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의 「마음의 내과」평설 / 김나영
마음의 내과
이병률
마음의 내과 이 말이 그 말로 들릴 때 있지요
그 말도 이 말로 들리지요
그게 마음이지요 왜 아니겠어요
몸피는 하나인데 결이 여럿인 것처럼
이 사람을 귀신이라 믿어
세월을 이겨야 할 때도 있는 거지요
사람 참 마음대로지요
사람 맘 참 쉽지요
궤짝 속 없어지지 않는 비린내여서
가늠이 불가하지요
두 개의 달걀을 섞어놓고 섞어놓고
이게 내 맘이요 저것이 내 맘이요
두 세계가 구르며 다투는 형국이지요
길이가 맞지 않는 두 개의 자(杍)이기도,
새벽 두 시와 네 시 사이이기도 하지요
써먹을 데 없어 심연에도 못 데리고 가지요
가두고 단속해봤자
팽팽히 와글대는 흉부의 소란들이어서
마음은 그 무엇하고도 무촌(無寸)이지요
............................................................................................................................................................................
그의 책 제목들이 그러했거니와, 이제껏 이병률에 관한 이야기에서의 키워드는 ‘바람’과 ‘끌림’이었다. 이들은 다시 시인에 의해 ‘여행’으로 매개되어 하나의 덩어리진 시적 에너지가 된다. 한 평자는 시인을 두고 “저 자신 바람의 혈육이라고 믿고 있는” 사내라고 한 바 있듯, 이병률의 시는 개인의 생활이 곧 바람이 되는 일임을 보여준다. 여행이 그러하지 않은가. 정처 없이, 얽매임도 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흐르는 것. 그러다 보면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한, 어쩐지 끌리는 이를 만나기도 하는 일. 그것이 여행이고, 또한 생활이라 할 때 이병률의 시는 바람처럼 서늘하고 생생하다.
이병률이 삶이 아닌 생활을 내세울 때, 시의 에너지는 일상의 구체적인 사건을 생생히 살아있게 하고, 그 열띤 시간을 감내한 자의 응결한 목소리를 배음처럼 되살아나게 한다. [찬란]에서 그것은 생생한 흐름보다 서늘한 기운에 가까운 것이다. “차가운 물의 명백함을, 물이 들어 지워지지 않는 그 격렬한 시간들”을 알아버린 자의 서늘한 시선 혹은 목소리는 “찬란”이라는 단어에 응집해 있다. 고이지도, 스며들지도 않은 채 그저 바람처럼 흐르고 사라지던 자는 이제와 문득 어떤 자리와 둘레를 감각하는데, 이것은 나를 나이게 하는 당신에 대한 자각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찬란하다는 말은, 내가 문드러지도록 빛났던 때가 있다면 그건 오로지 당신 덕분이라는, 자가 진단한 마음의 증상이다. ‘마음의 내과’에서 나는 당신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이려 하지만, 어쩐지 성취되지 않는다. 마음은 비린내처럼 형언할 수 없고, 휘저은 두 개의 달걀처럼 구분할 수 없고, 눈금이 다른 두 자로 잰 길이처럼 확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시도 아니고 네 시도 아닌 그 사이의 어느 즈음처럼, 부정(不定)과 짐작의 소란이 잦아들 때 명치에 팽팽히 맺히는 새벽이슬처럼, 진단할 수 없는 당신에 대한 나의 마음이란 계속해서 오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나영 (문학평론가)
ㅡ출처: http://cafe.daum.net/poemory(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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