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눈구름 위에 떠 있는 절/아주 특별했던 운부암의 동지

문근영 2013. 6. 1. 07:16

 오늘은 동지이자 음력 11월 관음재일이다.

일요일이지만 느긋할 수 없는 아침이라 새벽부터 잠이 깼다.

귓전으로 가는 빗소리가 들리더니

'촤르륵..' 멀리서 차 바퀴에 감겨드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지방은 눈이 온다고 하더니 이곳은 지난 밤부터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함박눈이 퍼붓기 시작한다.

"이 날씨에 운부암 가겠나? 운전 조심해"

걱정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조심히 길을 나선다.

날씨도 푹하고, 비가 온 뒤라 눈은 내리자 말자 녹을 거란 생각이 든다.

 

대로는 그런대로 달릴만 했다.

평소에 다니던 들길을 피해 차량 통행이 많은 국도를 이용해 은해사까지 갔다.

예상대로 눈은 땅에 닿자말자 녹고 있었다.

 

그런데 큰절 일주문을 들어서자 풍경이 돌변한다.

이곳은 설국이다.

안개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꽤나 몽환적이다.

설렘반 걱정반으로 일주문을 들어선다.

 

 

올라갈수록 차를 버려둔 채 걸어 올라가는 신도님들이 늘어난다.

나도 이쯤에서 길가에 주차를 해두고 걷기 시작했다.

눈이 많이 내려 쌓이면 오늘은 산속에 차를 두고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맞는 설경인데 그 까짓게 문제랴.

더욱이 동지에 내리는 서설임에랴! 

 

 

 

오르막 길을 땀이 날만치 걷다보니 저만치 운부암이 보인다.

시간은 이미 법회 시작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 겨울 운부암!!

이토록 깨끗한 도량을 따로 또 봤던가!

흰색과 푸른색과 검은색,

단순과 간결이 빚어내는 정갈한 아름다움이다.

봄내, 여름내, 가으내 운부암을 담고있던 작은 연못에 살얼음이 끼어 있다.

이제 새봄이 되어야 녹으리라.

 

 

 

운부암에서는 늦어지는 신도님들을 기다려

평소보다 30분 늦은 시각에 동지기도 예불을 시작했다.

멀리 부산, 울산, 포항 등지에서 온 낯익은 신도님들이 속속 도착하자 

원통전과 보화루가 가득찬다.

 

 

  

 

산사 안팎을 울리는 독경소리가 유난히도 낭랑한 오늘,

눈 쌓인 숲속 나뭇가지에서는 산새들이 맑은 소리로 화답한다.

풍경이 훤히 보이는 보화루에 자리 잡았다.

열린 누각 문 사방으로 연신 눈이 날리고 있다.

 

       

        

          

           

 

 잠시 눈이 그쳤나 싶더니 안개가 자욱히 둘러진다.

雲浮庵....구름 위에 떠 있는 절.......

1500년 수령을 자랑하는 운부암 느티나무가 시민선방 청곡당 뒷편으로 저만치 서 있다.

도량과 면밀히 소통이라도 하고 있는 건지,

이어진 까만 전선 마저도 고와 보이는 풍경이다.

紫霞, 상서 그득한 운부암 도량, 이윽히 바라만 보아도 저절로 차오르는 기쁨이 있다.

 

 

 '북마하연 남운부'답게 운부선원은 후원에서 바라본 풍경도 가지런하다.

지금 이곳 운부난야 선원에는 열 분의 수좌들이 가행정진 중이시다.

 

오늘은 은해사 회주이신 법타 큰스님의 동지기도 법문이 계셨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몇 구절.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워 다들 힘이 드는 모습에서,

눈 위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고 했다.

동지는 밤이 제일 긴 겨울의 극점이면서 밝음으로 상징되는 낮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는

새 출발점이며 예로부터 작은 설로 불렸다.

 

재화에 비유하자면 

지나간 과거는 헌 수표이며,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를 약속어음,

현재만이 현금이라고 했다.

매일 매일을 최후의 날인양 살아야 한다는 것,

 

동지 기도를 올리고 팥죽을 먹는 것은 구복의 의미가 아니라,

연륜에 걸맞는 인격을 수양하고 나의 덕화를 늘려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동지기도를 마친 신도님들은 오늘 아주 특별한 팥죽을 먹었다.

운부암의 팥죽 새알은 선원에 계신 스님들의 울력으로 만들어졌다.

결코 일손이 달려서가 아니었다.

새알 울력을 위해 시간내어 올라갔던 몇 분이 어제 그냥 내려와야 했으니...

 

언제 다시 이런 풍경을 볼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내려 오는 길,

아주 특별한 동지를 함께 보냈다는 유대감으로 더욱 정이 깊어진 신도님들이다.

 

잘 오가시라며 스님들께서 말끔히 쓸어둔 길 위로

잠시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고 있었다.

 

 

 

출처 : 인드라망
글쓴이 : 演菩提(연보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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