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대석단과 자하문

| 경주 불국사 대석단과 자하문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울린 불국사(佛國寺) 전면 사진을 보면 ‘불국토가 있다면 이렇게 아름다울 것’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들의 구도는 모두 왼쪽에서 찍은 것입니다. 오른쪽에서는 큰 소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사진 찍기가 어렵습니다. 불국사 전면 축대를 대석단(大石壇)이라 합니다. 대석단 왼쪽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오르는 작은 계단이고, 오른쪽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으로 가는 큰 계단입니다. 청운교 위 자하문(紫霞門)이 주 출입구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는 것이 안타까워 펜화로 도전해 보았습니다. 신라 법흥왕 15년(서기 528) 창건 당시 모습은 알 수 없습니다만 1920년대에 찍은 사진에 큰 소나무가 없으니 원래 모습을 되찾은 셈입니다. 대석단 앞 연못은 자료가 없어 재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단단한 돌을 세밀하게 가공하여 목제 가구 만들듯 짜 맞춘 공법, 자연석 모양에 맞추어 장대석을 도려내 결합시킨 그랭이 기법 등은 축대를 튼튼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최고급 기술입니다. 돌을 떡 주무르듯 하던 솜씨로 석가탑· 다보탑과 대석단을 만든 것입니다. 신라 장인들이 혼을 담아 쌓은 대석단 위에 안양문·범영루·자하문·좌경루가 날아 갈 듯한 자태로 서 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목조 건축의 백미입니다. 이쯤은 돼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연화교와 칠보교가 국보 제 22호, 청운교와 백운교는 국보 제 23호입니다. |
| 불국사 전면 좌측에서 찍은 사진 |
| 오른쪽에서 찍은 불국사 전면 1920년대에 찍은 사진에는 앞에 보이는 소나무들이 높이 2~3m에 불과 하였습니다. |
| 청운교, 백운교와 자하문 석단 아래는 속세이고, 위는 부처님의 세계, 즉 불국토입니다. 청운교도 젊은 청년을 말하고 백운교는 머리가 백발이 된 노인을 뜻하여 인생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
| 시프트렌즈로 찍은 청운교, 백운교와 자하문 신라 때에는 앞에 연못이 있어 이 모든 것이 물에 비쳐 보였다니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었을까요. 타지마할을 상상해 보세요. 일부 학자는 신라에 인도 등지의 서역인들이 있어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
| 날아갈듯한 자태의 범영루에는 원래 범종이 달려 있었지요. 특이한 모양의 기단은 수미산을 본딴것으로 수미단이라고도 하며 범종루를 수미범종각이라고도 합니다. 범영루 우측 아래에 토함산의 물이 경내를 거쳐 연못으로 떨어지게 만든 수구가 보입니다. 이 물이 떨어져 무지개를 일으켰다는 기록을 보면 축대 바로 앞까지 연못이었다는 추측이 가능해 집니다. 연못을 되살린 펜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축대 아래 자연석의 모양에 맞추어 장대석을 깎아 결합시킨 그랭이 기법이 보입니다. |
| 극락전 대문인 안양문으로 오르는 연화교와 칠보교. 연화교 계단에는 연잎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꼭 찾아보세요. |
| 축대 중간 장대석 사이사이에 밖으로 튀어나온 장대석을 주먹돌, 또는 쐐기돌이라 하는데 축대 안쪽 깊이 들어가 있어 축대가 앞으로 쏠리거나 무너지는 것을 방지합니다. 그러나 앞이 이렇게 길게 튀어나온 것은 축대를 아름답게 만드는 목조건축 기법으로 전 세계에서 불국사 밖에 없습니다. |
| 좌경루는 자하문 우측의 범영루와 대칭되는 건물로 건물의 권위를 살리며 아름답게 만드는 역할도 합니다. |
| 좌경루 축대에도 자세히 보면 자연석과 장대석을 그랭이 기법으로 맞물려 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석단 아래는 자연석을 쌓아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를 뜻하고 위의 다듬은 돌들은 불국토를 상징합니다. 축대 아래 잔디와 조경수는 일본식입니다. 본래 우리나라 궁궐이나 절에는 나무를 심은 경우가 드?니다. |
| 지면의 경사에 맞추어 석단 중간 장대석의 높이를 차츰 위로 올린 모습은 보기 드믄 디자인으로서 뛰어난 설계입니다. |
| 자하문 문고리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불국사 안내판에 문양으로 디자인 되어있습니다. 이제 문고리를 잡고 불국사 경내로 들어가 봅시다. |
| 청운교, 백운교, 자하문으로 연결되는 남북의 축에 석등과 대웅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당시 궁궐과 사찰의 배치방법이었습니다. 대웅전이란 ‘큰 영웅, 즉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전각’이란 뜻입니다. |
| 교과서에서 자주 보았던 석가탑과 다보탑 석가탑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리니가 나왔습니다. |
| 석가탑 맨 아래 하대석을 바닥 자연석의 모양에 맞추어 파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무슨 기법이라고 했지요? 잊어먹었다고요? 5번째 사진과 9번째 사진에 두 번이나 말씀 드렸는데 기억이 않난다니 당신은 치매 초기단계가 분명 합니다. |
| 석가탑 상륜부를 보고 탑파 공부 좀 합시다. 석가탑 3층 지붕돌 중심에 구멍을 뚫고 찰주(철심)을 박은다음 맨 아래에 보이는 사각형 구조물인 ‘노반’을 끼우고 그 위 ‘복발(숨은 듯한 것)’, 그 위에 연잎이 붙은 모양의 ‘앙화’를 올려놓았습니다. 여기 까지는 본래 석가탑에 있었던 것이고 나머지는 유실 되었던 것을 남원 실상사 삼층탑을 본 따 복원한 것입니다. 앙화 위 네 개의 ‘보륜’ 그 위에 귀꽃이 달린 ‘보개’, 잔무늬가 조각된 타원형 물건이 ‘수연’이며 그 위 구슬이 ‘용차’, 윗 구슬을 ‘보주’라 합니다. 이번 기말고사에 꼭 나옵니다. 외워두세요. |
| 다보탑은 워낙 많이 알려져서 설명은 생략합니다. 구성과 조형미가 뛰어난 세계적인 걸작품입니다. |
| 주둥이가 깨져 나갔지만 용맹하고 잘생긴 사자입니다. 발톱만 보아도 얼마나 무서운지 짐작이 가지요. 그런데 일본인 들이 세마리나 잡아갔습니다. 어디에 꽁꽁 숨겼는지 찾을 도리가 없습니다. 보신탕으로 잡아먹지 않았는지 걱정도 됩니다. 이 사자가 신라 때 조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잘 살펴보면 다보탑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보탑에는 군더더기 하나 덧붙일 데가 없습니다. |
| 불국사는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국립사찰이기 때문 입니다. 모든 궁궐에 회랑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부여 능산리 절터와 합천 영암사지에 회랑이 있었던 흔적을 빼고 국내 단 하나 뿐인 사찰 회랑입니다. 일본 사찰에 회랑이 많은 것은 백제계인 천황들이 불교를 이용하여 일본을 통치하기 위하여 국립사찰을 많이 지었기 때문입니다. |
| 앞에서 본 목어입니다. 여의주를 물고 있고 머리에 뿔까지 났으니 곧 용이 될 것 같습니다. |
| 범영루에는 법고를 지고 있는 거북이 한마리가 삽니다. 나이가 많지는 않습니다. |
| 대웅전 뒤 무설전 |
| 극락전에는 국보 제 27호 금동아미타여래를 모셨습니다. |
| 근래에 극락전 공포에서 돼지 조각을 발견하자 극락전에서 기도하면 돈복을 많이 받는다고 소문이 나서 많은 신도들이 모이자. 더 많은 소문을 내기 위해 황동 복돼지를 만들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어울리는 시설은 아닌 것 같습니다. |
| 현판 뒤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던 돼지 조각 |
| 귀퉁이 공포를 ‘귀공포’라 합니다. 참 복잡한 구조입니다. |
| 관음전에 모신 관세음보살은 자비가 많은 부처님으로 중생의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하여 기도하러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
| 국보 제 26호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 |
| 사리탑, 또는 광학부도(光學浮屠)라 합니다. 중대석의 구름 조각이 특이합니다. 1905년 일본으로 반출하여 음식점 정원에 있던 것을 1933년 찾아온 것입니다. 조선이 해방 될 것을 알았다면 회수가 되었을까요? |
| 사리탑 몸돌에 네 곳의 감실을 만들고 부처 등을 조각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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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전 뒤에 깨진 기와 등으로 돈도 않듭니다. |
출처 : 청정남
글쓴이 : 청정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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