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다는 것
박영석
전지되어 뭉툭한 사과나무에는 둥근 달이나 열려라
둥근 것은 얼마나 환하냐고
모서리를 버린 것들은 이렇게 환하다고
둥그렇게, 둥그렇게 열려라
웅크리고 앉아 먼산 보는 노인의 등 같은 오랜 등 긂
보라 둥근 것은 얼마나 먼가
나무 아래 누워 나무로 돌아가고 있는 사과를 보면 알리라
껍질에서 씨방까지가 얼마나 먼지
씨방에서 씨방까지는 또 얼마나 아득한지
그 모든 것들의 저녁은 얼마나 느리게 둥글리는지
둥글리면서 흐르는 개울물소리는 얼마나 쓸쓸한지
들판을 건너오는 저녁소의 울음소리
젖은 자갈돌이 몸 뒤집는 소리
파도가 붉은 해안선을 핥는 소리
목이 긴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 소리는
얼마나 멀고 둥그런지
발끝에 달빛을 매달고 동굴을 기어 나오는
등딱지가 검은 게의 연대기처럼
저기, 지층과 지층 사이를 날아가는 새들의 둥근 길을 보라
ㅡ시집『공이 오고 있다』(지혜, 2012)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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