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읽는 밤/ 전윤호
내가 잠든 밤
골방에서 아내는 금강경을 쓴다
하루에 한 시간씩
말 안하고 생각 안하고
한 권을 온전히 다 베끼면
가족이 하는 일이 다 잘될 거라고
언제나 이유 없이 쫓기는 꿈을 꾸다가
놀라 깨면 머리맡 저쪽이 환하다
컴퓨터를 켜놓고 잠든 아이와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속에서
경을 쓰는 손길에 눈발이 날리는 소리가 난다
잡념처럼 머나먼 자동차소리
책장을 넘길 때마다 풍경소리
나는 두렵다
아내는 나를 두고 세속을 벗어나려는가
아직 죄 없는 두 아이만 안고
범종에 새겨진 천녀처럼
비천한 나를 떠나려는가
나는 기울어진 탑처럼 금이 가다가
걱정마저 놓치고 까무룩 잠든다
- 시집 『연애 소설 』(다시,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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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다----
.
.
무주소생심----
.
.
색즉시공 공즉시생----
.
.
아제아제 바라아제--- 모지 사바하
누구랑 헤어졌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10년 전 쯤에 이별을 금강경으로 견뎌냈다
그저 썼다.
동양의 피가 흐르는 나는 그저 옆에 있다는 것으로 위안되는 금강경을 매일 넣어 다니며 조금씩 썼다
전윤호 시인께 미안한 추측을 해 본다.
가족이 하는 일이 다 잘 될거라고 금강경을 쓴 게 아니라
주부로서 나를 비우기 위한!
좀 더 적나라 하게 추측해 보면
작아지는 자신을
눈물 흘리는 대신,
견디어 수양하기 위한
경이었는지 모른다
평온하게 말수가 적어진 여자가 제일 무섭다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다
이 밤
자주 꿈꿨던, 봉쇄 수녀원에서 사는 나를 상상해 본다
한정된 공간에서 드넓은 여인으로 사는 상상을 해 본다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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