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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소원 시집 <취호공원에서 쓴 엽서> 해설 - 이재훈 시인

문근영 2013. 11. 7. 11:55

박소원 시집 <취호공원에서 쓴 엽서> 해설

 

 

길과 뿌리의 시학

 

 

이재훈/ 시인

 

 

 

 

길은 만인의 땅이다. 누구나 길을 통과할 수 있고 통과한 길로 다시 되돌아올 수 있다. 길 위에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지나치지만, 때론 지나치지 못하고 서성거리거나 멈추는 자들도 있다. 시인은 그런 족속이 아닐까. 길 위에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고, 또 앞으로 걸어갈 길을 헤아려 보는 족속들. 또한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을 보고, 자신의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하늘을 보는 족속들. 하늘의 새는 길 위의 나그네에게 이정표가 되며, 길가의 나무는 비 오는 날의 우산이 된다. 더군다나 길은 우리 일상의 상징이다. 우리는 길 위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길로 되돌아오며 하루를 마감한다. 돌고 도는 일상은 길 위에서 시작하여 길 위에서 끝나는 것. 그렇기에 길은 우리 인생을 은유한다. 마지막 종착지를 향해 끝없이 걸어가는 길 위의 시간들이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박소원의 시는 이런 길 위에서 오손도손 두런대는 감성의 언어를 길가에 흩뿌린다. 잠시 멈춰 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의미와 신산한 삶의 내력들을 더듬거린다. 또한 자신의 현재를 만들고 지탱하는 공동체와 가계家系의 회억回憶을 통해 아픈 그리움의 서사를 그린다. 박소원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길 위에서처럼 끊기다 이어지고 다시 넓어진다. 그리움이 따뜻하거나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은 길 위에 선 사람이 바람을 모두 맞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아름다운 그리움에만 시선을 두지 않는다. 아름답기까지의 시간들, 아름다운 뒷모습을 갖기까지의 서러운 시간들까지도 곱씹는다.

다시 말해 박소원의 시집 취호공원에서 쓴 엽서는 길 위에서 쓴 한 통의 긴 편지다. 시인은 엽서라고 말했지만 엽서에 시인의 열망과 운명을 다 담기엔 부족한 듯 보인다. 시인은 몇 권의 일기장을 쓴 것일까. 그러나 일기장은 불태웠다고 한다(사라지는 길). 그가 작성한 일기는 벌겋게 한 가지 색만 쓰며 사라질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일기들은 사라지며 새로운 시로 탄생하는 것이다. 사라지는 길에서 정신요양원의 형은 시적 자아의 페르소나이자 과거의 내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시인은 형이 간 길을 바라보다, 형이 간 길을 따라간다. “사라지는 길솟구치는 불길 위로 뛰어내리는행위로 인해 새로운 탈출구를 제시한다. 길은 무화되고 한 가지 색의 일가를 이룬 잎사귀들은 불길 위로 뛰어 내린다. 하지만 그 재를 정신적 에너지로 삼은 박소원의 시는 마치 잘 익은 숯처럼 오래가는 불꽃으로 익을 것이다. 이제 그 여정을 따라가 보자.

 

자정 넘은 들판은

지천인 어둠뿐이에요

움직이지 말고 서 있으라는

아버지의 말을

일곱 살 어린 나는 꼭꼭 믿었어요

어둑한 빈 논둑길에서

두렁콩은 풋풋이 익어가고

앙다문 내 입 속에서는

피비린내가 솟구쳐요

기다림의 본질은 공포일까요.

우묵배미 논을 지나

복숭아밭 쪽에서

천 개의 만 개의 어둠이

건달패처럼 달려와요

제 희망의 각도로 멀리

별똥별이 또 떨어지고.

나는 어둠 속에 어둠으로 서서

당신이 달아난 방향을

짐작도 못해요

어머,

당신은 나를 두고 간 것을

깜박 잊었나 봐요

사랑의 본질은 캄캄한

기다림일까요.

어둠 속에 기둥처럼

다리를 세우고

나는 자라나고 있나 봐요

하늘이 점점 낮아져요

덮쳐오는 어둠 속에서

별이 자꾸 늘어나요

이곳을 떠나면 모두

별이 될까요. 희망의 각도로

나는 수시로 손을 뻗어 봐요

!

손 닿을 수 없는 거리

당신과 나, 우리의, 어둠 속

기다림의 본질은

누구를 위한 사랑일까요.

― 「어떤 이별전문

 

길 위에서 시인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다 이별을 경험한다. “아버지의 말은 일곱 살 어린이에게 믿음의 다른 말이다. 하지만 기다림의 본질공포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길 위의 어둠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시인은 길 위의 어둠을 경험하는 자이지만 이별 뒤에 도사린 사랑도 함께 보는 자이다. “당신은 나를 두고 간 것을/ 깜박 잊었나보다고 애써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지만,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사랑의 본질은 캄캄한/ 기다림이라는 전언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을 통해 시인은 기다림의 본질이 공포를 뛰어넘어 사랑이라고 은밀히 전한다. 우리는 이 세계를 떠나면 별이 된다고 믿는다. 별은 죽음 이후의 희망이자, 사랑의 징표이다. 이렇듯 박소원의 시에서는 길 위의 기다림과 만남, 손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애타게 이리저리 궁리한다.

그가 유목하는 언어의 방랑 속에는 본질을 찾으려는 감성적 의욕이 엿보인다. 길 위에서 바람의 냄새를 맡고, 뿌리를 찾으려는 몸짓에서 그 일면들을 엿볼 수 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불쑥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오월 하늘에 달 하나 만삭이던 밤

요양원의 형 안부를

처음 받던 날처럼

화단에 줄장미 만개한 밤.

누군가 졸졸 나를 따라오는 소리에

문득 돌아보면

긴 골목은 탱탱하게 채워진 어둠뿐이다

이곳에 도착한 편지는 늘 빈 봉투다

방향도 없이 삭힌 홍어의 애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코를 찌르는 냄새

훅 덮쳐오던 날

나는 어떤 부름에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다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말자

독서실 캄캄한 4호실 27번 좌석에 앉아

나의 다짐이 굳어진다

눈부신 스탠드 불빛 아래

부르르 부르르

어젯밤 안부를 묻던 형의 부고가

사지를 떨며 진동으로 오고 있다

말해보라, 너는 왜

이토록 끈질기게 나를 찾아오는가

― 「어떤 기별전문

 

박소원에게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요양원의 형은 상처의 원형질 같은 것이다. 형은 지금 없지만 이토록 끈질기게 나를 찾아오는형의 부재가 삭힌 홍어의 애처럼 자신의 살점이 되어 불쑥불쑥 냄새를 피운다. 말하자면 그 냄새의 힘이 탱탱하게 채워진 어둠을 뚫고 나가는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시인은 누군가 계속 자신을 따라온다는 환영 속에서 예민한 감성적 촉수를 귓가에 갖다 댄다. 그가 소요하는 긴 골목은 그를 따라오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그곳엔 소리뿐 아니라 부드러우면서도 코를 찌르는 냄새까지 떠다닌다. 자신이 잠시 머무는 독서실에까지 눈부신 스탠드 불빛이 감각을 일깨운다. 소리와 냄새와 시각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 속에서 시인은 형의 부고를 받아들인다.

부재의 순간들은 불구의 시를 만들지만, 그 순간으로 하여금 모든 상처는 새살이 돋는다. “어젯밤 안부를 묻던 형의 부고가/ 사지를 떨며 진동으로 오고 있는 현실은 아프기도 하지만, 죽음의 의미를 계속해서 타전하는 아픈 메시지로도 읽을 수 있다.

 

박소원은 길 위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길을 통해 의 의미를 되묻기도 한다(너에게 가는 길). 사막의 길 위에서도 시인의 그리움은 시들지 않는다. 사막의 황량함도 에너지가 되어 내 안의 무엇으로 발화된다. 길 위에서 뿌리의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뿌리는 자신을 만들던 삶의 내력에서도 찾아진다. “야반도주를 일삼던 삼촌의 등”(小滿)처럼 길은 방랑하는 자들의 몫이다. 이런 방랑의 시간들이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불안한 길이라는 공간을 낳았다. 길의 공간은 하나의 지점으로만 수렴되거나 퍼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새들이 지나가는 공중의 길처럼 하강의 하강으로” “수평의 수평으로”(우리는 하나의 길이 되었어요)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생의 시간들을 이어간다.

 

슬픔은 유력한 용의자인 그녀에게 반벙어리인 나를 미행자로 붙여 놓았다 불길함이 울타리로 튀어오를 때마다 어둠 한 짐 지고 뒤따르는 그림자,

 

미행의 기본은 제 발소리부터 죽이는 것, 혐의자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말 것, 은 미행자의 행동강령을 알려주러 골목 안으로 시도 때도 없이 뛰어든다.

 

어둠 속에서 발소리를 온전히 죽이고 능숙하게 몸을 숨기는 나는 슬픔의 내부고발자, 그녀가 멈추어 선 자리에서 평생 뒤꿈치를 들고 서서 어디만큼 왔니 어디만큼 왔니

 

밟힌 눈은 다시 밟히며 단단한 길이 된다. 이윽고 아버지 집에서 식량자루를 이고 나오는 병색 깊은 어머니. 미행자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평생 용의자 앞으로 나설 수가 없다

은 운명처럼 다시 어떤 음모를 꾸미는 중일까. 우리가 지나간 흔적을 소리 없이 지우고 있다

― 「尾行전문

 

또한 길은 누군가를 뒤따라가기도 한다. “반벙어리인데도 미행자가 되었다. 미행을 시킨 이는 슬픔이다. 그래서 슬픔의 내부고발자인가. 시에서 그녀를 뒤따르는 이는 그림자이며, 때론 나이며, 때론 눈()이다. 나도 발소리를 죽이고, 능숙하게 몸을 숨기는 것처럼 눈 또한 조용히 내린다. 눈의 속성을 시에서는 잘 보여준다. “밟힌 눈은 다시 밟히며 단단한 길이 된다는 사실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내력 속에서 찾는다. 위의 시는 길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인의 자의식이 삶의 내력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시인은 미행자가 되어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평생 용의자 앞으로 나설 수가없다고 고백한다. 미행자는 미행하는 사람의 앞에 설 수 없다. 평생 뒤를 쫓아가야 한다. 그러한 삶의 배경을 등에 업고 마치 눈처럼 지나간 흔적을 소리 없이 지우는삶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바다가 없는 마을까지

추위를 피해서 온 흰 갈매기들이

젖은 손가락으로 몇 백 번 허공을 긋는다

매일 금강경을 필사하던

佛心 깊은 할머니처럼

형은 매일 공책 몇 바닥씩

가족들 이름을 적었지만

나는 사막을 건너온 바람 속에서

내 이름만을 쓰고 또 쓴다

허공이 내준 축축한 바닥에서

내 이름 석 자,

무서울 때마다 혼자 불렀던 노래처럼

단조의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바람 한 번 불면

쓰고 또 쓴 내 이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공원 한 귀퉁이에서

빗속으로 터지는 12월의 어둠을 본다

할머니도 형도 공책을 덮고

잠자리에 눕히던 어둠이

컴컴한 손가락으로 허공을 그으며 달려온다

또박또박 간격을 맞추며 기록하는

나는 어둠의 새로운 주소지다

― 「취호공원에서 쓴 엽서전문

 

시인은 마음을 기록하는 자이다. 시에서 할머니는 금강경을 필사하는 불심을 가졌다. 형은 매일 공책에 가족들 이름을 적는다. 시의 화자는 사막을 건너온 바람 속에서/ 내 이름만을 쓰고자신의 정체성에 골몰한다. 할머니와 형은 아픈 삶의 내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시의 화자는 허공 속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씀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은 누구인가를 묻는다. 하지만 바람 한 번 불면 쓰고 또 쓴 내 이름 흔적도 없이사라진다. “취호공원은 시인에게 부재를 안겨다주는 공간이다. 먼 중국의 아름다운 공원에서도 할머니와 형의 안부를 여쭙고 싶은 것. 공원에서 쓴 엽서는 안부를 타전하는 그리움의 깊이를 기록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제 이름을 계속 쓰지만, 결국 자신은 할머니와 형의 내력과 무관할 수 없다. 시에서 할머니나는 모두 쓰는 주체가 된다. 쓰는 주체가 천형이 되는 곡절을 가졌지만, 그것이 시인의 운명이다. 시인은 고백한다. “나는 어둠의 새로운 주소지라고.

 

길 위의 시인은 길 위에서 방황만으로 모든 풍경을 채색하지 않는다. 방황을 일깨우는 뿌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기도 한다. 뿌리야말로 시인에게 방황 못지않는 소중한 가치이다. 박소원의 시에서는 옛 공동체의 추억을 회고하는 시편들이 많이 등장한다. 조도를 낮춘 집 1에서 어머니는 절밥으로 나를 키워내고는 병을 얻었다. 아버지는 복숭아밭을 팔아넘기고 자꾸 야위어가며, “의심이 많아진 나는/ 어떠한 믿음도 자라나지않는다. 머슴인 길용이 아제는 어머니의 병을 위해 오리의 생피를 매일 받고 서서히 늙어간다. 조도를 낮춘 집 2에서도 길용이 아제와 종남이 아제, 젊은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일상과 내력들이 구체적인 장면으로 직시된다.

옛 공동체에 대한 추억과 희구는 아련하고 아름다운 시편들만 있는 게 아니다. 작은 어머니에서는 이러한 구체적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폐가한 가문의 내력들을 보듬어 안아야 하며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된 아버지의 그, 여자는 딱딱한 등 뒤에서 쉴 새 없이 지난 날을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작은 어머니는 말한다. “다음 생엔 평생 너를 봉양하는 효성 깊은 딸로 내가 태어나마라고. 이러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짠해진다.

시인은 타인의 죽음에 대한 내력뿐 아니라, 자신의 체험도 가지고 있다(울음의 힘). 열 살 전에 세 번이나 체험한 죽음은 시인에게 죽음에 대한 내밀한 자의식을 갖게 했다. 시인의 자의식은 울음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준다.

 

마음이 먹먹할 때마다

돌들의 무늬를 더듬어 보던

내 손 끝에서

들숨일까 날숨일까

파르르 어떤 숨소리가 떨려 옵니다

무늬에 따라서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꽃에 물을 주듯이

내 책장 위에 놓인 돌에게도

물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그때 문득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고

스스로 도리질을 치곤 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돌에게 물을 주기 시작하면서

돌이 피우는 꽃을

나는 황홀히 보곤 합니다

먹빛의 몸이 더 먹빛이 되어

베란다 한 귀퉁이에서

이윽고 숨 터지는 저 꽃들

오늘 다시 환하게 만개합니다

 

당신 안에 살고 있는 돌 한 그루가

기어이 만개하는, 그날이 봄날입니다

― 「단단한 꽃전문

 

시인은 길 위의 상처와 그리움과 사랑의 정서를 방랑자의 몸짓으로 체득했다. 시인의 몸에서는 이미 길 위의 바람과 꽃들이 들어와 있어 스스로 소리가 난다. 시인은 마음이 먹먹할 때, “돌들의 무늬를 더듬어본다. 돌을 더듬어보면 어떤 숨소리가 떨려 온다. 시인은 그 숨소리까지 예민하게 감지한다. 숨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생물의 사물에까지 시인은 함께 호흡하고 소통한다.

그러한 행위는 시인이 책상 위의 돌에게까지 물을 주는 것으로 상징된다. 그리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광경을 목도한다. 돌이 꽃을 피우는 장면이다. 실제로 돌은 꽃을 피우지 못한다. 하지만 시인의 눈에는 돌이 꽃을 피우는 황홀한 장면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만약 시인의 마음속에 구르고 굴러 딱딱해진 돌 하나 있다면, 그 돌 한 그루가 꽃이 피어 있는 날들일 것이다. 이런 날들을 위해 시인은 시를 쓰며 환한 밤을 지새울 것이다. 그날이 바로 시인에게 봄날이다. 박소원의 시는 길 위에서 소요하며 시인의 운명과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 결부시켜 고민하고 방황한다. 길 위의 언어를 풍성하게 들려주는 박소원의 시에 더 깊은 울림과 떨림이 가득하길 바라본다.

 

 

- http://cafe.daum.net/poemmtss/(시산맥)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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