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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35) 존재 탐구의 시학 - 나 / 이정란

문근영 2013. 10. 31. 17:47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35) 존재 탐구의 시학

 

 


 
이정란

당신 기척이 밖을 내다보는 내 시선에 녹아들었다
해변, 모래밭에 꽂힌, 종이컵은 인력 강하지만 아주 우연한 접점
 
당신 바깥에서
나는 허공이나 모니터에서 샘솟듯 차오르는 글자들을 소비한다
글자는 의식의 발원지
의식은 허공이나 모니터 혹은 벚나무 속의 혈류다
 
당신 곁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당신을 틀어막으며 산 긴 시간
마개를 따 버리고 싶었던 나는 누구의 나인가
 
내게서 떠났던 영혼은 연필로 위장한 낱말들의 트렁크 속으로 숨어들어 거칠게 숨 쉬었다
 
긴 잠의 머리맡에 가끔 폭약을 장치한다
나를 잘못 번안하곤 슬그머니 잠들어 버리는 나를 발설하기 위해
 
자기에 맞는 나에 대해 명상하듯
익숙한 옷이 나를 벗어버리고 면벽 중이다
 
변화하는 칼집, 나는
늘 죽고 있다
 
 
# 감각의 경련이 뜨겁고 아프다. 정형화된 서정적 문법을 따르지 않아 쉽게 읽히는 시는 아니지만 텍스트 안에 숨어 있는 몇 가지 비의가 비수처럼 다가온다. 집요한 시선의 끝에서 ‘나’가 폭발한다. 폭발하는 ‘나’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이곳의 자아는 본질적 실체가 아니다. 가짜이거나 허위이거나 오래 꿈꾸던 자아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순간, 순간의 탈각의 과정이 섬세하고 치밀하다.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자기 응시를 통해서 사유의 지평이 확장되고 존재의 이면은 명료하게 드러난다.
 
“당신”과 “나”는 대척의 자리에 있다. “나”는 “당신”을 사유하면서 회의한다. 객관화된 대상물인 “당신” 바깥에서 “나”는 존재하지만 삶의 양태는 반복과 권태, 가면과 허위의 삶일 뿐이다. 여기에서 고뇌의 여정이 시작되고, 분열의 싹이 돋기 시작한다. 현재의 삶을 견디게 하는 동인은 오직 “글자들을 소비”하는 행위이다. 이것만이 존재의 숨통을 트는 일이고, 불구의 삶에 잠시라도 날개를 달아주고 멈췄던 피를 다시 흐르게 하는 일이다.
 
3연의 고백은 통절하다. 극도의 대립과 갈등을 오래 견디며 버텨온 자아의 구체적 정황이 도발적으로 나타나고 화자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자아의 실상이 또렷하게 시각화되면서 신생의 새로운 호흡이 시작된다. 탈각은 관념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져 비상과 전회의 국면으로 향하게 된다. 이후의 장면은 더욱 흥미롭게 전개된다.
 
분열은 통증인 동시에 변화의 동인이다. 시적 주체의 행위는 부정적 실체였던 “잠”에 “폭약”으로 대응한다. 쉽게 현실에 순응하고 일상화된 자아를 폭발시키는 위험한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벽에 걸려있는 옷은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이다. 익숙한 세계로부터의 탈출을 기도하고 있는 자아는 “명상”과 ”면벽”의 방식을 통해 존재의 혁신을 꾀하고 은폐된 존재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한다. “변화하는 칼집”이었던 시적 주체는 ‘죽음’의 과정을 통과한다. 그 죽음은 재생의 몸부림이고, 그걸 통해서 쟁취하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존재의 초상이다. 그 때 화자는 눈부신 광휘로 빛나는 한 자루 칼로 번득이게 되는 것이다.
 
시인의 개성적 자질이 잘 발휘된「나」는 세계와 존재에 대한 정밀한 시선과 촘촘한 사유가 빛나는 작품이다. 최근 이정란 시인은 통상적인 시의 문법에서 벗어나 비약적으로 변모, 확장하면서 독자적이고 낯선 상상의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감각으로 존재 탐구의 장을 개척하면서 치열하고 밀도 높은 시세계를 보여주는 일련의 작업이 지속될 때 시적 성과는 혁신과 변전의 자리에서 성취될 것이다. 고투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그의 시에서 앞으로 시적 에피파니의 순간을 기대해도 좋은 이유는 시의 주체가 높고 외롭게 빛나는 한 자루 칼이기 때문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ㅡ출처 : 문화저널2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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