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청스러움 혹은 에로티시즘의 해학 | ||||||||||||||||||||||||||
| 신광철의 시읽는 CEO(001) 오탁번의 굴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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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출의 창업영웅이자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별칭으로 회자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티브 잡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시를 읽는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공자는 "시에서 일어난다(興於詩)"고 했습니다. 이것이 경영자가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고품격 창업신문, '창업닷컴'은 신광철 시인에게 청하여 독자여러분을 시에서 일어서는 경지로 안내하기 위해 '신광철의 시읽는 CEO'를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짐이 될 때가 있습니다. 살아있음을 통곡하고 싶은 날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삶의 하중을 감당하지 못해 그저 주저앉아 손 놓아야 하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목 놓아 울어도 풀리지 않는 답답한 현실 앞에서, 그래 다 놓아버리자며 세상에 등을 돌리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있습니다.
마음 한 번 돌리니 세상이 달라져 있다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성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결혼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했다고 해서 죽일 일이 되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기쁨 하나 더 만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과만 평생을 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은 사회적인 계약일 뿐이지요. 그러한 내용을 주제로 했으나 웃음이 얼굴에 절로 나타났다가는 순간 가슴 뭉클해지는 거지요.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전개 과정이 소설의 전개방식을 닮았습니다. 하나의 풍경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매는 여인과 굴비장수의 만남은 아주 공개적이면서도 은밀함을 감추고 있습니다. 만남의 장소가 수수밭 솔개그늘이라고 합니다. 수수밭은 얼기설기 엮어진 담처럼 바람은 숭숭 뚫린 수숫대 사이로 지나고 하늘은 열려있습니다. 김매는 것을 보면 수수는 아직 사람 키만큼은 자라지 않은 듯합니다. 햇볕을 피하기에는 수숫대가 너무 작아서 그늘이 그리운 겁니다.
솔개그늘이란 솔개가 날 때 땅에 생기는 작은 그림자처럼 아주 작은 구름이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그늘이지요.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들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다 보면 솔개그늘이라도 정말 고마운 것입니다. 솔개그늘에서 쉬는 여인네에게 정적을 깨고 찾아온 굴비장수가 있습니다. <-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 -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라는 상황전개부분까지는 아주 일반적이고 별문제가 없습니다. 멀리서는 뻐꾸기가 울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헌데 찾아온 굴비장수의 행색이 특별하기는 합니다.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가 /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고 있습니다. 메기수염이라는 단어에서 세상의 멋을 아는 굴비장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메기수염이란 길게 말려 올라간 수염을 말하는데 굴비장수의 수염은 인위적으로 말아 올려야만 가능한 수염이거든요. 메기수염이 주는 느낌에서는 바람기와 속물적인 모습도 보입니다. 메기수염과 맥을 같이하는 행동이 보이는 것은 다음 줄입니다.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가
뙤약볕 들녘을 둘러보는 품새가 눈치 빠른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라는 그거를 할 수 있는 상황인가를 둘러보고 굴비장수는 말을 던졌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능청떨 필요가 없습니다. 점잖은 사람이나 나대는 사람이나 다 좋아하는 것이거든요. 은밀하면서도 공개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성이 사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아주 특별한 결과를 가지지 않았다면 성은 스포츠나 오락이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성이라는 행위 뒤에 신비스러운 생명의 탄생이 있기 때문에 성스러운 의식으로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결혼이란 것도 사실 가만히 뜯어보면 '성의 독점'이라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결혼으로 재산의 공유를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동성끼리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연대성을 이야기하지만 이것도 동성끼리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결혼은 성의 교환을 전제로 하는 의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성의 독점은 사회의 불문율로 되어갑니다. 이것은 권력과 부의 세습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하지만 사람의 이기심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시를 이런 식으로 파헤치면 정말 재미없는 시가 될지도 모릅니다.
아주 편하게 접근하고 있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에 기대어서 살아가는 순박하고 어수룩하기까지 한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철학적이거나 명상적인 것과는 일정거리를 두고 쓰였음을 한 번에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읽어볼까요.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왜냐하면, 이 시는 <앞>이라는 한국어가 가진 중의적 해석의 차이에서 빚어진 사건을 주제로 해서 건져 올린 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가 오탁번 시인의 대표시처럼 회자되는 것은 뭉클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여기서 사내는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한 아내에게 뒤틀린 속내를 다 드러내지는 않고 지금까지의 일은 다 묻어두고 앞으로는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합니다. 웃음의 꼭짓점은 단어해석의 차이에서 방향을 틉니다.
사내는 앞이라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인은 행위의 방법으로서의 앞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정사위니 후배위니 하는 것 말입니다. 여인에게 정조관념이니 하는 것은 애초에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 사는 일이 먹고사는 일과 동일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을 여인은 체험으로 알고 있었고, 사내는 관습과 인간의 도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사는 점에서 두 사람의 의식세계가 조금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지요.
오탁번 시인의 <굴비>라는 시는, 사실 시라기보다 한 편의 콩트 같기만 합니다. 김유정의 단편소설에서 드러나는 먹을 것을 위해 몸을 파는 여인을 이 시에서 만나게 됩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삶의 경계에서 시인은 둘 다를 끌어안고 있습니다. 눈물을 웃음으로 이끌어오는 시인의 수완은 고도의 기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오탁번 시인은 성을 희롱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인간성의 회복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 시가 천박한 성희롱이 아니라 성공한 시가 된 것은 바탕에 듬직한 인간긍정의 후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그린 묘사가 그렇고 시선의 긍정이 그렇습니다.
-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 -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라는 사내의 금지명령이 있었지만, 천연덕스럽게 사내와 여인의 관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화스럽게 이어지는 천진성에서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성보다는 가족 자체의 안정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사내가 여인에게 보상심리를 가진 듯 <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 사내와 계집은 /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고 있습니다.>
사람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눈물이 호수처럼 고여 있습니다. 살아내는 일이 만만치 않거든요. 마른 땅에 밭을 일구고, 조그만 소출을 가지고 살면서 고기맛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내가 쉬지 않고 일을 해도 가난은 벗을 길 없는 처지지요. 먹고살아야 하는 일이 지난하고 힘들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마다 삶은 힘들기만 하지요.
오탁번 시인의 <굴비>를 읽을 때마다 웃음과 함께 쌉싸롬한 뒷맛이 느껴집니다. 다 읽고 나면 뭉클한 아픔이 잡힙니다. 이 시의 종착역에서 반전은 이루어집니다. 사내와 여인의 시선이 서로 다른 데 있음을 보게 됩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여인에게는 애초에 성행위의 도덕성에 대한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내, 남편의 고생과 맛있는 것을 마련해 주고 싶은 여인의 마음씀이 먼저임을 보게 됩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오탁번 시인의 균형 감각은 이 세계의 질서를 바라보는 순결하고 원형적인 시각에 힘입어 더욱 정교한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탁번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순수 의식의 근간이기도 하고요. 오탁번 시인의 가슴의 중심선을 흐르는 고향의식과 동심적 상상력 역시 이러한 순수 지향성과 이어질 것입니다.
세련된 현대감각을 도입한 창작 기법을 추구하면서 잊혀 가는 순우리말과 전통적인 삶에 계속적인 관심을 가져오고 있는 오탁번 시인의 주요 소재는 고향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남호 씨가 오탁번 문학 세계의 특질에 대하여 "순수가치는 절대적으로 신봉 되고, 그것은 세계의 척도로 사용한다. 이때 순수는 왜곡되기 이전의 순수이다."라고 한 점 역시 오탁번 시에 나타난 동심과 고향의식의 결합에 대한 지적과 통할 것입니다.
오탁번은 삶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는 것을 도시 속에서 확인하며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있는 듯합니다. 인간이 가진 순수한 마음을 원형적 공간으로 환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탁번 시인에게서 고향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와의 삶과 관통시켜서 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탁번 시인은 1943년입니다. 시인의 나이도 황혼을 건너고 있습니다. 오탁번 시인은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아침의 예언』, 『너무 많은 것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겨울강』, 『1m의 사랑』, 『벙어리장갑』 등 6권의 시집을 상재하였습니다.
오탁번 시인은 시 뿐만 아니라 소설과 평론 및 문학 연구 등의 분야에서도 활약하여 여러 권의 작품집과 평론집 및 이론서를 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고유어와 한민족의 원형적 정신세계에 대해 유달리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현대 시사에서 색다른 영역을 구축한 시인이었고, 실험과 전통을 접합해 새로운 시 세계를 개척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탁번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잘 익은 서정성은 전통을 수용으로서 이해될 일이 아니라 현재적인 관점에서도 웃음과 가슴 뭉클함을 가져다주는 시의 출산을 보게 됩니다.
우선 오탁번 시인의 시를 만나면 첫 느낌이 짓궂은 장난기지요. 장난기를 가장 잘 살려줄 수 있는 것이 상황적 위치를 보여주는 짧은 정황과 재치가 넘치는 발랄한 구어체의 대화 형식을 그 안에 배치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굴비>가 그러한 글의 대표적인 시이기도 하고요. 오탁번 시인에게 있어서 성은 진지함에 바탕을 둔 아득한 슬픔을 끌어오는 비장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발랄함을 전체적인 기조로 한 골계를 보여줍니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 묘사는 느닷없다는 말이 어울리는 전환을 만들어내며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탁번 시인에게 다가간 시어들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순수성으로서의 성에 접근하기 때문에 맑고 투명한 느낌을 주지요. 은폐는 한순간에 파괴되고 대신 웃음과 따뜻한 인간애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탁번 시인의 시가 난잡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순수성과 인간애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지요. 오탁번 시인의 인생도 이 시 <굴비> 속의 여인처럼 가난해서 그 가난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탁번 시인이 경험한 가난은 시대의 가난이기도 했지만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이거든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자괴감을 불러오기에 충분하지요. 결국, 삶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가난이기도 합니다. 오탁번 시인의 회고의 한 부분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원주중고등학교에 다녔는데 고등학교 마지막 반 학기는 다니지 못했어. 가난한 자신이 너무 비루하고 처참해서 견디지를 못하겠더라구. 그때 나는 같은 학년의 입주교사를 했는데 어느 날 말이야,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밥숟가락에 웬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거야……. 내 눈물이더라구……. 그날로 학교를 그만 둬버렸지.
가난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반 학기라면, 숨 한 번 꼴딱 삼키면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고비를 넘지 못하고 그만 공부를 포기하고만 시인의 인생을 반추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입주교사란 공부를 하는 학생의 집에 들어가 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시인은 머리가 좋았던지 노력을 더 했던지 같은 학년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동급 학생이라면 밖에 나가면 친구고 집에 들어가서 공부를 가르치는 순간은 선생인 셈인데, 가르치는 일로 얹혀서 사는 격이지요.
남의 집 살이라는 것이 언제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자리인 것을 부인하지는 못하지요. 어린 나이에 철이 들 수밖에 없고, 눈칫밥이 싫어서 이렇게 공부하느니 그만 두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게지요.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밥숟가락에 웬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보니, 그것이 자신의 눈물이더라는 것이지요. 그날로 학교를 그만 두었다는 시인은 가난이 주는 세상의 눈물을 이해한 사람이었지요.
시인이 그날 이후로 인생을 망쳤거나 공부를 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오탁번 시인은 없었을지도 모르지요. 그에게 긍정의 씨앗을 심어준 것은 그가 공부를 가르치던 같은 학년의 학생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해봅니다. 공부를 그만두었음에도 공부를 하던 동급생의 집안에서 시인의 학비를 내 주었고 친구가 가져다준 입학원서로 대학에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더욱 그러한 가정은 이해됩니다.
비슷한 류의 시 한 편을 더 만나보시지요.
할머니 산소 가는 길에
내 잠지가 아빠 잠지보다 더 커져서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호호호 웃는다
「잠지」 전문
무슨 설명이 필요한 시는 아니지요. 읽고 나면 다 이해되고, '엄마가 호호호 웃듯이' 그냥 웃어넘기면 되는 시지요. 이 시에서 관능적이거나 선정적인 느낌은 뒤로 숨고 동심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순수에 깊이 발을 담군 성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투명하면 시도 맑아져서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합니다.
◆ 신광철 시인은?
● 신정순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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