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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 아침의 시 / 이원규 - 꽃의 속도

문근영 2013. 11. 6. 12:07

이 아침의 시 / 이원규

 

 

꽃의 속도
 
덧나는 상처도 없이
어찌 봄이랴
 
섬진마을의 매화가
지기도 전에
젊은 황어때가 지리산에 오르고
잠시 산수유꽃이
잉잉거리는가 싶더니
화개동천의 십 리 벚꽃도
파장
 
아무래도
봄은 속도전이다
 
피고 지는 꽃이 그러하고
어이쿠,
무릎 한 번 치시더니
입적하신 노스님이 그러하니
 
나는 그저 어지러워
눈 코 입 귀를 틀어막을 뿐
 
만마디
척추 속에 차오를
늦은 고로쇠 수액을 기다릴 뿐
 
 
# 여행을 다니면 시간이 길게 늘어 난 것처럼 느껴진답니다. 낯선 여행지에서는 인체에 모든 감각기관이 깨어나 숨을 쉬고, 세포마다 달린 귀는 볼륨을 높인 채로 모든 소리를 채집하고, 오감에 달린 눈은 와이드 스크린이 되어 주위의 모든 사물을 파노라마처럼 모니터 하지요. 어린아이처럼 경이와 감탄으로 만나는 순간들은 마치 아코디온 주름 속에 겹겹이 접혀 있었던 시간이 주름을 펴는 것 같답니다.
 
장 마리 귀요(Jean-Marie Guyau)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시간의 양을 늘리고 싶다면,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시간을 수천 가지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나가라. 흥미진진한 여행을 시작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스스로를 새로이 하라"고 전언 합니다. 그래서인가 며칠 집을 떠나 있었을 뿐인데도 여행에서 돌아오면 아주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던 것 같은 느낌에 깜짝 놀라곤 하지요.
 
남녘은 벌써 꽃 소식으로 환하다는 군요. 꽃들의 시간이 달려오고 있어요. 그러나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세수하고, 신문에 눈을 붙이고, 밥을 먹고 출근하여 일상의 업무에 익숙해진 하루가 무감각하게 기계처럼 지나가는 사람에게 하루는 그저 세속적인 스물 네 시간이거나 그 보다 더 빠르거나 지루한 시간일 거예요. "섬진마을의 매화가/지기도 전에/젊은 황어때가 지리산에 오르고/잠시 산수유꽃이/잉잉거리는가 싶더니/화개동천의 십 리 벚꽃도" 몸을 푸는 이 숨 막히는 "꽃의 속도"에 마음의 속도를 맞추어 본다면 우리 곁에 겹겹이 주름진 채 숨어있는 시간을 찿을 수 있지 않을 까요?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교수 dsseo@shingu.ac.kr)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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