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긴 아깝고
박 철
일면식이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을 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품에 안은
그런 눈빛을 주고받으며
ㅡ시집『작은 산』(실천문학사, 2013)
.........................................................................................
이쯤에서 생뚱맞게도
윗글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 없는
나 먹기 싫은 떡 남주기는 싫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면지 찢어진 시집은 시인 자신이 가지면 될 것이고
남은 아귀찜은 남은대로 어떻게 하면 될 일이지만
하지만 시 속의 두 주인공은
시집을 들고 식당 여주인이 생각이 났고
식당 여주인은
내 먹기 싫은 것
아니 남아도는 것
어쩌면 남아도는 것이 아닌
새로 요리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오라하기 뭐해서
아니면 면지 찢어진 시집을 건넨 시인의 미안함을
조금 희석해보려는 식당 여주인의 너른 마음이 엿보인다
아깝다는 말
특히 여자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말
그래서 외식을 할때면
배가 터질 것 같으면서도 꾸역꾸역 잘 밀어넣는다
일어서면서 후회를 하면서도
나온 음식들을 먹어치운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아까워서라는 변명을 앞세우고 폭풍흡입을 한다
시집을 들고
아귀찜을 앞에 두고
서로가 마음이 통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시어가 아니어도
늘 독자들에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박철시인의 재치가 빛난다.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이종암] 홍매도 부처 연두도 부처 (0) | 2013.09.11 |
|---|---|
| [스크랩] [박병철] 누구나 처음은 다 그렇다 (0) | 2013.09.11 |
| [스크랩] 〔 김태정 〕달마의 뒤란 (0) | 2013.09.11 |
| [스크랩] [허연] 칠월 (0) | 2013.09.11 |
| [스크랩] [김종해] 눈송이는 나의 각角을 지운다 (0) | 2013.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