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박기영] 눈

문근영 2013. 8. 24. 12:37

 

 

박기영

 

겨울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늘을

떠돌아다니는 영혼들을 불러다

눈이 되어 내리게 한다.

 

- 박기영 시집 『숨은 사내』, 민음사, 1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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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눈이 귀한 도시인  대구에 폭설이 왔다.

눈길에 단련이 안 된 많은 시민과 차량들은 뿌연 회색의 도시를

거북이 걸음으로 질척거리는 도로를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눈이 내린 먼 산의 하얀 모습이나 한적한 시골의 풍경은

겨울달력의 한 장 사진처럼  따뜻하고 평화롭지만 삶의 전쟁터인 도시는 

낭만도 잠시, 불편을 무릎쓰고 거리를 나서야 한다.

 

구렛나루가 특징인 박기영 시인은 할 말이 많은 시인이다.

한 때 장정일 시인에게 시심을 심어 주었었고,

할 말이 많지만 그의 시집에서 몇 편되지 않는 짧은 시들은

곱씹어 읽으면 작은 울림이 전해 온다.

하얀 눈과, 하늘을 떠도는 하얀 영혼들,

펄펄 내리는 하얀 눈에 아픔 몸짓이 묻어있음이 보인다.

그 상처와 고독을 감싸 안으며 우리는 이 겨울을 견딘다. 

눈 내리는 어제는 이 시를 읽게 되었다. 

눈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면서 한 해의 묵은 책들을 정리하면서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마음과는 아랑곳 없이 하얗게 눈 내린 앞마당에는

비둘기 발자국과  작은 새들의 발자국이 앙증맞게 찍혀 있었다.

요즘 부쩍 모이맛에 길들여진 그들의 반가운 방문이다.

마당 귀퉁이에 새들이 먹을만한 모이를 작은 그릇에 놓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눈이 내리니 당장 일용할 양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대구를 떠나 금강 가에서 된장과 옻제품으로

좌충우돌하는 박기영 시인도 이제 이 첫 시집을 낸지

이십 년이 넘었다. 문청 시절 문우들과의 그 분주하던 자취들이

곡주사와 YMCA와 심지다방과 시인다방과 25시 다방 등 곳곳에 묻어있는데

그 거리도 변했고 벌써 우리도 이만큼 나이를 먹어 버렸다.

그의 다음 시집이 기다려 진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김경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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