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순례는 언제든 마음 설레지만 영주 부석사를 가기로 한 날은 그 설렘이 몇 곱절은 되는 듯 했다.
그것은 무량수전을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 보다 더욱 나를 끌었던 건 선묘낭자가 모셔져 있다는 선묘각 때문이다.
"어디 선묘 같은 처자 없나?"라던 어느 분의 말이 아니더라도, 의상스님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던진 선묘낭자 이야기 앞에서는 늘 빚 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목숨까지는 아니어도 불교를 위해 뭔가를 하려는 마음을 낸 적은 있었는지...
이월 마지막 주, 아직은 늦겨울이지만 따뜻한 오후 햇살 아래 펼쳐진 가람은 아늑해 보인다.
부석사 사명이 걸린 안양루를 오르기 전, 오른쪽에 위치한 보장각에 들러 부석사 내의 성보를 관람했다.
주법당부터 찾아가 예를 올린 뒤에 다른 일을 해야겠지만, 이날은 들어가다보니 보장각이다.
그곳에는 국보 제46호인 조사당 벽화를 비롯해 여러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외에도 괘불과 화엄경을 나무판에 새긴 각판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여 화엄사상을 꽃피운 이 곳 부석사,
보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화엄경 판각은 보물 제735호이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대사께서 당나라 유학 당시 당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는 그 사실을 왕께 알리기 위해 귀국하여 지은 절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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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당 벽화 (국보 제4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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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자료: 부석사 홈-
안양루를 지나다보니 석등과 무량수전이 보인다.
아름답다.
건축가들에게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사찰을 들라 하면,
대개는 영주 부석사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문외한의 눈으로 봐도 부석사의 멋은 눈과 맘을 사로 잡는다.
어디를 봐도 아름답지만 안양루 아래에서 올려다 본 이 풍경 또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무량수전은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 다음으로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전해진다.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나온, 배흘림기둥으로도 유명하다.
단청이 엷거나 없어진 전각들을 보며 누구는 '스산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지만
겨울 끝자락에 마주한 부석사는 내게 소슬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가지런히 잔가지를 드러낸 겨울 나무 사이로 하늘이 깊숙히 내려와 있다.
무량수전에 들러 부처님을 뵈었다.
▶ 소조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45호) -사진 자료: 부석사 홈페이지-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 대사가 창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화엄종 수사찰인 부석사에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전하고 있어 부석사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해 준다.
현존하는 유물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신라시대의 것으로는 절 입구에 세워진 당간지주, 무량수전 동쪽의 석탑을 비롯한 3층석탑 3기, 석등 2기, 그리고 자인당에 봉안된 3구의 석불좌상이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로는 무량수전의 주존으로 봉안된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조사당에 그렸던 벽화 6점, 원융국사비, 그리고 화엄경 목판 등을 들수 있다. 조선시대의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현재 괘불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승당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큰 석조와 맷돌이 남아있어 부석사의 사격(寺格)을 전하고 있다. 또한 경내에는 괘불대, 석등의 화사석, 불상광배편, 배례석, 장대석 등 석물의 부재들이 산재해 있다.
무량수전 뒷편으로 작은 전각이 하나 보인다.
저 곳이 선묘각일까?
직감은 그대로 맞았다.
당당하고 남성적인 무량수전 뒤로 화사하게 단청된 선묘각이 얌전스레 자리하고 있다.
전하는 사적에 의하면 의상대사는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어느 신도 댁에 머물렀는데 그 댁에는 선묘라는 아름다운 처녀가 있어, 의상스님에게 반하고 말았다고 한다.
선묘는 대사께 사랑을 고백하며 결혼할 것을 청했지만 의상스님이 거절하시자 수 년에 걸쳐 공부 뒷바라지를 했다.
대사께서 급히 당나라를 떠나게 되었을 때 선묘를 만나지 못하고 배가 신라로 출발했는데, 뒤늦게 소식을 듣고 바닷가로 달려온 선묘가 정성껏 지은 스님의 의복이 담긴 보따리를 저 멀리 떠나가고 있는 배를 향해 던지자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실려 옷 보따리는 배로 날아갔고, 자신은 용이 되어 배가 무사히 신라땅에 도착하도록 지키리라 하고 바다에 뛰어 들어 스님의 무사항해를 도왔다고 한다.
스님께서 부석사 터에 절을 창건하려 할 때 기존의 무리들이 따르지 않고 반항하자, 선묘가 커다란 바위로 변해 가람의 공중을 덮은 채 떨어질 것처럼 떠 있으니, 모든 이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다고 한다.
그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 浮石寺,
이처럼 선묘낭자는 스님의 불법홍포를 크게 도왔다.
무량수전 뒷편에는 아직도 그 돌덩이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선묘낭자가 용의 형상으로 묻혀있다고 전해진다.
선묘각 속에는 스님의 옷을 받쳐든 선묘낭자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저토록 곱고 여려 보이는 분이 어찌 그리 용맹하신지...
사랑의 힘은 그런 것인가 보다.
발원의 힘은 그런 것인가 보다.
님이시여,
그 용맹을 배우게 하소서.
그 용맹을 따르게 하소서. ()()()
-부석 이란 글이 새겨져 있는 큰 바위
부석사 안양루와 석등이다.
안양루에서 보는 경관이 또한 장관이다.
멀리 소백산 연봉이 외호하듯 둘러져 있는 속에 크고 작은 전각들이 천 년 세월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는 곳.
그런 자리에 내가 지금 서 있구나, 하는 그 느낌 하나 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진은 전부 덤이다.
찍어도 좋고 안 찍어도 좋은...
국보 제17호인 석등은 원형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아름다운 석조물이다.
사진은 네 면에 새겨진 보살상 중 북서쪽의 보살상.
이곳 부석사의 일몰장면이 아름답다고 하더니 과연 그럴 듯싶다.
가람 배치를 따라 한 단계씩 올라 설 때마다 돌아보면 조망이 점점 넓고 멀어진다.
-삼층 석탑에서 본 안양루 아래의 전각들
-삼층석탑에서 본 무량수전 옆모습, 그 뒤로 자그마한 선묘각이 보인다.
석탑 옆으로 좁은 길이 나 있다.
의상대사가 모셔져 있는 [조사당] 가는 길이다.
단체 답사팀도 있고 개인 순례자들도 더러 있다.
한걸음씩 오르며 모두 무슨 생각들을 할까.
수풀 사이로 조사당이 보인다.
무량수전과 같은, 하늘색 톤의 단청이 은은히 남아 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 의상대사를 뵈었다.
그동안 다녀온 천년고찰 중에는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셨다는 절이 참 많았었지만,
이 곳 만큼은 설명이 따로 필요없을만치 성보마다 대사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조사당 처마 속 뜰에는 '선비화'라는 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다.
대사께서 짚던 지팡이를 꽂아 둔 것이 아직도 살아 있다고 전해진다.
비도 이슬도 차단된 처마 아래에 자리한 나무이지만 봄이 되면 싹이 돋고 꽃을 피운다고 한다.
수종은 골담초.
조사당을 나와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 걷자 자인당과 응진전이 나타난다.
자인당은 석조비로자나불과 두 분의 석불이 모셔진 곳이다.
옆의 응진전은 나한을 모신 전각.
큰 사찰답게 크고 작은 전각이 참 많다.
취현암, 자인당, 응진전, 삼성각, 응향각, 단하각, 선열당....
여러 이름의 전각들이 展으로 선원으로 요사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응진전 내 나한상
-자인당에 모셔진 석조비로자나불과 석불좌상
이곳은 부석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자
한 바퀴 돌아나오면서 다시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두 기의 삼층석탑 뒤로 보이는 곳이 부석사의 종무소,
전통 가람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종무소 건물이다.
종무소가 딸린 요사채 뿐이 아니라 후원 쪽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한 곳 튀거나 부자연스런 풍경이 없었다.
참 잘 매만져지고 가꿔진 도량이다.
아주 사소한 것, 사소한 곳에까지도 세심히 정성을 기울인 표시는 이 곳에서도 난다.
저런 공중전화 부스를 본 적이 있는지?
너와 지붕도 아름답지만 햇살 가득한 저 격자 창문.
그 큰 도량의 구석구석이 이토록 맑고 아름다운 건 선묘낭자의 원력이 아직도 올올이 살아 있기 때문이겠구나!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있어 더욱 끌리는 도량,
다음 번 참배 시엔 보화루 난간에 기대어 지는 해를 바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노을을 향해 서 있을 때면 선묘낭자도 선묘각을 살풋 걸어나와
우리 곁에 서서, 저 서쪽 하늘을 보며 그 날의 바닷가를 생각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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