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박 철] 버리긴 아깝고

문근영 2013. 9. 11. 14:19

버리긴 아깝고

 

박 철

 

  

일면식이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을 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품에 안은

그런 눈빛을 주고받으며

  

 

 

ㅡ시집『작은 산』(실천문학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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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생뚱맞게도 

윗글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 없는

나 먹기 싫은 떡 남주기는 싫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면지 찢어진 시집은 시인 자신이 가지면 될 것이고

남은 아귀찜은 남은대로 어떻게 하면 될 일이지만

하지만 시 속의 두 주인공은

시집을 들고 식당 여주인이 생각이 났고

식당 여주인은

내 먹기 싫은 것

아니 남아도는 것

어쩌면 남아도는 것이 아닌

새로 요리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오라하기 뭐해서

아니면 면지 찢어진 시집을 건넨 시인의 미안함을

조금 희석해보려는 식당 여주인의 너른 마음이 엿보인다

 

아깝다는 말

특히 여자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말

그래서 외식을 할때면

배가 터질 것 같으면서도 꾸역꾸역 잘 밀어넣는다

일어서면서 후회를 하면서도

나온 음식들을 먹어치운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아까워서라는 변명을 앞세우고 폭풍흡입을 한다

 

시집을 들고

아귀찜을 앞에 두고

서로가 마음이 통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시어가 아니어도

늘 독자들에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박철시인의 재치가 빛난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솜나리/박숙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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