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성사(環城寺)가 있는 곳은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이다.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이곳을 찾아오기까지는 그러나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양을 오가는 길에 환성사 안내판을 보거나, 어쩌다 인터넷에서 이름을 마주칠 때마다 '한 번 가봐야지'했던 것이 십년 가까운 세월을 흘려 보낸 이제야 연이 닿았으니, 내 무심도 이쯤 되면 환성사에 한없이 미안할 지경이다.
이날은 음력 구월 관음재일을 맞아 운부암에서 재일 예불을 올리고 점심 공양을 한 뒤 환성사를 가기로 했다.
법회를 마친 뒤 단풍 든 운부암을 몇장 담아서 내려오려고 카메라를 켜자, 화면이 깜깜 먹통이다.
지난번에도 그렇더니 충전시켜놓은 배터리가 며칠 만에 저절로 방전되고 없다.
그냥 가서 환성사만 보고와도 되겠지만, 그래도 가는 길에 사진이라도 몇 장 담아와야겠다 싶어 다른 배터리를 가지러 집으로 되돌아 가야 했다.
지금 가지 않으면 또 언제 가게 될지 기약이 없으니 마음 먹은 날 다녀와야겠다 싶어 금림이를 달고 환성사로 출발했다.
하양에서 갈라져 들어가는 입구만 알았지 환성사는 초행길이라 갈림길마다 물어 물어 찾아 가자니 답사의 기분이 제법 난다.
교차하는 차량끼리 몇 번이나 양보하고 양보받고 가야 하는 좁은 길이다.
집집마다 감이 익어가는 시골마을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자 계곡을 끼고 높다라니 얹힌 길이 꼬불꼬불 이어진다.
몇 구비를 돌자 단풍이 참 곱다 싶더니 골재 채취장이 산의 속살을 온통 헤집어놓은 곳이 있다.
들은 이야기로는 평탄치(?) 못했던 환성사의 역사가 겹쳐지면서 맘이 지릿해 온다.
▲ 환성사 일주문
환성사는 멀지 않았다.
좁은 계곡길을 잠시 달리자 갑자기 넓은 터가 나타난다.
직감으로 저기가 환성사겠구나 싶은 곳이다.
환성사(環城寺)라는 이름은 주위의 산세가 마치 둥근 고리[環]와 같이 절터를 둘러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주차하기 바쁘게 일주문부터 찾았다.
다듬느라 애를 썼겠지만 일주문이 있는 풍경은 언뜻 폐사지의 느낌이 남아 있다.
다른 전각은 보이지 않고 잡풀 속에 우뚝 일주문만 서 있다.
워낙에 넓은 터에 서 있어서 그런지 그 큰 일주문이 작아보일 지경이다.
일주문의 돌기둥 넷은 예전의 석주가 그대로 남아 있던 것이고,
최근에 지붕이 얹어졌다.
돌기둥 중 안의 두 기둥은 팔각기둥이며 밖의 두 기둥은 네 면으로 된 사각기둥이다.
석주의 높이는 자그만치 275센티미터, 그 당당한 모습에서 범어사 일주문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많이 닮았다.
▲ 최근에 세워졌을 공덕비
일주문을 지나 조금 올라가다 보니 왼편으로 부도군이 보인다.
무성한 잡초와 드문드문 박힌 바윗돌 사이에서 오늘 무슨 회상이라도 열리는지
부도군 앞에 부처님이 앉아계시다.
내려올 때 가서 뵙기로 하고 우선은 법당을 향해 계속 올라갔다.
절마다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지만 환성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조금 특이하다.
그 예전의 영화에 못 미치는 지금의 사세가 안타까워 더욱 그리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환성사는 신라 헌덕왕의 아들로 15세에 출가한 심지왕사(心地王師)가 흥덕왕 10년(835)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심지왕사가 절을 짓고 난 후부터 갑자기 번창하기 시작하여 하루에도 수백명이 넘는 신도들이 드나들어 잠시도 한가한 날이 없었다고 한다. 절에서는 매일같이 수백명이 넘는 사람들의 밥을 하려니 소모되는 곡식도 곡식이려니와 시중드는 식솔 또한 엄청난 숫자가 상시 고용되어야만 했다. 콩나물 반찬을 하려면 보통 시루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 둘레가 수십 자가 되는 돌시루를 만들어 콩나물을 길러 먹었다고 전한다.
또 절로 오르는 입구에는 그 모양이 자라와 너무 닮아 자라바위(일명 거북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있었다. 심지왕사가 이 곳에 절터를 잡을 때 이 자라바위를 보고 "이 바위가 있는 한 우리 절의 번영은 쇠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그러한 예언이 희미한 기억이 되어가고 있을 즈음인 조선 초, 불교를 심하게 억압했으나 환성사만은 이 자라바위 덕분인지 하루도 신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 젊어서는 덕을 베풀어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았으나 나이 들자 많은 손님들을 번거롭고 귀찮게 여기게 된 주지스님이 있었다. 스님은 ‘우리 절에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것은 틀림없이 자라바위 때문일 것이다’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사람들을 시켜 자라바위 목을 자르게 했다. 지시대로 바위의 목을 정으로 깨뜨리니 갑자기 연못이 붉게 변했고 이런 소문 때문인지 절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그러던 중 어느 한 거지같은 객승이 이 곳을 찾아와 묵고 가기를 청하니 주지스님은 이를 귀찮게 여기고 구석진 골방을 주고 공양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튿날 이 객승은 길을 떠나며 주지스님에게 “이 절에 사람이 많은 것은 저 연못 때문이니 저것을 메우시오” 하고 사람들이 줄어지는 비방을 일러주며 절을 떠났다.
주지스님은 이 말을 듣고 동네사람들을 불러다 못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삽을 퍼 넣자 갑자기 못 속에서 금송아지 한 마리가 날아오르더니 슬피 울고 산 너머 동화사 쪽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을 겁을 먹고 일을 멈추었고 주지는 절의 스님들을 동원하여 못을 메우게 했다. 꼬박 100일이 걸려 못을 메우고 마지막 흙 한 삽을 퍼붓자 별안간 온 절에 불이 붙기 시작하여 그 웅장하던 집채들을 모조리 태우고 말았다. 겨우 대웅전(大雄殿)과 수월관은 남았으나 이후로 사람들의 발길은 정말 뚝 끊어지고 말았다고 전한다.
<환성사 홈페이지에서 발췌>
그 전설을 알고 있는 필자는 분명 새 연못이 조성되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못은 있었다.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지만 절 아래에 둥근 못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절 여기 저기에 불자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 오십여미터쯤 오르자 두번 째 관문인 수월관이다.
흙과 돌로 만들어진 담장이 터져 있고 그 중앙에 이층 누각인 수월관이 있다.
건축에는 문외한인 눈에도 범상치 않은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날은 보수중이어서 누각 아래로는 지나갈 수가 없었다.
이리 저리 지지대를 덧대 놓은 모습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다 가릴 수는 없나보다.
이웃한 백흥암이나 운부암의 보화루와는 또 다른 멋이 있다.
보화루는 바라지문이 달려있었는데 이곳은 정면은 문이 없고 정자처럼 툭 터져있다.
대신 낮으막한 난간이 달려있다.
대웅전과 정면으로 배치되어 있어 수월관 현판 아래로 대웅전 현판이 올려다 보인다.
▲ 환성사 수월관
이 수월관은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나 고려때 이 절에서 위대한 선사가 나타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일주문과 함께 이 누각을 세웠다고 한다.
누각에서 보면 대웅전 앞 연못에 달이 떠 비치는 광경이 참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수월관'이라고 한다.
지금도 저 아래 연못에 달이 뜨면 이곳 수월관에서 바라볼 때 한없이 아름다울 것 같다.
▲ 환성사 수월관 옆모습
담장을 옆으로 끼고 돌자 여염집 대문 같은 솟을 대문이 하나 달려 있다.
그곳으로 들어가자 환성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천년을 이어 온 모습이며 내겐 십년을 아껴두었던 풍경이다.
첫 인상이 아기자기하니 참 예쁜 절이다.
예전의 영화는 차치하고 지금도 쓸쓸하진 않아 보인다.
앞면 5칸, 옆면 4칸의 당당한 대웅전이며 소박하면서도 멋스런 심검당,
개성 만점의 이형(異形)탑, 아직도 건재한 두 기의 노주석,
새로 조성한 석등, 저 뒤로 보이는 명부전,
성냥곽 만한 산신각 등이 오밀 조밀 조화롭게 놓여져 있다.
▲ 보물 제562호인 환성사 대웅전과 이형탑
▲ 환성사 대웅전 옆모습, 네칸이다.
대웅전부터 들렀다.
삼배를 올리고 올려다 본 부처님, 석가모니 삼존불(문수 보현)이시다.
원래는 고려 토불인 아미타삼존불(관음 대세지)을 봉안하고 있었으나 5년전 도굴 훼손돼 다시 모신 삼존불이라고 한다.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 조각 모습
인근의 백흥암 수미단이 유명하지만 필자는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날 보니 이곳 환성사의 수미단도 아름다웠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곳 역시 꽤나 유명한 수미단으로 나와 있다.
수미단은 부처님을 모신 단으로 불교에서는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을 상징한다.
그 수미산에 기화요초가 피어나고, 온갖 생명들이 깃들어 뛰어놀며 부처님께 공양 올리며 삶의 기쁨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환성사의 수미단도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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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성사 천태각과 산신각, 나반존자와 산신이 나란히 앉아 계시다.
▲ ▼ 환성사 명부전 내의 지장보살과 시왕
비록 보수중이라 안전막이 쳐지고 얼기설기 나무들이 가로놓여 있지만 환성사 경내는 참 예쁘다.
심검당과 마주 보고 있는 닮은 꼴 요사채에서는 도란 도란 얘기소리가 흘러 나온다.
아마 먼 곳에서 반가운 손님이라도 오셨나 보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창호 밖으로 번진다.
툇마루에 머물던 가을 햇살이 벗어 놓은 신발을 따끈히 데우고 있다.
▲ 환성사 탑과 요사채
▲ 길게 뺀 대웅전 처마를 주추가 받치고 있다.
▲ 환성사 심검당
심검당을 들여다보니 나한님들이 모셔진 나한전이다?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는 불경스럽게도 한 분 한 분을 세심히 쳐다봤다. ^^*
이렇게 환한 곳에서 나한을 자세히 관찰해 보는 것도 처음이다.
선정에 드신 모습에서부터 인상 팍 찡그린 분까지 다양한 표정들이었지만 대체로 분위기는 온유하고도 안온했다.
▲▼ 환성사 심검당 내에 모셔신 16나한
심검당을 마지막으로 법당 참배는 끝이 났다.
불사 중인 도량이지만 어수선함 보다는 곳곳에서 도량을 가꾸는 알뜰함이 묻어나 안심이다.
대웅전 앞뜰에는 소국들이 단청빛만큼이나 알록달록 곱고
선방같은 요사채에서는 두 보살님이 매달려 창호지를 새로 바르고 있다.
후원까지 한바퀴 돌아 이제 내려오는 길,
용연에서 보니 수월관이 마주 보인다.
연못에 달이 뜨면 과연 진풍경일듯 싶다.
가까이서 봤을 땐 어쩐지 어색해 보이던 일주문 옛석주와 새로 이은 기와가
멀리서 보니 제법 잘 어울린다.
세월이 지나면 처음부터 한 몸인듯 자연스러워질테지.
어? 내려가는 다른 길도 있다고 했는데 오다 보니 올라갔던 그 길이다.
저기 부처님께 가기로 했지.
길도 아닌 곳을 헤치며 부도군으로 간다.
눈앞에 보이는 데도 건너가기가 만만치는 않다.
울퉁불퉁한 곳을 오르내리자니 도깨비풀, 도꼬마리.. 별의별 풀씨들이 다 달라 붙는다.
▲ ▼ 환성사 부도군
아, 부처님... ()()()
삼배를 하고 올려다 본 부처님은 성형불이시다.
불두 부분이 새로 모셔진듯하고 팔꿈치 부분도 이식자국이 뚜렷하다.
그러나 다행이다. 목없는 부처님을 뵙는 일은 차마 힘이 들텐데...
손에 약합을 얹고 계신 걸 보니 약사여래불이신가 보다.
이곳은 부도밭인데, 부도밭에도 부처님이 계셨던가?
워낙에 예전에 사세가 강했던 곳이라고 하니 불타 없어진 전각 자리가 한둘이었으랴.
이곳 부도밭에는 다른 터에서 모아 둔 것인지,
본래 이 자리의 것인지 몰라도 부도 외에도 비와 탑의 부재들과 연화대처럼 보이는 부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환성사를 다녀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과거사야 어찌됐건 오늘의 환성사는 환하고 포근했다.
따끈한 가을햇살 아래 잘 익어가는 단풍처럼 곱고 유쾌하고 밝았다.
아무 걱정없이 어느 때고 마음 끌리는 날, 언제든 다시 와도 좋을 곳이다.
잘 가라며 내다 보시는 부처님의 배웅을 직접 받고 보니 더욱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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