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김영택화백펜화기행(66)-광화문이 돌아오는 이유 - 글 : 이어령

문근영 2013. 5. 7. 07:35

제목: 광화문이 돌아오는 이유 - 글 : 이어령, 그림 : 김영택
분류: 일반
이름: 8.김영택



중앙일보 위크앤 신년호 1면입니다.
(위크앤은 1월 11일자가 새해 첫호입니다)
본지가 아니고 색션입니다만 1면 머릿 그림으로 채택된것이 무척 기분 좋습니다.
이 그림을 만들기 위해 문화재청, 중앙일보 보유 사진, 제가 보유하고 있는 40여점의 사진을
포함하여 약 100여장의 옛사진과 현대 사진을 참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앞의 월대가 제대로 나온 사진은 없었습니다.
사진기가 들어 왔을 때에는 이미 광화문으로 고종황제가 승용차로 출입을 하고 있어서
계단이 흙으로 덮여 있었거든요.
아마 이 그림이 월대를 제대로 보여주는 첫 그림일 것입니다.
문화재청 유홍준 청장도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새해 첫장을 여는 그림이라 올바른 세상이 되라는 뜻에서
중심배치 방법과 심매트릭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월대는 투시도법을 이용하여 그렸습니다.
좌우측 난간을 보고 다리 난간으로 오인하는 분도 있으나 월대의 난간입니다.
광화문을 복원합니다만 월대는 너무 길어 제대로 복원하지 못합니다.
영광스럽게 글을 이어령 고문님이 써 주셔서 그림이 한결 돗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림보다 글이 훨씬 좋습니다.



고증에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홍예 석축 바로 위 여장의 문양이 제대로 보이는 사진이 없었고,
월대 중심 부분인 어도의 좌우측 앞에 있는 석수의 형태였으나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광화문 현판의 글씨 였습니다.

 

현판은 새로 복원하면서도 어떠한 방식으로 만드느냐에 고심을 하고있는 부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을 정조왕의 글자 중 집자를 하겠다고 하였다가 유청장이 혼이 났고,

 간신히 옛사진에 흐릿한 글자로 고친다고 하였으나 복각하기에는 너무 흐릿합니다.

 

제 그림은 문화재청에서 제공한 흐릿한 글씨와 현재 국립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유리원판 사진을 참고 하였습니다.

 

 여장 사진은 중앙일보에서 헐리기 전의 사진 중에서 골라서 고증을 거쳐 사용하였읍니다.
도움을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광화문 복원은 경복궁 정비의 마침표다. 현장은 지금 설치미술가 강익중씨가 만든 가림막 안에 있다.
그 앞에는 광장이 조성된다. ‘대한민국의 거리’가 될 ‘조선의 거리’는 내년 6월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은 1890년대의 모습이다,

 

 

광화문이 돌아오는 이유

                                                                        

        글= 이어령 본사 고문,  그림= 김영택 화백

 

헐려도 다시 서고 옮겨도 제자리를 찾는 불멸의 문이 있다.

 
그것은 광화문(光化門) - “빛이 사방을 덮고 가르침이 만방에 미친다”는
세종대왕께서 붙이신 이름 그대로의 문이다. 어떤 어둠도 빛을 삼킬 수는 없다.

 
그래서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렸어도, 재건된 그 문이 일제의 폭정으로 다시 헐려 옮겨졌어도,
그리고 그것마저 6·25의 전화로 소실되었어도 보아라. 밤이 지새면
영락없이 다시 솟는 아침 해처럼 지금 떠오르는 광화문의 빛.

복원 공사의 자리에서는 옛날 광화문의 월대가 발굴되었다.

 
그 터의 여섯 켜 지층밑에서는 말뚝을 박은 1800년 전 뻘흙이 드러났다.


시멘트가 아니다. 이제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우리 금강송(金剛松)으로 기둥을 세울 차례다.


벌써 강원도 심산에서 150년이나 자란 열어섯 그루의 소나무가 베어졌다고 한다.

단단하고 올곧게 자란 나무 속살에는 “어명이요”라는 외침소리와 함께
뫼 산자 국인(國印)도 찍었다고 한다.

 

대체 무슨 힘을 지녔기에 그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되살아나는 것일까.

 
나라님들이 떠난 빈 궁궐의 문인데도,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 - 다른 문들은 모두 잊혀 가는데
어째서 광화문 이름 하나만은 인두로 지지듯 가슴속에 남아 있는가.

 

천안문처럼 크지도 않고 파리의 개선문처럼 높지도 않은데 낯선 이방인들에게도 정을 주는 광화문의 매력.
그래서 그 문이 헐릴 때 일본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오시(柳宗悅)는
 “오 ! 광화문이여 ! 오 광화문이여!” 통곡을 하듯이 몇 번이나 목메어 그 이름을 불렀고
전쟁의 개선문만 보던 서양 사람들은 그 신기한 이름을 풀어
사람의 지혜를 일깨우는 “계몽(enlightment)의 문”이라고 반겨 불렀다.

 

광화문은 우리의 얼굴,
광화문 거리는 우리 몸의 중심에 있는 옴파로스(배꼽).
심훈 선생이 그날이 오면 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둥둥 치며
행렬의 앞장을 서겠다고 노래한 광화문 육조 거리 - 해방의 북소리만이 아닐 것이다.


옛날에는 신문고를 울리고
오늘에는 ‘붉은 악마’들이 거리 응원의 함성을 지르듯 신나면 손뼉을 치고
화나면 발을 구르는 역사의 진동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광화문이 복원된다는 것은 그 문을 지키던 전설의 해치(해태)가 다시 눈을 뜬다는 것이다.


신선이 먹는 멀구슬나무의 이파리가 아니면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는다는 청결한 동물,
그 전설의 해치가 외뿔을 세우고 우리에게로 온다.

 
온몸의 비늘을 번득이며 폭력과 악으로 오염된 이 시대를 정화하고 심판하기 위해서
광화문이, 해치가 이 세계로 온다.



 

     
 

출처 : 청정남
글쓴이 : 청정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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