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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 (144) 매혹과 완숙의 서정 - 돌배 씨 / 김남극

문근영 2013. 10. 10. 11:10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 (144) 매혹과 완숙의 서정

 

 

돌배 씨
   
 김남극 
   
  돌배는 딱 깨물어 씨방을 갈랐을 때 씨가 까맣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상을 내다보면 다 익은 것이다
 
  그러니까 검은 눈동자가 늘 문제다
 
  유년기를 갓 벗어난 어느 날 개울을 건너다 본 그 허벅지가 유난히 흰 그 계집애의 눈동자가 별나게 검었다
 
  최루탄 속에서 돌아갈 길이 아득한 눈물 속으로 내 손을 끌어주던 그 여자의 눈동자도 별나게 검은 빛이었다
 
  지금 내 옆에 반듯하게 조용히 잠든 아내가 하늘거리는 짧은 치마 속으로 내 마음을 끌고 들어갔을 때 어둠 속에서 본 그 유난히 검은 눈동자
 
  검은 빛은 완숙의 경지고 매혹의 경지고 그래서 그 속에 들면 자발적 수형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하늘 가득 매달린 돌배들이 어설픈 푸른빛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다
  돌배를 하나 따서 딱 깨물어 본다
 
  씨가 검다
  물기가 남았다
 
  씨는 씨방 속에서 참 많이 울었나보다
 
  울음 속으로 들어가 본다
 
  나는 이 마가리*를 떠날 수 없다 
 
 
*마가리: 영동방언, 골짜기의 맨 끝
 
# 시인은 사물의 이름을 떼어버리는 자이며 새로운 이름을 작명하는 자이다. 이름 그 너머를 기웃거리다 마침내 의미의 경계를 넘어서는 발칙한 존재이다.

 김남극 시인은 돌배를 말하면서 돌배에서 벗어나 있다. 사물과의 거리를 조율하면서 시의 밀도를 높이는 작품이 「돌배 씨」다. 시의 화자는 야생 돌배에서 검은 눈을 발견한다. 그 눈은 세계를 읽는 창이면서 추억의 공간으로 진입하는 문이다. “어느 날 개울을 건너다 본 그 허벅지가 유난히 흰 그 계집애의 눈동자”에서 시작된 회상의 지평은 청년기, 장년기로 이동하면서 확장된다. 여기서 “검은 빛”은 “완숙의 경지고 매혹의 경지”여서 화자는 “자발적 수형자”가 된다. 즉 화자가 지향하는 공간은 완숙과 매혹의 경지이다.

 6연에 이르러 시는 슬쩍 방향을 튼다. 유연한 선회이다. 과거에서 현실의 자리로 돌아와 화자는 눈앞의 대상을 직시한다. 덜 익은 돌배 하나를 따서 입에 넣고 깨문다. 거기서 화자는 다시 검은 눈을 발견한다. 그리고 “씨는 씨방 속에서 참 많이 울었나보다”고 추측한다. 울음은 신산한 삶의 이력인 것. 축축하게 젖어있는 생의 표정인 것. 화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단순히 관찰자의 위치에서 울음을 읽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울음의 세계에 발을 들이미는 것이다. 완숙과 매혹의 검은 눈에서 생의 아픈 서사로 확장되는 「돌배 씨」는 억지나 작위의 몸짓이 보이지 않고 이미지의 흐름과 전개가 자연스럽다.

 마지막 행에서 시의 화자는 “나는 이 마가리를 떠날 수 없다”고 천명한다. 단호한 결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생의 현장에서 한 발자국도 비켜서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돌배라는 사물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아우르는 세계는 은근하면서도 뜨겁고, 서정의 숨결 또한 살갑고 보드랍다. 다시 말하면 이 시는 매혹에서 완숙으로 가는 작품으로 소박한 정서의 결을 간직하면서도 공감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점이 이 시를 가까이서 다시 읽게 된 이유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ㅡ출처 :문화저널 2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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