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인드라망과 나, 그리고 실상사 / 실상사를 다녀오다

문근영 2013. 6. 2. 10:52

 

 

[혼불문학관]을 나온 우리는 실상사를 참배하기로 했다.

남원에는 춘향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으로 유명한 실상사가 있다.

같은 남원이라고 하지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실상사는 평지가람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과연 그랬다.

다른 사찰이 도시를 지나 농촌마을을 거쳐 산으로 올라간다면

실상사는 지리산 자락을 계곡따라 한참을 달린 뒤에 나타난  들판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려면 들판 가운데, 그것도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에 천년고찰이 있으랴 싶었지만

이정표를 따라 동네 속으로 난 길을 들어서니 수천이라 불리는 내가 흐르고,

그 위에 놓여진 해탈교를 건너자 바로 실상사권역이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구산선문 최초가람이란 표지목이 먼저 우리를 반긴다.

이곳 실상사가 귀농과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었구나 싶다. 농촌 마을 속에 이렇듯 자리하고 있었으니...

 

 

천년사찰, 호국사찰로 잘 알려진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서기 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했다가 선정처(禪定處)를 찾아 2년동안 전국의 산을 다닌 끝에 현재의 자리에 발길을 멈추고 창건했다.

증각대사가 구산선종(九山禪宗) 가운데 최초로 그의 고향인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절을 세운 것이다.

 

증각대사의 높은 불심을 높게 기린 흥덕왕이 절을 세울 수 있게 해줬고 왕은 태자선광(太子宣光)과 함께 이 절에 귀의했다.

증각은 실상사를 창건하고 선종(禪宗)을 크게 일으켜 이른바 실상학파(實相學派)를 이루었고 그의 문하에서 제 2대가 된 수철화상과 편운(片雲)스님이 가르친 수많은 제자들이 전국에 걸쳐 선풍(禪風)을 일으켰다. 신라 불교의 선풍을 일으키며 번창했던 실상사는 그 이후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화재로 전소됐다가 3차례에 걸쳐 중수 복원돼 오늘에 이른다.

 

-실상사 홈페이지에서 옮김-

 

 

천왕문 사이로 실상사의 주전각인 보광전의 모습이 보인다.

사천왕께 실상사 참배왔음을 보고 올리고 곧바로 보광전을 향해 나아갔다.

 

 

첫느낌이 격조, 그리고 아름다움이다.

넓직한 공간의 적재적소에 탑이 있고 석등이 섰다.

겨울풍경이라 여겨지지 않을 만큼 도량은 훈훈했다.

보광전 부처님께 인사 올리고 본격적인 전각 순례에 나섰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아름다운 도량은 천년 고찰답게 탑도 석등도 가람을 지키고 선 나무조차도

세월의 무게가 얹혀 장중미를 더해준다.

낙엽 하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깔끔한 도량, 누가 이토록 말끔히 지키고 있는지 감탄을 하며

구석구석 알뜰이 구경(?)했다.

 

보물 37호인 실상사 삼층석탑,

쌍둥이 삼층석탑이라고 안내판에 쓰여있다.

이 절이 창건될 당시에 세워진 탑이라니 도대체 몇살인지...

철책이 없어 더욱 친근감이 드는 탑이다.

상륜부의 저 장식들은 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만 참 예쁘기도 하다.

 

 

 

 보광전은 앞모습도 멋있지만

옆모습도 이토록 빼어나다.

실상사는 중간에 몇번인가 화재로 소실되어 중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광전도 그러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중수한 때가 고종 19년(1882).

 

이곳은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놓여진 돌멩이 하나도  예사로이 보여지지가 않는다.

 

보광전 오른 쪽 옆에 자그마한 칠성각이 있다.

멀리서 보면 나무 사이로 꼭 성냥곽만해 보인다.

세련된 단청이 친근감을 더해 주는 곳이다.

 

산지가람에서는 산신각이나 칠성각은 대개 주전각 뒷편에 위치해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라 참배하기가 쉽지않은데, 이곳은 아담하니 예뻤고 또 환했다.

 

-칠성각. 산신, 칠원성군, 나반존자가 모셔져 있다.

 

 

약사전 앞에 위치한 명부전이다.

이렇게 서로 마주보며 한 공간에 서 있으면 전각들도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명부전은 지장보살님과 무독귀왕, 도명존자 그리고 시왕이 계시는 유명계를 시현해 놓은 전각이기에

대개의 사찰에서는 한쪽 진 곳에 위치해 있기가 쉽다.

평지가람의 장점인지 이곳에서는 전각의 배치조차 어쩐지 평등해 보인다.

 

명부전 앞에 서 있는 소나무의 수형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리 저리 살펴보며 사진을 찍어 봤지만 나무의 특징을 놓치고 말았다.

 

 

약사전에 모신 철불은 높이가 2.69m인 여래좌상으로 보물 41호이다.

실상사 창건 당시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초기 철불의 걸작으로 꼽힌다.

 

무릎 아래는 복원한 것이며 두 손도 근래에 발견되어 끼운 것이라고 안내판은 적고 있다. 

 

천년세월을 이곳에 계셨을 부처님을  뵙자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더욱이 약사여래불이시라니...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전각이었다.

 

철불은 부식이 쉬워 보존이 어렵다고 한다.

천장에는 고개를 쑥 빼고 법당을 내려다보는 용이 있다.

세월따라 용들도 늙어 가는 것인지 대들보에 자리한 모습이 어쩐지 힘이 들어 보인다.

 

 

 

 

보광전 바로 앞 뜰에 세워진 실상사 석등은 보물 제35호이다.

 

9세기 말엽에 세워진 석등이라는 말이 무색토록 말끔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석등의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불 켜는 곳이 어른 키높이보다 높다.

그래서 앞에는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그 계단 위에 올라 서서 불을 밝히라는 용도이다.

 

그렇지만 석등과 돌계단 사이가 아무래도 멀어보인다.

점등하는 분은 키가 좀 컸어야 할듯...^^*

 

잘 생기기도 했지만 보존이 너무나 잘 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도감까지 느끼게 했던 실상사 석등이다.

 

 

 

 

많은 문화재가 있다고 들었는데 일일이 다 찾아 볼수도 없었다.

참배가 목적이었으니 부처님 뵌 걸로 위안삼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전각 외에도 왼편으로 선원이 있다. 안거 중인 만치 선원주변은 적요했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의 본거지 실상사, 인드라망 인드라망...

인드라망이란 이름을 걸고 카페 활동을 한지 올해로 8년째에 접어드는 나로서는 평소에도 실상사라는 사찰을 남달리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진작에 와 봤어야 했던 곳,

이제라도 와서 가슴 가득 희열을 안은 곳,

실상사는 '인드라망'이라는 이름과 함께 앞으로도 오래오래 기억하게 될 곳이다.

 

 

출처 : 인드라망
글쓴이 : 演菩提(연보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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