농부가 쟁기로 대지를 갈아 나가듯 비행기로 구름밭을 갈아나가는 하늘 위의 농부”다. ……밤하늘에서, 머리 위에 찬란한 성좌를 이고 비껴 있는 강 굽이를 헤아리며 어느 먼 나라 항공을 비컨(수로,항공, 교통의 표지 및 신호)등 깜박이며 찾아서 날아가는 비행사란 밤의 대기를 가르는 농부요 시인이 아니겠는가.

―《바하사막 밀밭에 서서》(p.35)


낮에는 물리적인 밭을 일구는 개척자로 밤에는 마음의 밭을 가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시 〈사막 초(抄)〉의 한 수가 드러내 보여준다.


사구(砂丘)를 지우고 일구는
매운 바람도 자고
온갖 살아 있는 것들이
탄주하는 노래의 장강(長江)
어쩌면 시의 고향을
찾아볼 수 있겠네

 

―〈사막 초(抄)〉 중에서


그의 개척정신과 실험성은 디아스포라 경험의 재현이라는 소재의 확장에서만이 아니라 시조 형식의 실험으로도 이어진다. 홑시조 연습에는 일본의 하이쿠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의 순간적 포착이 나타난다. 시인이 홑시조라고 이름 지은 것처럼 기존 시조 형식을 파괴하면서도 시조의 중요한 형태소를 간직하는 종장, 홑 장으로 이루어지는 시를 보여준다. 홑시조 연습에서 시인이 일관되게 유지해온 시세계가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시인
못 부릴 짐을 지병을
지고 가는 나그네

야간 비행
아늑한 밤의 품 속에
깜박이는

  돌

  별

삼장시인
해묵은 심전(心田)을 매는
그대
아침의 농부

 

―〈홑시조 연습〉 중에서


‘야간 비행’에서 보여주는 글자의 시각적 배열은 이영도 시인의 〈나비〉나 장순하 시인의 시에서 처음으로 실험된 바이고, 문무학 시인의 〈중장이 생략된 시조, 한반도는〉 등에서 참신하게 다시 시도되고 있는 바이다. 따라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밤하늘의 떠돌이별의 이미지를 시각화 하는 데 적격이다.


기억에의 헌신: 시조, 그 어쩌지 못할 지독한 첫사랑

어쩌면 시조는 김호길 시인의 삶,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번 마음 준 까닭에 평생 함께하는. 어쩌면 평생을 첫사랑에 바치는 것이 예술가의 운명일 수도 있다. 영화 ‘시티즌 케인’을 감독한 오손 웰스(Orson Welles) 감독의 경우처럼. “한 번 영화와 결혼했는데 그 배우자가 병 들었다고 결혼을 파기할 수 있느냐?“고 그는 말한 바 있다. 성공한 벤처 농업인으로서 승용차로 풍요로운 캘리포니아 땅을 달리면서도 그가 평생 시조를 끌어안고 끙끙거리는 것은 그가 심장의 한 조각을 진작에 시조에 바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갓 스무 살, 꿈 많은 한 젊은 청년이 진주 개천예술제 시조백일장에서 장원을 하던 날부터…… 시조 〈연〉은 고국을 떠난 지 삼십 년이 지난 후에도 모국어와 시조를 껴안고 놓지 못하는 시인의 자화상으로 읽히는 시편이다.


그 먼 날 날아간 연을
여직 늘 생각는다.

하늘 무한 창공 너머
은하계로 날고 있나

그 한 줄
인연의 끈을
아직 놓지 못한다.

 

―〈 연〉


지구 곳곳을 찾아 도는 인생의 항로에서 여러 항구를 거쳐 가면서도 마음에는 초라한 고향의 작은 항구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 지남철처럼 그의 발길을 끌 듯이 그의 한 생은 첫 인연의 끈을 단단히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인연 맺은 조국, 모국어, 사람들, 그리고 시조……

 

김호길 시인은 몸으로 궁핍의 한국 현대사를 꿰뚫어 왔다고 할 수 있고, 그야말로 맨주먹으로 미국의 자본주의를 학습하고 정복해왔다고 할 수 있다. 남쪽 멕시코로 가면 미국에서처럼 비싼 땅을 빌리지 않아도 싼 값에 땅을 얻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상상, 그 꿈이 그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 멕시코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 배달되어 온 야채 박스에 적힌 주소를 보고 종이에 적어 그 주소를 찾아갔다고 한다. 스페인어 한 마디 못 하면서 트럭 하나를 끌고……

 

시인은 창조를 멈추지 않는다. 농사꾼으로서 이제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영농법을 개발하고자 부단히 공부한다. 자본주의 이후에 올 것이 무엇인지 궁리한다. 늘 땅을 살피고, 이제 재화는 더 이상 땅에서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젖줄, 물에서 창출되리라고 예언한다. 그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기리는 ‘노마드(nomad)’ 즉, 유목자이다. 여러 국경을 일 년에 몇 번이고 넘나든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 미국과 한국 국경…… 자본의 흐름을 따라, 물길을 찾아,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장가를 찾아, 잃어버린 조국의 봄날 아지랑이를 찾아…… 전 지구를 떠도는 그의 발길 아래 땅 깊은 곳에는 시심(詩心)이 흐른다. 그의 삶의 영토에 창조의 물을 대는 시심의 수맥이 거기 있다. 그는 아직도 밤이면 시를 쓴다. 그 시의 형식은 시조이다. 〈고향 생각〉은 디아스포라로 요약되는 그의 인생과 시조를 축약하여 보여준다. 김호길에 대한 논의가 김호길 시조 텍스트의 직접 인용으로 마무리되어야 하는 것은 그 까닭이다.


고향은 언제나 내게 꿈이고 또 신앙이다
외로울 때나 슬플 때나 메아리로 와서 닿는
청솔 숲 뻐꾸기 소리 늘 가슴에 빚고 있다
항일성 해바라기만큼 그 땅으로 끌리는 마음
그날 그 순간만은 만월만한 복일러니
어머님 자장가 소리 눈이 절로 감기는...

오봉산 나락논에서 쫓겨 나온 새떼 같은
엮어온 숱한 세월 돌아보면 회한인데
뒤뜰에 채마밭 일구는 그런 꿈이 그리워

고향은 언제나 내게 정이고 또 사랑이다
세상사 티끌 속 누벼 마지막 돌아갈 귀항
푸른 산 푸른 물빛이 눈에 삼삼하누나.

 

―〈고향 생각〉

 

박진임 | 문학평론가. 2004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저서로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Peter Lang: 2006)가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미국학과 부교수.

출처 : 함시 복수초
글쓴이 : 김정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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