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미물(微物)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시선
-복효근 시집『따뜻한 외면』(실천문학사,2013)
이종암
원고 마감이 오늘까지인데 이제야 이 글을 시작한다. 원고는 마감 전에 써야 옳은데, 내 원고는 왜 이리 늘 늦게만 시작되는지. 월요일 아침 조회를 마치고 나서 시작한 1교시 수업, 3학년 10반에서 김현승의「플라타너스」와 김춘수의「꽃」이라는 시를 가르쳤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의 시적 전언(傳言)처럼 존재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존재의 구석진 곳과 그 아픔을 불러내는 것이 시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복효근의 새 시집『따뜻한 외면』(실천문학사,2013)을 읽으며 시가 무슨 거대 담론이나 이념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일상의 보잘 것 없는 삶의 여러 관계들에서 빚어진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복효근의 시가 빚어지는 관계는 먼저 가까운 가족의 삶에서 비롯된다. 노환(老患)에 힘겨워하시는 어머니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지나 함께 늙어가는 아내(이녁), 먼 데 공부하러 슬하(膝下)를 떠난 자식들이 복효근의 시 공장을 돌리고 있다.
어머니 혼자 기저귀를 가신다
스스로 아기가 되어
쭈그리고 앉아 기저귀를 가신다
어머니는 여자였구나
아버지가 나를 만드실 나이의 아버지가 된 내게
각시처럼 부끄러워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앙상한 엉덩이뼈를 감싼다
업거나 안고서
어디로 데려가겠다는 것 같다
그 어디에 가서는 진짜 아기가 될 것이다
죽음의 둘레가 만삭이다
산통이 좀 길다
-「어머니, 여자」전문.
이 시는 “요실금”으로, “20년 묵은 류머티즘 관절염”(「하늘님의 요실금」)으로 고생하시다 먼 길 떠나신 어머니의 병환에 관한 작품이다. 복효근 시인은 시의 말미에 “2011년 8월 13일 어머닌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 새 몸을 받아 아기로 태어나셨을까.”라고 부기(附記)를 얹어놓고 있다. 돌아가시기 직전의 어머니가 스스로 아기가 되어 부끄러워 불도 켜지 않은 채 혼자서 기저귀를 가는 모습을 보며 복효근 시인은 “어머니는 여자였구나”를 느끼며 또 “그 어디에 가서는 진짜 아기가 될 것이다”라며 안타까움의 울음을 속으로 삼키고 있다. 주관적 감정을 절제한 객관적 묘사가 상황의 슬픔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시의 마지막 2행 “죽음의 둘레가 만삭이다/산통이 좀 길다”에는 어머니를 곧 떠나보내야만 하는 아들의 울음이 흥건하게 배어있다.「어머니, 여자」외「하늘님의 요실금」「호박오가리」「쭈글쭈글」「당신」「고려장」「하늘님의 동기간」등이 저 세상으로 건너가기 직전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빚어진 작품들이다.
6월 저녁 어스름
어둠이 사물의 경계를 지워나갈 때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어두워지는 일이 이리 좋은 것인 줄 이제 알게 되네
흐릿해져서
흐릿해져서 산도 나무도
무엇보다도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싸웠던 일들도 흐릿
흐릿해져서
개망초 떼로 피어선 저것들이 안개꽃이댜 찔레꽃이댜
안개꽃이면 어떻고 찔레꽃이면 어뗘
개망초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뗘
꽃다워서 좋더니만
이제 꽃답지 아니해서 좋네 이녁
화장을 해서 좋더니
화장하지 않아서 좋을 때가 이렇게 왔네
저녁 이맘때의 공기 속엔 누가 진정제라도 뿌려놓은 듯
내 안에 날뛰던 짐승도 순하게 엎드리네
이녁이라고 어디 다를라고
뭐 죽도록 억울하지는 않아서 세상 다 용납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듯
어둠 속에 둥글어진 어깨를 보네
이대로 한 이십 년 한꺼번에 더 늙어지면
더 어둡고 더 흐릿해져서
죽음까지도 이웃집 가듯 아무렇지도 않을 깜냥이 될까
모든 일이 꼭 이승에서만이란 법이 어디 있간디
개망초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뗘
꽃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뗘
그때 기억할까 못 하면 또 어뗘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지는 꽃 쪽으로도 마음 수굿이 기울어지던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전문.
제목 그대로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돌 듯 그저 부담 없이 편안하게, 잔잔히 물 흘러가는 어조로 우리네 삶의 진리를 묘파하고 있다. 동요의 한 구절 같이 편안하게 들리는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가 바로 이 시의 주제가 되겠다. 우리네 삶에서 “6월 저녁 어스름”,“화장하지 않아서 좋을 때” “어둠 속에 둘글어진 어깨” “지는 꽃 쪽으로도 마음 수굿이 기울어지던”과 같은 소멸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수긍하고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복효근 시인도 이제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어서고 있음이다. 아, “개망초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뗘/꽃다워서 좋더니만/이제 꽃답지 아니해서 좋네 이녁”, “죽음까지도 이웃집 가듯 아무렇지도 않을 깜냥이 될까”라고 지천명의 삶에서 체득된 진리를 이렇게 쉬운 노래로 풀어내고 있다.
복효근의 시가 빚어지는 관계망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시인 주변의의 소소한 일상의 편린들이나 생명과 자연 현상에서도 그 관계망은 때론 재마나게 때론 진지하게 작동된다. “담장 아래 땅에 반쯤은 묻혀” “버려져 쓰레기가 된 종이컵 하나”에서 소멸의 기꺼운 표정을 읽어내는「어떤 종이컵에 대한 관찰 기록」, “위기에 닥쳐서는 그 많은 다리가 소용없어/천적에게서 몸을 감추는 대신/천적으로부터 까마득히 멀어지는 대신/동그랗게 제 몸을 말아서 슬픔의 팔다리와 주둥이와 항문과 성기를/제 몸 안으로 욱여넣고 검은 콩알로 변신해버리”는 그리하여 “공(空)!”이라는 “만유의 본질을 단박에 몸으로 보여주는” 시「공벌레」, “거친 물살에 제 살을 깎으며/강을 거슬러 오르”는 “화살촉 같은 몸짓”의 물고기를 보며 “살아 있는 물고기만이 비린내가 없다고” 말하는「성(聖) 물고기」, “사는 일이 더러 그렇다/가슴팍에 대못 몇 개 박아둔 채/정비소로 가든지 폐차장으로 가든지/ 갈 데까지는 가는 것/갈 때까지는 가야 하는 것/치유를 꿈꾸지 않는 것/꿈꾼대도 결국 치유되지 않을 것이므로/대못이 살이 되도록 대못을 끌어안는 것”이라 노래하는「타이어의 못을 뽑고」등의 시편들이 우리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소한 현상이나 미물(微物)에서 생의 비의(秘義)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런 유형의 작품들은 예시한 것 외에도 여럿이 있는데, 이는 일상의 작은 경험 하나 하나도 예사로 보지 않는 복효근 시인의 섬세한 관찰력과 생명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복효근 시인이 남원의 도시적 삶을 청산하고 지리산 아래 범실마을로 새로이 거처를 옮김으로 해서 앞으로 자연과 생명을 노래하는 그의 시편들은 더욱 늘어날 것 같다.
복효근의 새 시집『따뜻한 외면』에서 필자가 오래 주목한 시편들은「자작나무 숲의 자세」「폭포」「적막은 키가 크다」「참돔-한창훈」「대승기신론소-무애무」등이다. 돼지감자의 다른 이름인 뚱딴지꽃에서 생의 절망을 건너가는 ‘적막은 키가 크다’는 것을 통찰해내는「적막은 키가 크다」, 먼 여행지 추운 북쪽 지방에 가서 본 자작나무 숲에서 “속살로 생을 건너가는 성자들처럼/다만 견딜 뿐 아니라 그 빛깔을 닮아버려서/벗은 살결조차 눈빛이다//이 나무의 족속을 우러러 올려다보아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천지사방에 길이 막혔을 때/하늘을 향하여 한사코 길을 내는 기도의 자세”를 읽어내는「자작나무 숲의 자세」라는 작품도 좋지만 아래의 시「폭포」는 가히 절창(絶唱)이라 부를만하다.
직하(直下)*라커니
곧은 소리**라커니 하지만
물줄기는 주춤대다 망설이다
휘어져 떨어지기도 한다
지사형의 수직도 좋지만
나는 저 인간적인 휘어짐이 좋다
큰 줄기 곁에는
작은 줄기들의 작은 소리들
불평하듯 탓하고 욕하듯
중얼거리듯 한탄하듯 흥얼거리듯
소(沼)에 떨어지기도 전에
물방울로 흩어져 어지러운
어지러운 소리들이
무지개를 걸어놓기도 한다
두려움에 떨며
떨다가 질끈 눈 감고 뛰어내리는
저 작은 물줄기들의 투신에
폭포는 비로소 장엄 폭포가 된다
*이백「망여산폭포」.
**김수영「폭포」.
인용한 복효근의「폭포」는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라 명명(命名)한 당나라 이백의「망여산폭포」나 고매한 정신처럼 곧은 소리를 부르며 떨어진다고 한 김수영「폭포」와는 대상에 접근하는 태도부터가 다르다. “지사형의 수직”이 아니라 “인간적인 휘어짐”으로 폭포를 노래하고 있다. 그 “인간적인 휘어짐”은 주춤대다 망설이고, 불평하듯 한탄하듯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작은 줄기들의 작은 소리들”이 내는 것이다. “두려움에 떨며/떨다가 질끈 눈 감고 뛰어내리는/저 작은 물줄기들의 투신에” 의해 찬란한 무지개가 걸리고 “폭포는 비로소 장엄 폭포가 된다”고 한다. 장엄 폭포를 이루는 저 작은 물줄기들은 우리의 도도한 역사를 밀고 온 민중적 연대의 또 다른 알레고리일 터, 복효근 시인은 이렇듯 우리 주변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의 상처와 그늘을 모아 아름다운 서정시를 빚어내고 있다. 우리 시문학사에 김수영의「폭포」와 이형기의「폭포」곁에 복효근의 위 시를 놓아두어도 그리 흠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복효근 시의 특장은 시인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시가 빚어진다는 것이고, 또 그것이 난삽한 시행으로 독자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서정의 물살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에 있다. 동료 문인 소설가 한창훈과의 관계에서 빚어진 시 한 편과 복효근과 문인수, 이원규 세 시인의 공동작이라 부를 만한 또 한 편의 시를 소개하면서 어설픈 필자의 복효근 시 읽기를 끝맺는다.
소설가 한창훈의 책『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어딘가에
“참돔 회엔 물결무늬가 있다”는 구절이 있다
어거 시가 되겠다 싶어 한창훈에게
그것 내 시에 가져다가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원래부터 그게 갸한테 있는 것인디 내가 어쩔 거여 갸한테 물어야제”하더라
살다 보니 참돔에게 허락받을 일도 있어서 참 난감하였으나
분명한 것은 참돔에게 있다는 그 거문도 앞바다의 검질긴 물결무늬가
웃는 듯 마는 듯
한창훈 이마에도 몇 자락 있다는 것이다
-「참돔-한창훈」전문.
지난 여름 섬진강가에 사는 이원규 시인 집에 갔을 때
같이 와 계시던 문인수 시인이
내려다보이는 강가 모래벌판을 가리키며
저거 이원규 시 쓰는 연습장 했으면 좋겠다 하신 뒤로
이원규가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가끔 지나칠 때면 이원규도 문인수 선생도 모르게
나도 그 연습장 몇 번 써보긴 했던 것을
당신들은 알까 모를까
그건 그렇고
오늘처럼 천지간에 눈 가득 내린 날은
온 지리산이 하늘님이 주신 연습장인데
이원규나 문인수 시인이 혹여 내 연습장 쓰실까 하여
눈이 왔다고 눈이 온다고
전화를 할까 말까 크게 고민스러운 시간이 있기도 하였다
-「눈 연습장」전문.
ㅡ출처 : 『詩하늘』(2013. 여름)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禪의 본성을 찾아가는 시의 순례 / 최선옥 시인 (0) | 2013.10.02 |
|---|---|
| [스크랩] 이 아침의 시 / 한광구 - 나무수도원에서5 (0) | 2013.10.02 |
| [스크랩] 이승희 시인의 詩, `종점들` / 박완호 (0) | 2013.09.30 |
| [스크랩] 문인수 -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 비 / 달북 / 동강의 높은 새 (0) | 2013.09.30 |
| [스크랩] 최하연의 「피아노」평설 / 강동호 (0) | 2013.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