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오랫만에 스케치를 하였다. 7월 12일 저녁 인사동 지리산에서 일본 나라 약사사 봉납법회에 참석하였던 늘샘가족(常泉家族)의 해단식 겸 법회에 참석하지 못한 지인들의 모임이 있었다. 대략 60명이 참석 하였다. 이 그림은 모임에 참석한 분들에게 주는 경품 중 최고의 경품을 만들기 위해 그렸다. 오랬만에 스케치를 해보니 무척 재미있었고, 판화본이 아닌 원화라 늘샘가족 회원중 여러분이 탐을 냈으나 당첨 되지 못하자 별도 주문을 하였기에 새로 40여점을 그려서 금년 11월이나 내년 초에 출간하는 화집출판기념회과와 겸하여 전시회를 열까 한다
|

고종이 경복궁 서북쪽에 1867년 연못을 파고 세운 정6각형의 2층 정자다. 건청궁과 향원정을 연결하는 취향교(醉香橋)가 있었으나 6.25전쟁 때 파손되었고 현재의 다리는 남쪽으로 옮겨 새로 놓은것이다
|

지붕에 올린것을 절병통(節甁桶)이라 한다. 이층 난간은 계자각 난간을, 1층에는 평난간을 설치한 화려한 정자다.
|

북쪽에서 본 향원정 정자앞, 약간 왼쪽에 있는 석단이 옛 취향교의 기초로 보인다.
|

창호는 아자살창호로 들어열개문이어서 모두 접어 들어서 걸쇠에 걸게 되어있다. 좌측 지붕 아래에 매달린것이 걸쇠다. 창을 모두 들어 올리면 더운 여름 시원한 정자가 된다
|

경복궁 북쪽에 지은 건청궁의 일부로 고종의 서재로 쓰인 집옥재(集玉齋)와 팔우정(八隅亭). 건청궁은 1887년 조선 최초로 전등이 설치된 곳으로 중국이나 일본 보다 2년 앞선 것이다.
|
 집옥재는 중국식 벽돌로 지었고
팔우정에는 유리창을 다는 등 당시 신식으로 지은 건물들이다.


장안당(長安堂) 건청궁은 1873년 고종이 자신의 재산인 내탕금으로 지었다. 경복궁을 짓는다고 엄청난 비용을 써서 백성들로 부터 원성을 산 대원군과 다른 모습을 보인것은 그 해 친정을 선언하여 대원군의 섭정에서 독립하려는 모습을 보인것과 같은 뜻일 것이다.
|

옥호루(玉壺樓)는 곤녕합에서 살해된 명성황후의 시신이 잠시 안치 되었던 곳이다. 옥호루에서 살해된 곳으로 표기된 기록물이 많으나 잘못된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