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임보] 아내의 전성시대

문근영 2013. 8. 9. 18:00

아내의 전성시대  -  임보

 

 

왜 법대생들이 그렇게 좋아했던가 몰라요

고시공부 하는 놈들이 공부는 않고 쫓아다니기만 했으니

 

아내의 회고담이 또 시작된다

한두 놈이 아니었다고 은근히 으스대는 투다

'법대생'이라는 말도 내 비위에 거슬린다

지금쯤 잘된 놈은 변호사가 되어 떵떵거리며 지내지 않겠는가

(하기사 못 된 놈은 복덕방에서 어정거리고 있겠지만)

 

키는 180도 넘은 멀대같은 놈들이 늘 따라다녔단 말이요

 

키가 180이라는 말에 또 야코가 죽는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대꾸도 않고 숟가락질만 해댄다

수십 번을 들은 얘기이므로 다 알고 있는데 무슨 미련이 있는지

오늘도 점심을 먹다말고 어떤 친구 얘기 끝에

그녀는 자신의 황금시절을 회고하고 있는 중이다

 

매일 대문 밖에까지 따라와서 어정거리니 어쩌겄오?

 

다음엔 삼촌이 나와서 쫓아보냈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 다음엔 장인이 법대학장에게 전화를 해서

그놈을 혼내 주었다는 스토리가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클라이맥스는 맨 끝에 있다

 

아니, 그 멀대같은 놈이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충장로를 헤매고 있는 걸 본 사람이 있었다잖아요

 

말하자면 그 법대생이 상사병이 들어 실성했다는 얘기다

자신은 한 사내를 미치게 할 만큼 매력덩이였다는 메세지다

그 얘기를 한평생 반복해서 중얼거린 까닭은 무엇인가?

고희에 올라선 저 노파 맺힌 한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만약 세월을 다시 거슬러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마도 아내는 180의 법대를 선택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이나 좀 가져와!

 

아내의 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수저를 놓는다.

 

 

 

- 계간지 [시에] 2012.가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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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회고하곤 한다. 그 반짝이던 어린 날은 쉽게 잊혀지기엔 숨막히게 아름다워서 혼자만 알고 있으면 안되는 불문율이 있다. 소문에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마법이 깃들어 있다고들 한다. 그리하여 본인이 이성적으로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그 주문을 외고 나면 칠순 노파도 풋풋했던 여고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무서운 삼촌과 호통치는 장인어른이 계시는 그녀의 집 대문 앞, 멀쩡하던 법대생도 실성하게한 그녀를 차지한 죄값으로

남편은 언제든 아내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놈의 큰 키와 법대라는 생각할수록 짜증나는 스펙에 끓어오르는 시기심으로 배알이 꼻려 결국 밥투정을 하는 애처럼 수저를 놓는다.

오랫만에 모처럼 맛깔나는 시를 읽었다. 요즘처럼 이혼율이 높은 시대에 저렇게 깜찍하다고 하기엔 송구스런 어르신들의 부부지간이 부럽기만 하다.

퇴근을 하고 남편이 경영하는 편의점에 왔더니 본사에서 재고조사를 한다고 장정 셋이 나와서는 가게 물건을 다 뒤집어엎고 수량을 세고 있었다. 재고조사가 끝나고 물건이 31만원어치가 빈다고 했다. 평소 가게를 봐준다면서 소주랑 맥주랑 컵라면이랑 커피를  냠냠 해먹은 마누라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면서 서방이 말을 했다.

서방님 ; 가게에 아주 큰 도둑이 있어.

500원 ; 누구?

그랬더니 서방이 말은 않고 나만 쳐다본다. 그래서 낯짝 두껍기로 일등 아니면 안하는 내가 말했다.

500원 ; 내가 뭘 훔쳤다그래?  자기 마음?

이래놓고 골목 아래 아는 언니네 식당으로 줄행랑을 쳤다. 가게 비우면 안되서 못잡으러 온다. ㅡ,.ㅡ; 경찰 불러.

 

 

 

2012.08.17  500원만줘보시지 국가고시 학과시험 87점으로 합격한 날. (운전면허 2종 필기) /(-_-)/

 

 

 

 

 

 

 

 

 

출처 : 시인 김수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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