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서수찬] 그리운 이불

문근영 2013. 8. 28. 12:06

 

 

 

그리운 이불

 

서수찬

 

 

법성포에 오래간만에 돌아온 나를

수천만 번 들여다보았을

물고기 눈동자마저

업신여긴다 싶어 일부러 바닷가 쪽을 피했다

발바닥의 조개껍데기를 닮아 있는

그립던 상처들

살 속 깊이서 아는 체를 한다

얼마나 수혈을 받고 싶었던 땅인가

살 속에서 하나하나 비린내를 건져 내어서

잊어버리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살 속에 닻은 깊이 내려진다는 것을

작아진 고향은 미리

알고 있었나

한눈에 피보다 진하게 누구네 장남 아닌가

알아봤을 때

몰래 숨어드는 난처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나도 흔하디흔한 물고기가 아니라

비로소 사람의 이름을 갖네

뒷덜미를 후려쳐서 내쫓아 버릴 것 같던

법성포의 여러 손길들

해당화처럼 살며시 흔들려 주네

밤새 비린내를 이불로 덮어주는

아버지의 손길이 참 많이 늙어 있었다.

 

 

 

-출처 : 시집 『시금치 학교』(삶이 보이는 창, 2007)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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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법성포, 비린 이불을 덮어주는 아버지의 손길 같은

-서수찬의 시「그리운 이불」

 

 

문학은 한 개인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 구조 및 이데올로기와 영향관계를 갖는다. 시문학은 결코 객관적인 것만도, 기술적인 것만도, 개인적인 것만도 아닌 사회 상황 및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농어촌과 수도권 주변도시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담은 서수찬 시인의 시집은 내용의 진리치를 담고 있기에 의미가 크다

 

 ‘법성포'는 “살 속에서 하나하나 비린내를 건져 내어서/잊어버리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살 속에 닻”이 내려지는 ’시인‘의 고향이다. 또한 “한눈에 피보다 진하게 누구네 장남 아닌가/알아봤을 때/몰래 숨어드는 난처함은 온데간데없어지고/나도 흔하디흔한 물고기가 아니라/비로소 사람의 이름을 갖”게 한 보금자리이다. 진정 법성포는 항상 “수혈을 받고 싶었던 땅”인 것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현재 법성포에 살지 않는다. 보금자리 혹은 이상향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타지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립던 상처들/살 속 깊이서 아는 체를 한다”는 진술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뿌리내리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 자체에 그 상처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지만, “낚싯줄에 말려 올라오는 아들놈의 공과금과/ 수협 창고에 쌓여질 부채를 궤짝에 차곡차곡 쟁이며/간신히 피우는 한 대의 담배로는/우리가 돌아가야 할 사람의 마을이 너무 벅차다”(「오징어잡이」)라는 면에서, 또한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정책으로 인해 어촌 인구의 상당수가 자신의 고향을 떠난 역사적 사실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촌 사람들은 현재 출항하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메인 스타디움인 법성포 앞바다에는/멸치 새끼 한 마리/눈에 띄질 않는구나”(「냉수대」)라는 탄식에서 볼 수 있듯이 어획량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벌리듯 바지락을 벌리면/부재 중 전화번호처럼/시꺼먼 갯벌만 들어 있구나(「사리포구」)라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바다가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처로 빠져나간 젊은“(「말뚝」)이들로 인해 일손이 달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배를 띄워도 기름값이 나오기는커녕 도리어 빚을 지게 되므로 오촌 사람들은 출항을 포기하고 대신 술을 마신다. 이처럼 시인이 인식하는 어촌은 평온하고 충만한 보금자리나 유토피아의 공간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시인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을 품는다.

 

-시인 맹문재 님이 쓰고 詩하늘에서 엮음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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