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주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한 한국문학선집에 수록된 시 4편)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문인수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
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앉는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동강의 높은 새』. 세계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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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문인수
흐린 날은, 바람 한 점 없는 날은 비.
젖은 것들의 몸이 잘 보인다 치잉 칭 감기는, 빗줄기의 한쪽 끝을 몰고 새 날아간다. 건물과 건물 사이 세 뼘 잿빛 하늘 가로질러 짧게 사라진다. 창유리 창유리들이, 나무 나무의 이파리 이파리 풀잎들이 모두 그쪽을 보고 있다 잘 보이는, 뇌리 속의 새 길게 날아가는 아래, 젖어 하염없이 웅크린
몸, 섬 같구나 그의 유배지인 몸.
(『뿔』.민음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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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북
문인수
저 만월, 만개한 침묵이다.
소리가 나지않는 먼 어머니.
아무런 내용도 적혀있지 않지만
고금의 베스트 셀러 아닐까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만면 환하게 짖어 통하는 달.
북이어서 그 변두리가 한없이 번지는데
괴로워하라, 비수 댄 듯
암흑의 밑이 투둑, 타개져
천천히 붉게 머리 내밀 때 까지
억눌러라, 오래 걸려 낳아놓은
대답이 두둥실 만월이다.
(『현대시학』. 200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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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의 높은 새
문인수
동강 높이 새 한 마리 떴다
저, 마음에 뚫린 구멍, 꼭 그만하다.
산의 뿌리가 다 만져진다.
단 일획 깊이 여러 굽이 새파랗게
일자무식의 백 리 긴 편지를 쓴다.
(『동강의 높은 새』. 세계사 2000년)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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