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빛도 바람도 쉬어간다 은밀한 별천지 담양 소쇄원 한국 건축 문화재를 그리다가 시야를 세계로 넓히면서 웅대한 해외 유적에 주눅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깨달은 것이 각국마다 구성 민족과 풍속이 다르고, 국토의 크기와 인구수에 차이가 있듯이 건축문화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한국 최고의 별서정원(別墅庭園-집 가까이에 별장처럼 따로 지은 집)으로 손꼽는 담양 소쇄원(瀟灑園)을 펜화에 담았습니다.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집 가까운 계곡의 작은 폭포 옆에 서재와 정자를 짓고 유유자적 하던 곳입니다. 전문가들이 소쇄원을 극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가 ‘ㄷ’자 모양의 담장입니다. 계곡 위를 막고 아래쪽 담을 터놓았습니다. 출입을 제한하기 위한 담장이 아니라 계곡의 풍광을 오롯이 담아두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 담으로 소쇄원은 은밀한 별천지가 됩니다. 둘째는 소쇄원의 중심 정자인 광풍각(光風閣)의 높이 입니다. 높게 짓는 여느 정자와 달리 무척 낮게 지었습니다. 폭포 소리가 잘 들리는 높이를 찾느라 여러 번 공사를 했답니다. 베갯머리에서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무나 누리는 복이 아닙니다. 광풍각 마루 가운데에는 1칸짜리 작은 온돌방을 들였습니다. 이 방 3면의 문이 들어열개문입니다. 셋째 중요 포인트입니다. 문을 접고 들어올려 걸쇠에 걸면 온돌방으로 계곡의 풍치가 몰려듭니다. 마루도 넓게 트인 통마루가 됩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멋쟁이 문입니다. 광풍각에 10분 쯤 앉아 있으면 전문가가 아니라도 한국 특유의 별서정원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
| 대나무 숲길로 부터 소쇄원 답사가 시작 됩니다. 옛 어른들은 이곳을 자죽총(紫竹叢)이라 했습니다. |
| 대나무 숲에서 암탉을 거느리고 산책을 하던 숫탉이 카메라를 들이 대자 경계심을 들어냅니다. “너 내 여자 가까이 하면 그냥 않놔둘껴!” |
| 여기부터 소쇄원 내원이 시작됩니다. 넓이가 1,400여 평입니다. (2004년 10월 사진) |
| 담장 오른 쪽 길은 윗동네로 오르는 길. 왼쪽은 소쇄원으로 대봉대와 제월당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 가이드 따라 오세요” |
| 좌측 초가정자가 대봉대(待鳳臺) 입니다. 옛날 최고의 선비를 봉황에 비교 했습니다. 봉황을 맞이하는 곳이니 당신이 바로 봉황입니다. “근데 어째 자신 없는 얼굴입니까? 아,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하셨군요.“ 제 이야기입니다. |
| 대봉대에서 내려다 본 광풍각 |
| 동쪽 담장 일대 계곡으로 흐르는 물길 위로 쌓은 담장이 일품 입니다. 그 옆 터진 담장에는 오곡문(五曲門)이 있었답니다. |
| 외나무다리를 넘으면 2단으로 쌓은 화계인 매대(梅臺)가 손님을 반겨줍니다. 매화를 많이 심어 매대라 했습니다. 옛날 선비들은 매화를 최고로 쳤습니다. 퇴계 선생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마당의 매화에 물 주어라” 였답니다. |
| 주인이 기거 하며 독서를 하던 제월당(霽月堂) 입니다. 제월이란 ‘비 갠 뒤의 상쾌한 달’이란 뜻입니다. 오른 쪽에 1칸짜리 작은 방, 왼쪽은 2칸 넓이의 마루로 작은 건물입니다. |
| 뒤에서 본 제월당과 담장 |
| 제월당 마루 뒤에는 판문 2개를 냈습니다. 이처럼 모두 열면 마루에 바람이 들어찹니다. |
| 제월당 현판 오른 쪽에는 면앙정 송순, 하서 김인후, 제봉 고경명 등 조선 최고의 선비들이 남긴 글들을 새긴 목판이 걸렸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소쇄원은 최고의 대우를 받은 것이지요. 물론 양산보의 인격과 학문을 인정 한 것이기도 하구요. 골치 아픈 한자는 얼른 지나칩시다. “한자에 자신 있다구요? 혼자 가서 보시구랴, 잘난체 하기는!!!“ |
| 오래된 기와를 올린 담장을 보면 반갑기 짝이 없습니다. 요즈음 나오는 개량기와를 보면 정나미가 뚝뚝 떨어집니다. |
| 제월당의 일각문과 광풍각 후면의 담장. 양산보는 담장의 기능을 극대화 시킬 줄 알았습니다. 이 담장이 없으면 광풍각의 정취는 반으로 줄게 됩니다. 일각문에 머리 조심 하세요. 나도 머리를 쎄게 박았습니다. 얼마나 아프던지 ㅋㅋㅋㅋ |
| 좌측에 제월당, 오른쪽이 광풍각 |
| 광풍각과 계곡 |
| 광풍각(光風閣) 전면. 광풍각은 전면 3칸(기둥과 기둥 사이의 숫자), 측면 1칸 전후퇴(가운데 1칸에 좌우로 좁은 칸이 있다는 전문용어) 이며, 침계문방, 계정, 침계헌 등의 별칭도 있습니다. 침계문방(枕溪文房)이란 ‘머리맡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선비의 방’ 이란 뜻입니다. ‘팔자 좋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지요. “애휴, 나는 언제 이런 집에서 살아 보나” ‘꿈은 이루어집니다.’ |
| 3면 모두 3분합문을 달았습니다. 3분합문이란 ‘문 3개를 둘로 나누어 접는 형식’을 말합니다. 한쪽은 문 두 짝, 또 한쪽은 문 한 짝으로 나누어집니다. |
| 광풍각의 동쪽 면 |
| 광풍각의 동쪽 면과 제월당 담장 (2004년 10월 사진) |

| 광풍각의 들어열개문을 모두 들어 올린 모습. 우리 선조님들이 발명한 멋진 장치입니다. 현대 건축에 사용해도 좋겠습니다. |
| 광풍각 뒤의 함실아궁이(부뚜막 없이 불길이 바로 고래로 들어가게 만든 아궁이로 방을 빨리 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굴뚝이 보이질 않네요. 어디에 있을 까요? 광풍각 앞 축대 돌 틈으로 연기가 나갑니다. 상상만 해도 죽여줍니다. “숨은 굴뚝을 고안 한 우리 선조님들에게 박수!!! ” |
| 소쇄원 취재를 도와준 시인 오소후 님 영문학을 전공한 시인으로 10년 전 백양사에서 만난 오랜 지기 입니다. 요즈음에는 문화해설사로 여기 저기 출장을 다니시는데 이날은 소쇄원으로 출근 하여 도와 주셨습니다. |
| 광풍각에서 본 대봉대와 애양단 애양단 담장이 없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윗마을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대로 보일 것이고, 소쇄원의 은밀함은 찾기 어렵겠지요. 이래서 담장의 역할이 중요 한 것입니다. 대봉대 아래 가로 놓인 통나무는 속을 파낸 통나무 파이프로 계곡의 물을 대봉대 옆의 작은 연못 2곳에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
| 대봉대 앞 담장을 애양단(愛陽壇)이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지요?. |
| 소쇄원은 이 너럭바위 위로 흐르는 물길로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래에 작은 폭포가 있어 ‘십장폭포’라 합니다 이름은 제법 큽니다. |
| 자 이제부터 계곡으로 내려가 볼까요. 양산보가 소쇄원을 만든 이유를 찾아봅시다. 별로 깊지 않은 계곡인데 들어가 보면 엄청 은밀해 보입니다. 중간 중간 쌓은 축대가 큰 역할을 합니다. 양산보 선생이 왜 소쇄원을 이곳에 만들었는지 계곡에 내려가 보면 절로 알게 됩니다. |
| 광풍각 앞 계곡 우리 조상님들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인공으로 자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를 최대한 살리는 ‘환경 지킴이’ 였습니다. |
| 소쇄원 입구에서 대봉대를 거치지 않고 광풍각이나 제월당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다리. 옛 어른들은 투죽위교(透竹危橋-대숲 사이로 위태로이 걸친 다리) 라고 했습니다. 아마 좁고 위태로워 보이는 다리였나 봅니다. |
| 제월당 남쪽 낮은 곳에 고암정사와 부원당 건물터가 있습니다. 이 터 앞에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습니다. |
| 이제 답사가 끝났습니다. 배가 고프신 분은 공영주차장 뒤 흑두부 전문점에서 요기를 하실 수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미리 식사를 하신 분은 승용차로 3분 거리인 ‘명가은’에서 우리 차를 마시며 소쇄원의 정취를 곱씹어 보시는것은 어떨까요. “이제 까지 그림과 사진으로 보여드린 소쇄원 안내 비용 1인당 10만원 되겠습니다.” “제 계좌번호 알려 드릴까요? ㅋㅋㅋ” |
출처 : 청정남
글쓴이 : 청정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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