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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 아침의 시 / 윤석산 - 낙상(落傷)

문근영 2013. 10. 31. 17:47

이 아침의 시 / 윤석산

 

 

낙상(落傷)
 
마누라가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낙상을 했다.
오이지통을 들고 냉장고로 가다가 그만 계단에서 미끄러져
넘어졌고
대마도 여행을 갔다가 오는 날 호텔 복도에서 넘어졌다.
한 번은 인대를 다치고, 한 번은 다리가 골절됐다.
넘어져도 오지게 넘어진 거다
삼십 년 넘게 같이 살면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티다
그만 한 달 새 두 번이나 넘어진 마누라
어디 그간 다리만 부러졌겠는가,
어디 그간 인대만 파열되었겠는가.
오지게 넘어지고 싶은 날도 많고 많았겠지만
오지게 버티고, 버티다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 그만 한 달 새
두 번이나 넘어지고 말았다.
오이지나 담그며 보낸 세월이,
그래도 대마도나마 여행을 할 수 있는 날도 있기에
버티고 버티던 날들이 그만 넘어져
인대가 파열되고 다리가 부러지는 낙상
낙상,
어쩌면 원근의 풍경 그 너머
스스로 견뎌내어야만 했던
우리의 쓸쓸한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 아내가 "낙상"을 했다. 그것도 "한 달 새 두 번"이나 넘어진 것이다. 늘 그림자처럼 뒤 따르며 집안의 대소사를 살피고, 아이를 키워내고, 월급 쪼개어 살림 꾸려가던 아내라는 이름의 동반자가 있었기에 전쟁터와 같은 사회생활도 무탈하게 지나오지 않았던가. 밖에선 작은 일에도 '고맙다' '수고했다' '잘했다' '고생했다'라는 말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 정작 30여년 이상을 가정의 버팀목이 되어준 아내에겐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다며 무덤덤해도 불평 한마디 없던 아내가 그만 넘어진 것이다. "인대가 파열되고 다리가 골절되어" 보조기구를 하고 깁스를 한 채 집안일을 걱정하는 아내의 희끗희끗한 머릿결이, 곱던 눈매 언저리에 잡힌 주름살이 안쓰럽기만 한 것이다.
 
곱고 착한 아내를 갉아 먹던 시간의 벌레가 이제 괴물이 되어 아내에게 태클을 건 것이다.  아내의 뼈를 축내던 골다공(osteoporosis)이란 것이 아내를 공격한 것이다. "삼십 년 넘게 같이 살면서/넘어지지 않으려고 넘어지지 않으려고/버티고 버티다/그만 한 달 새 두 번이나 넘어진 마누라", "오이지나 담그며 보낸 세월이,/그래도 대마도나마 여행을 할 수 있는 날도 있기에/버티고 버티던 날들이 그만 넘어져/인대가 파열되고 다리가 부러"진 아내. 산다는 것은 "스스로 견뎌내어야만 했던/우리의 쓸쓸한 오기였는지도 모른다."는 남편의 아픈 각성이 시리다. 날씨가 풀리면서 언 땅이 녹아 길들이 미끄럽다. "낙상"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따스한 날 만들어 가야할 시간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교수 dsseo@shingu.ac.kr

 

ㅡ출처 : 문화저널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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