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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 아침의 시 / 이정록 - 나이

문근영 2013. 10. 31. 17:46

이 아침의 시 / 이정록

기사입력: 2013/03/18 [09:13]  최종편집: ⓒ 문화저널21

 

 

 

나이

-어머니학교 2

나이 따질 때, 왜
만 몇 살이라구 허는 지 아냐?
누구나 어미 뱃속에서 만 년씩 머물다 나오기 때문이여,
어린 싹이나 갓난 것 보면 나두 모르게 무릎이 접히지.
우주정거장에서 만 살씩 잡수시고 나온 분들이라 그런 겨.
그러니께 갓난아기가 아니라, 갓난할배구 갓난할매인 겨.
늙구 쭈구러져, 다음 정거장이 가차워오면
애기덜헌테 턱수염 잡히구 지팡이 뺏겨두
합죽합죽 매화꽃이 터지지.
봄은 늙은이들 입가에서 시작되는 겨. 

 
# "쉿-"하며 검지손가락을 꼭 다문 입술에 가져갔을 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숨을 죽이고 조용히 하는 자세를 취한다면 당신의 몸속에 존재하는 유전자 중 DNA의 나이는 "만 년" 이상 되었다고 할 수 있다. C. G. Jung(1875-1961)에 의하면 인간의 집단 무의식 속에는 인류가 생존전략으로 획득했던 형질들이 유전자를 통해 전수된다고 보았다. 파충류의 공격을 피하려던 전략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도 아직 태고원형(archetype)으로 유전자에 각인 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에 나이든 어르신들을 향해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막말을 뱉거나 잉여인간 취급을 하는 말과 글들이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그 말과 글들이 제 조상과 제 유전자에게 침을 뱉는 행위란 걸 모르기에 더욱 안타깝다. 당신은 당신 유전자들의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 불멸을 추구하는 당신의 유전자 중 DNA가 자기복제를 완수하고 나면 유전자는 자신의 목적에 따라 세대를 거치면서 몸에서 몸으로 옮겨가는 데, 당신의 나이와는 무관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의 저자인 진화 생물학자 리쳐드 도킨스의 전언이다.
 
"어린 싹이나 갓난 것 보면 나두 모르게 무릎이 접히지./우주정거장에서 만 살씩 잡수시고 나온 분들이라 그런 겨./그러니께 갓난아기가 아니라, 갓난할배구 갓난할매인 겨." "애기덜헌테 턱수염 잡히구 지팡이 뺏겨두/합죽합죽 매화꽃이 터지지./봄은 늙은이들 입가에서 시작되는"것을 안다면 삶에 대해 좀 더 겸손해 질 수 있지 않을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교수 dsseo@shingu.ac.kr)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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