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박 철] 딸을 기다리며

문근영 2013. 9. 15. 20:15

 

딸을 기다리며
-고3 아이에게


박철

 


 

늦은 밤이다

이 땅의 모든 어린 것들이 지쳐 있는 밤

너만 편히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지구상 어느 나라에 우리처럼

가난은 곧 불행이다, 라는 공식을 외우며

걸식하듯 밤하늘을 쳐다보는 바보들이 있을까

오늘도 뉴스에는

여성들의 80%가 결혼조건의 최우선으로

경제능력을 꼽는다지만

막상 부자로 사는 이들은 열의 둘이란다

그러니 가난을 물리치는 대신 행복을 찾는 게 낫지 않겠느냐

하는 의연함을 키우다가도 옆집 갓난아이

슬픈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빈 주머니를 쑤셔본다 너를 기다리며

딸아 가여운 아이야

많은 이들이 옳다면 옳은 것이겠지

지지 말고 살아라
이민 가며 친구가 남긴 한 마디

악하게 살아야 오래 산다는 말도 되살아오는 밤

어서 돌아와 잠시라도 깊은 잠 마셔봐라 숨소리 예쁘게-

반쪽의 달이 외면하며 구름 뒤에 숨고

밤이 어둔 것조차 내 죄인양 송구스런 밤

너의 행복을 쌓으며 몇 자 쓴다 아이야

 

 


―웹진『시인광장』(2009. 겨울)

 

..................................................................................................................

 

6년 전엔 큰 아이의 고삼을 보냈고

지금은 다시 둘째 아이가 고삼 진행중이다

앞으로 6년 후 그러니까 예순 문턱에 다시 막내의 고삼을 함께 해야되는데

생각해보면 까마득하기도 하다가

금방 들이닥칠 것 같기도 하다

아이 셋

생각해보면 의식주 해결은 해주지만

그다지 알뜰살뜰하게 보살펴주지는 못한 것 같다

 

엄마를 닮아 키도 작고 몸집도 작은 둘째 아이

기숙사에서 지내며 주말엔 데리러 가고

일요일 아침엔 다시 데려다 주고

겨우 저녁 먹여 잠만 재워 다시 교문으로 밀어넣어야 하는 엄마의 마음엔

42키로 딸래미의 뒷모습은 늘 애처롭다

 

공부하란 말이 부담이 될까싶어

'잘하든 못하든 언제나 엄마는 네편이다' 라는 말밖엔 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을

읽었는지 '엄마!! 열심히 할게' 라는 답을 보내주는 아이

켜놓은 테레비는 혼자 중얼거리고

이제 학연재에서 기숙사로 무거운 하루를 접을 시간이네 라고 생각한 나의 마음과

어서 돌아와 잠시라도 깊은 잠 마셔봐라 숨소리 예쁘게-라고 딸을 기다리는

박철 시인의 마음이 아마도 같았으리라

 

이제 수능이 백이십 여일이 남았을까

대한민국 고3 모두에게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활짝 웃으며 발걸음 가볍게 수험장 문을 나설 수 있는 11월 7일이 되길 바라며...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솜나리/박숙경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