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고영민] 갈대

문근영 2013. 8. 25. 13:05

 

갈대

 

고영민

 

 

어머니가 개밥을 들고 나오면

마당의 개들이 일제히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

살랑살랑살랑

 

고개를 처박고

텁텁텁, 다투어 밥을 먹는 짐승의 소리가 마른 뿌리 쪽에서 들렸다

빈 그릇을 핥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 마른 들판 한가운데 서서

얼마나 허기졌다는 것인가, 나는

 

저 한가득 피어 있는 흰 꼬리들은

뚝뚝, 침을 흘리며

무에 반가워

아무 든 것 없는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가

앞가슴을 떠밀며, 펄쩍

달려드는가

 

 

 

-출처 : 시집 『공손한 손』(창비, 2009)

-사진 : 다음 이미지

---------------------------------------------------------------------------------------------------

 

열린 감수성

-고영민의 시 「갈대」를 읽고

 

 유년에 대한 향수가 사물에 대한 열린 감수성으로 발전하는 것은 유년의 경험이 지닌 유기적 성격에 기인한다. 가족공동체에서 체득한 사랑의 인간관계와 모든 tkanfemfdel 연관되어 자연을 구성하고 있다는 유기적 세계관은 시인의 일관된 아비뛰스(habitus)이다. 열린 감수성은 이러한 아비뛰스가 형성한, 사물과 의식의 끊임없는 교섭과정이라 할 수 있다. 아비뛰스란 과학적 용어로써 이는 행위자들이 사회적으로 습득한 습성을 가리키는 말인데 어떤 장에서 얻은 습성을 지닌 채 다른 장에 편입되면 그 장의 법칙에 순응하지 않고 반대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시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반부에는 어머니와 강아지 이야기, 후반부에는 나와 갈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멋진 병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유년에 대한 향수가 만든 감수성이다. 어머니와 강아지/‘나’와 ‘갈대’의 병치는 어머니와 나의 관계에서 유발한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존재의 허기는 ‘나’로 하여금 “마당의 개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들을 공감하게 하며 ‘나’와 ‘갈대’의 관계로 전이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목할 대목은 향수가 이끌어내는 자기인식이다. 시인은 “아무 든 것 없는 나”라는 인식을 통하여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사물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확장한다. 특히 ‘나-너’의 관계론은 첫 시집 이래 지속된 문법이다.

 

 후반부에 나와 갈대의 관계는 마치 백구와 나의 관계로 읽히는 재미가 있다.

 

-문학평론가 구모룡 님이 쓰고 詩하늘에서 엮음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