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31) 어깃장과 비틀기 |
| 인도에 안 가기 정병근 인도에 안 가는 동안 인도는 수시로 나를 다녀갔다 인도에 안 가는 그 긴 세월 동안 나는 오른손으로 밥을 버무려 먹고 왼손으로 밑을 닦았다 내 속엔 인도가 너무 많아* 인도적인 자세로 인도는 나를 인도하려 했지만 나는 걸핏하면 인도를 허탕시켰다 그러니까 내가 인도에 안 간 것은 이마에 붉은 점을 찍은 어머니가 헐벗은 흙집에서 밀 빵을 굽고 있거나 아버지가 철침 방석에 앉아 명상 중이라는 소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틈만 나면 나는 인도에 안 갔고 인도에 안 가는 수많은 시간동안 나는 한 도시의 뒷골목에서 집채만 한 수레를 끌거나 하루 종일 빨래들을 후려쳤다 무례하거나 무심하게 인도는 인도적으로 북적댔고 인도에 안 가기 위해 나는 수시로 큰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의 한 옥탑방에서 무더운 연기와 냄새를 고스란히 견뎠다 타다만 주검들이 둥둥 떠내려가는 그 물을 마시고 그 물에 몸을 씻고 돌아와 인도 비디오를 보는 인도**의 자세로 나는 줄기차게 인도에 안 갔다 내가 인도에 안 가는 그 수많은 시간 동안 * 하덕규의 시 <가시나무새> 중,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구절을 패러디함. ** 이수명의 시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를 패러디함. # 너무 많은 인도는 인도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인도를 다녀왔다. 몇 장의 사진이 남았고 그 안에서 인도는 죽었다. 뛰어난 여행시가 많지 않은 이유는 뜬구름처럼 들떠 있는 정서와 빈약한 사유, 육화시키지 못한 외지의 낯선 풍물과 풍정 때문이다. 단순히 외국의 날것을 그대로 옮긴다고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는 문인수 시인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병근 시인은 인도에 가지 않았지만 수없이 인도에 다녀왔다. 온갖 기행서와 시들을 통해 인도를 만났고 인도를 살았다. 그러나 화자는 “걸핏하면 인도를 허탕시켰다”. 가난한 현실 탓이었을 것.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여건 때문에 인도에 가지 않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인도적으로 살았다. “헐벗은 흙집”과 “철침 방석” 못지않은 현실을 살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화자에게 인도는 더 이상 가야할 곳이 아니다. 그는 지금도 “도시의 뒷골목에서 집채만한 수레를 끌”고 있고, “언덕배기의 한 옥탑방에서 “무더운 연기와 냄새” 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아수라 같은 현실 속 존재인 것이다. 즉 화자는 이곳이 곧 인도이고 갠지스강의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는 공간이다. 북인도, 서인도, 남인도를 모두 그는 현실의 질곡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자가 인도에 갈 이유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인도 비디오를 보는 인도 자세”로 그는 바라볼 뿐이다. 시인은 보편과 상식에 순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반역의 붉은 피가 흐르는 이단이고 혁명의 전사이다. 남들이 다 가는 편안하고 안락한 길을 거부하고 일부러 낯설고 외진 길을 찾아가는 것이 시인의 습성이다. 화자는 네팔, 라다크, 몽골 오지 등의 탐험과 여행이 내용 없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가는 것을 쉽게 수용할 수 없었던 것. 이 시는 인도의 과잉에 보내는 풍자이다. 원효가 당시 하나의 관례처럼 여겨졌던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도중에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오.”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서라벌로 돌아와 불교의 대중화에 힘쓴 행적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작품의 화자 역시 세인들의 너도나도 앞다투어 떠나는 인도 여행에 어깃장을 놓으면서 바다 건너 먼 나라가 아닌 바로 발밑의 고통스런 현실을 살아내는 것이 오히려 인도에 가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문화저널21'에서 |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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