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허연] 칠월

문근영 2013. 9. 11. 14:18

칠월/ 허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높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 시집『불온한 검은 피』(세계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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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가 들려

리모컨 "조용히" 버튼을 누른다.

"쏴아"하는 소리를 듣는 동안

나의 화면엔

고2 여름캠프 영상이 시작된다.   

좋아하는 남학생이 옆텐트에 있다는 것 하나로

잠들기를 설치다 맞은 아침!

이슬 맺힌 텐트 앞에서, 간밤의 느낌을 깨우는 동안

볼을 살짝 꼬집으며 눈을 맞춘,

폼 나던 선배의 든든함

지금은 어여쁜 풋내이지만

작은 '지옥'과 짧은 '천국'을 오갔던

그 여름이 '나는 얼마나 아팠는지' 

 사람을 의식하여 옷을 입고

그 사람이 없으면 '체념'한 '빗물'이 되던

 

아껴두었던 '칠월'의 심상으로

 

*스콜을 닮아가기 시작한 

흩어진 장마 기간이

잠시 반갑다

 

이 오월의 비는

정의에서

광주로,

광주시민에게로,

'땅바닥'으로,

'골'을 만들고,

'지옥 같았던' 핏'물'이 되었음에도

오'월의 길'은

'체념'으로 끝났지 않으리

'흘러가 버린' 그 '밤'

숨겨진, 뽀오얀 속살 같은

내 인생의 '여름'이

'체념'만은 아니 듯

 

칠월이 기다려진다     -김선아

 

 

 

 *스콜: 열대 국지성 호우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비매/김선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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