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식구
길상호
처마 밑에 놓인 밥그릇
아침엔 까치가 기웃대더니
콩새도 콩콩 깨금발로 다가와
재빨리 한 입,
빗방울이 먹다 간 한쪽은
텅텅 불어 못 먹을 것 같은데
햇살이 더운 혓바닥으로 쓰윽,
저마다 배를 불린다
정작 그릇 주인인 고양이는
잠을 자다 뒤늦게 나와
구석에 남은 몇 알로
공복을 누르지 못해 야아옹,
뒷마당으로 사라지고
고양이가 흘리고 간 한 알
개미들이 기다랗게 줄을 선다
텃밭에서 돌아온 할아버지
텅 빈 밥그릇을 보고 허허,
또 한 그릇 덜어낸 사료 포대처럼
조금 더 허리가 휜다
ㅡ출처 : 시집 『눈의 심장을 받았네』(실천문학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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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 앞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미물이나 구태여 구별할 것 없다
냄새가 우선 찾게 하겠는데
냄새를 맡은 이상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거다
배고픔을 참을 능력은 창조 때부터 주어지지 않은 것 같다
밥그릇은 원래
고양이의 것이다
이것을
까지,
콩새,
빗방울,
햇살,
고양이,
개미 차례로 보시를 받는다
고양이 밥을 챙겨주시던 할아버지의 ‘허허’는
의미심장하다
먹이를 주어야 한다는 건 자명하지만
자주 비워지면 먹이 값 대기도 힘들어진다
허리 휜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그래도 밥그릇 하나에 식구가 무려 여섯이다
보시공양인데 얼마나 좋은가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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