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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의 펜화로 본 한국 53
순천 송광사
“꺾꽂이를 한 나무 가지에서 어떻게 뿌리가 나올까?” 하고 의문을 가져보신 적이 있습니까? 잘라진 가지에서 뿌리가 나오려면 나뭇가지 자신이 본 줄기로부터 떨어져 나온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뿌리로부터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말라 죽을 것이라는 비상사태를 판단해야 됩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몸의 일부가 흙 속에 묻힌 것을 알고 뿌리를 만들면 살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겠지요. 그리고는 흙에 묻힌 부분을 뿌리를 만들 수 있는 체제로 전환시키고 온 몸의 영양을 그 쪽으로 보내 뿌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판단과 행동을 하려면 나뭇가지가 종합적인 사고 기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나무에 대하여 단순한 생각을 갖고 계셨다면 바꾸셔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하였으니 당연히 생각을 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미국 유수의 거짓말 탐지 전문가인 클레베 백스터는 세계 각지에서 온 경찰과 보안담당자에게 거짓말탐지기 교육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거짓말탐지기의 전극을 ‘드러시너’ 잎사귀에 연결하고, 잎사귀를 태우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조사 하려고 하자 검류계의 바늘이 급작스럽게 움직이며 그래프의 도표가 위로 쭈욱 올라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스터는 깜짝 놀랐습니다. 식물이 사람의 생각을 알아챈 것이니까요. 양파 상추 등 25가지도 넘는 식물을 조사하였으나 결과는 모두 같았습니다. 그 후 많은 과학자들이 식물이 생각을 하고, 놀라고, 질투도 하고, 기절도 하며 성적인 흥분도 하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특히 텔레파시 능력이 대단하여 주인의 생각에 즉각 반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20까지의 수는 덧셈도 할줄 안다는 것입니다.
순천 송광사(松廣寺) 우화각(羽化閣) 앞에 키가 6.7m인 말라죽은 나무가 있습니다. 고려 명종 30년(1200) 송광사를 창건한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 스님이 향나무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살아서 잎과 가지가 무성하였답니다. 그런데 지눌 스님이 “너하고 나하고 생사를 같이하자. 내가 떠날 때 너 또한 마찬가지.....”라는 시를 지어놓고 입적하니 이 향나무도 말라 죽었답니다. 현재에도 썩지 않고 남아있어 고향수(枯香樹)라고 부릅니다.
영조 27년(1751)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도 ‘....보조국사와 함께 죽은 나무가 있습니다. 천년이 지났건만 잎은 없으나 칼로 긁으면 안에는 물기가 촉촉한 것이 생기가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식물이 인간과 의사소통을 한다고 입증이 되었다지만 함께 죽자고 한다고 같이 죽을 수 있을까요? 큰 스님이었기 때문이겠지요.
송광사 산내암자인 천자암(天子庵)에 수령이 800년이 넘은 향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기둥지름이 1m 쯤 되는 두 나무는 늙고 병들어 속이 텅 빌 정도였으나 전문가의 치료를 받은 후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지눌스님과 제자인 금나라 왕자 담당스님이 함께 꽂았던 지팡이가 살아서 큰 것이랍니다. 곱향나무 또는 쌍향수(雙香樹)라고 합니다. 두 나무가 정답게 잘 자란 모습을 보면 두 분 스님의 사이가 무척 좋았던 모양이지요. 높이 12.5m로 천연기념물 제88호 입니다. 송광사 스님들의 정신적 상징입니다.
지눌스님은 타락한 고려 불교를 바로잡기 위하여 정혜결사(定慧結社)를 결의 합니다. ‘참선만이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다’, ‘배움이 우선이다’라며 싸우는 선종과 교종의 갈등에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명언으로 결론을 냅니다.
스님은 정혜결사를 위한 넓은 도량으로 송광사를 세우고 훌륭한 제자를 양성합니다. 스님은 돌아가실 때에도 큰 스님다운 면모를 보입니다. 떠나신다고 예고 한 날 제자들의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신 후 법상에 앉아 조용히 열반에 드신 것입니다.
이후 송광사는 조계종의 중심도량으로 자리 잡아 15명의 국사가 배출됩니다. 그래서 ‘불보사찰’인 통도사, ‘법보사찰’인 해인사와 더불어 16명의 국사를 모신 ‘승보사찰’로 손꼽는 것이지요.
송광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능허교(凌虛橋)라는 무지개 다리위에 지은 우화각을 통하여 절로 들어갑니다. 이 우화각과 능허교의 홍예, 임경당(臨鏡堂) 누마루의 기둥 두개가 개울 물에 비친 모습은 송광사 최고의 절경으로 많은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능허교 위쪽의 계곡도 아름답습니다.
우화각을 지나면 사천왕문이 있고, 그 다음 종고루(鐘敲樓) 밑을 통하여 절 마당에 올라서게 됩니다. 현재는 절 마당이 제법 넓습니다만 6.25동란 이전만 하여도 80여동의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마당이랄 것도 없었답니다.
대웅보전 뒤 언덕에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설법전과 수선사가 있어 승보사찰임을 증명합니다. 통도사는 대웅전 뒤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고, 해인사 대웅전 뒤에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장경각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관음전 뒤 보조국사 부도를 모신 부도전에 오르면 송광사 경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기와지붕이 첩첩하여 큰 절의 면모를 알 수 있습니다.
송광사에는 16국사의 영정을 모신 국사전(國師殿), 박물관에 전시된 목조삼존불감(木造三尊佛龕),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등 국보가 3점, 그 외에 13점의 보물이 있습니다. 송광사 일원은 명승 제5호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경치가 빼어나 이것저것 볼 것이 많은 절입니다. 큰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 들어가시는 분은 계곡 위에 지은 청량각(淸?閣) 난간에 앉아 계곡에 펼쳐진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보너스를 받게 됩니다.
그림. 글. 사진=김영택 펜화가 honginart@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