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 임영석
| 필사筆寫 는개 속 소나무는 솔잎이 붓끝 같다 아기울음 막 달래고 안도하는 엄마처럼 푸르고 푸른 말들을 허리 굽혀 받아쓴다. 당신이 볼 때에는 위태로운 절벽이지만 소나무는 그 절벽이 깨끗한 화선지다 목숨을 걸고 받아 쓴 풍경만을 펴 놓는다. 나이 오십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 소나무는 수십 년을 허공에 써 놓고서 저 혼자 읽고 있는데 그 글들이 신비롭다. 천둥치면 천둥소리 바람 불면 바람소리 는개에 젖어들면 그 글들이 다 지워져 다시 또 받아 적는데 그 상상이 늘 푸르다. # 홀로되신 집안 어른께서 어느 날부터인가 "필사"를 시작하시었다. "필사"를 하시기전 마치 무슨 의식을 치르듯 격식을 차리시었다. 먼저 책상 앞에서 조용히 묵상을 하신다. 그리고 나면 필사하실 책을 펼치시고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으신 다음 그 문장을 암송하신다. 완전히 암송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공책을 펼치고 펜으로 또박또박 문장을 쓰시며 암송을 되풀이 하신다. '맹자'를 끝내시더니 '논어'로 넘어가시었다. 필사된 수십 권에 이르는 공책을 펼쳐보면, 그곳엔 외로움이라는 절벽과 면벽하시며 "푸르고 푸른 말들을 허리 굽혀 받아 쓴" 삶의 풍경이 절절하여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살아가면서 내가 만났던 삶의 절벽 앞에서, 그 절벽을 내가 새로 도전해야 할 "깨끗한 화선지"로 받아들여 목숨 걸만큼 필사적으로 주어진 상황을 "필사"하였던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천둥치면 천둥소리 바람 불면 바람소리/는개에 젖어들면 그 글들이 다 지워져" 다시시작 해야 할지라도, 소나무처럼 푸른 의지로 삶의 절벽을 새로 써야 할 "깨끗한 화선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가를 생각해 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교수 dsseo@shingu.ac.kr) |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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