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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정주] 겨울 어느날의 늙은 아내와 나

문근영 2013. 9. 16. 11:10

겨울 어느날의 늙은 아내와 나

 

서정주

 

 

오랜 가난에 시달려온 늙은 아내가

겨울 청명한 날

유리창에 어리는 冠岳山을 보다가

소리 내어 웃으며

“허허 오늘은 관악산이 다 웃는군!”

한다.

그래 나는

“시인은 당신이 나보다 더 시인이군!

나는 그저 그런 당신의 代書쟁이구…….”

하며

덩달아 웃어본다.

 

 

 

-서정주 시집『80 소년 떠돌이의 詩』(시와시학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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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 서정주 선생은 지난 2000년 12월 24일 이 세상을 버리고 아내 방옥숙 여사가 두 달 앞서 가 있는 저 세상으로 건너가셨다. 내년이면 선생이 가신지 10주기가 된다. 10주기에 맞춰 선생의 후학들이 세상에 발표된 선생의 시집들을 새로 정리하여 정본의 전집을 펴내려고 한다. 이는 한국문학의 귀중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이 시는 그가 남긴 15권의 시집 가운데 마지막 시집『80 소년 떠돌이의 詩』맨 마지막에 실려 있다. 문학지『시와 시학』2000년 봄호 창간 9주년 축시로 발표된 작품인데, 선생의 사후에 증보판으로 새로 묶여질 때 추가된 작품이다. ‘겨울 어느 날의 늙은 아내와 나’라는 시의 제목도 내용도 그저 범상한 것만 같다. 그러나 다시 꼼꼼히 시를 읽어보면 범상치 않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바람처럼 언어를 수월하게 풀어놓는 노 시인의 대가적 풍모를 우리는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늙은 아내가 “허허 오늘은 관악산이 다 웃는군!”하는 소리에 “나는 그저 그런 당신의 代書쟁이구…….”하는 미당의 응대 소리에 시가 그냥 살아난다. 팔십 평생을 바람처럼 떠돌던 시인 사내의 뒷바라지를 묵묵히 다해준 늙은 아내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헌시(獻詩)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 저 세상에 가서도 이런 노래를 그는 또 부르고 있을까 몰라.

 

ㅡ이종암(시인)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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