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김영택의 펜화기행49-막 꺾은 연꽃을 꽃아놓은 듯 그림같은 꽃살문- 정수사

문근영 2013. 4. 24. 07:21

제목:김영택의 펜화기행49- 막 꺾은 연꽃을 꽃아놓은 듯 그림같은 꽃살문- 정수사
분류: 칼럼
이름: 8.김영택




정수사 법당(근래들어 대웅보전으로 이름이 바뀌었음)
앞으로 한칸의 퇴를 달은 특이한 건물로
통판 투조방식의 ?살문과 투조연봉첨차, 연꽃조각 화반으로 전문가들에게는 소중한 유물임



정수사 대웅보전


정수사 법당 꽃살문
통판에 투각으로 조각한 문으로 보기 드믄 유물입니다.



정수사 법당 공포


정수사 법당 공포
지붕의 무게를 기둥에 안전하게 전하는 공포에 조각과 단청을 올린것
가로장치인 첨차의 좌우에 연봉과 줄기를 투각한 아름다운 첨차로 국내에서 보기가 힘듭니다.



정수사 법당 화반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창방 위에 올려놓은 화반에 연꽃과 줄기를 투각한것으로 참 예쁘지요



정수사 삼성각


정수사에서는 바다가 보입니다.


법당 측면과 풍판 사이로 보이는 풍경


정수사 법당 측면 풍판
법당 측면으로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는 장치로
중간에 건물 앞으로 한칸을 내다는 바람에 지붕 용마루가 뒤쪽으로 치우쳐있읍니다.



정수사를 중창한 함허대사 부도
가까운 곳에 함허동천이라는 아름다운 계곡이 있어 돌아오는 길에 들러볼만 합니다.



전등사


삼랑성 남문
문루는 복원된것이며 주 출입은 동문을 이용합니다



삼랑성 동문
전등사를 출입하는 길로 차 까지 다닙니다.



양헌수 승전비
동문 바로 안에 있는 비각으로 병인양요 때 강계 포수 500명을 동원하여 삼랑성에 매복,
조선군을 우숩게 알고 성안으로 들어오는 올리비에 대령이 이끄는 프랑스군에게 치명타를 가하여 승리
이 공으로 한성부좌윤(서울시 부시장), 어영대장, 형조판서, 공조판서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삼랑성 성벽


전등사 마당
좌측이 종루, 가운데가 대조루



산에서 내려다본 전등사


전등사 대웅보전


전등사 대웅보전 불상
불단 좌우에 있는것이 사람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갔을 때 인간의 일생을 보여 준다는 업경대입니다.



전등사로 들어가려면 대조루 밑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전등사 종루
예전에는 중국 종이 걸려 있었으나 근래들어 새 종으로 바뀌었음
일제시대에 공출로 종을 빼았긴 전등사 주지가 해방이 되자 혹시나 하고 부평 조병창에 가서 종을 찾아보았으나
전등사 종은 못찾고 대신 중국에서 공출 되었던 종을 가져다 달은 것으로
인천 박물관에는 아직도 중국종이 2개나 남아있습니다.



잡목을 베어낸 전등사 뒤편 송림
보기가 좋지요?



왼쪽 나무가 국내에서 제인 크다는 단풍나무이며, 오른 쪽 건물이 대조루


전등사 입구에 윤장대를 만들어 놓았네요


정족산 사고
지은지 5년밖에 않되었는데 습기로 썩어가고 있어 야단입니다.
본래 사고를 지을 때에는 통풍이 잘되는 곳이었으나
근래 잡목이 너무 잘 자라서 습기가 많아졌답니다
한옥은 사람이 살아야 쉬 망가지지 않기 때문에 절에서 이용할 예정이며 잡목도 벌채를 할거랍니다



윤교육장의 추억에 맞추어 사진을 올렸네.
이 벌거벗은 여인(사실 자세히 보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않되네, 유방도 없고...)은
절 입구에서 술을 팔던 주모인데 대웅전을 짓는 목수와 정분이 나서 살림을 차리기로 약조를 하고
목수의 품삭을 전부 받아서 챙긴 후 야반 도주를 하였다지 뭔가.
사랑도 돈도 모두 잃어버린 목수가 발가벗은 주모의 목각을 만들어 추녀를 받치는 역할을 하게 하였다네.
저주라고 해야할까, 아님 기념이라고 해야할까?


 

 

                                          김영택의 펜화로 본 한국 49

                                                         강화 전등사와 정수사


    건축문화재가 있는 현장에서 펜화를 그리고 있을 때 옆에서
서너 시간 씩 지켜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 중 반수 이상이 화가입니다.
같은 화가인데도 펜으로 기와 한 장, 벽돌 한 장까지 꼼꼼하게 그리는 것이 신기한가봅니다.
“어떻게 그리 꼼꼼할 수 있느냐”는 분도 있고, “힘들지 않느냐”는 분도 있습니다.
세밀한 묘사를 하는 경우에는 하루 온종일 그려도 10X10cm 정도 밖에 못 그립니다.
그러니 펜화가라고 어찌 지겹지 않겠습니까.
특히 벽돌 건물을 그리려고 수 만장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그릴 때면 한숨이 절로 납니다.
한번은 꾀를 내서 손재주 좋은 후배에게 대신 그리게 하였습니다.
연필로 완전하게 잡아놓은 밑그림을 따라 단순한 선만 그으면 되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녁에 보니 후배의 선과 펜화가의 선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림 한점을 망쳐 놓고서야 선 하나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하나의 선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만들어 진다고 생각합니다.

 
    주간조선 연재가 1년을 넘었습니다.
주간연재를 위하여 1주일에 한점의 펜화를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 4절(48X36cm) 규격의 펜화 한 장 그리는 데에는 열흘 정도가 걸리거든요.
더구나 취재에 이틀정도 걸리니 4~5일에 한 장을 그려야 하는 셈이지요.
그러니 하루 16~18시간 작업을 하여 하루에 이틀 치 작업을 하여 해결을 합니다.
마감 전날은 꼬박 날밤을 새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이번 추석 합본호 덕분에 1주일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 덕에 그동안 미루었던 강화 정수사(淨水寺) 법당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정수사 대웅보전의 꽃살문과 공포의 첨차, 화반은 아름답고 섬세한 목각이어서
세밀한 묘사가 필요하거든요.
일부분이 세밀해지면 전체가 같은 필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곱으로 늘어납니다.

 
    정수사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정면보다 측면이 긴 보기 드문 규격의 건물입니다.
본래 측면이 3칸이었던 건물에 앞쪽으로 한 칸의 퇴칸을 달아낸 것이지요.
그 때문에 지붕 용마루가 뒤쪽에 치우쳐 있어 측면 풍판의 모양이 이상합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과 함께 드문 형태의 건물입니다.
작은 법당에 여러 사람이 예불을 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입니다.
작년에 끝난 8중창 공사 때 목재의 벌채 년도를 측정 해본 결과
툇간을 내단 것이 1524년으로 추정 된답니다.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정수사가 유명해진 것은 퇴칸 보다는 아름다운 꽃살문 때문일 것입니다.
사분합문인 꽃살문은 화병에 꽃이 꽂혀있는 모양을 통판투조방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두께 45mm의 널판에 꽃을 투각기법으로 조각하여 문울거미에 끼워 넣은 것입니다. 가운데 두 짝은 연꽃, 연봉, 연잎과 줄기를 새겼고,
좌우 두 짝에는 목단 꽃, 봉오리, 잎과 줄기를 널판 가득하게 조각해 놓았습니다.
불상 옆에 장엄을 하던 크고 화려한 조화를 문짝에 옮겨놓은 것으로 보여 집니다. 
문살 자체에 무늬를 새겨 조립하는 꽃살문이나,
살교차점에 꽃을 붙인 꽃살문은 연속무늬 형태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통판에 조각한 정수사 꽃살문은 꽃 그림을 보는듯한  개성이 넘치는 문입니다.

 
    꽃살문과 똑같은 디자인을 법당 정면 공포의 첨차와 창방 위의 화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첨차 좌우에 연봉을 새겨놓고 소로를 받치게 하였습니다.
‘연봉형 첨차’로 보기 드문 걸작입니다.
투각된 연봉과 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 예뻐서 꺾어다가 화병에 담고 싶어집니다.
창방 위의 화반은 넓적한 수반에 연꽃과 연잎을 꽂아놓은 꽃꽂이 작품처럼 아름답습니다.
모두 집을 짓는 대목의 솜씨가 아닌 가구를 만드는 소목장의 솜씨인데 뛰어난 창의력이 돋보입니다.

 
    정수사는 법당이 둘, 요사채가 하나인 작은 절입니다만
꽃살문과 연봉형 첨차, 화반만으로도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합니다.

 
    강화도를 한반도의 중심부라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지기가 가장 센 곳이라는 마니산(摩尼山)에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참성단(塹城壇)이 있습니다.
마니산은 우두머리산  이라는 뜻으로 마리산(摩利山) 또는 두악(頭岳)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마니산 동쪽 기슭에 정수사가 있고, 가까운 정족산(鼎足山)에는
단군이 운사 배달신에게 명하여 쌓았다는 삼랑성(三郞城) 안에 전등사(傳燈寺)가 있습니다.

 
    강화도는 수도 서울의 입구인 한강을 방어하는 요충지로서
삼별초의 대몽항쟁,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 강화도 조약 등 큰 사건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해안을 따라 12진보, 54돈대, 5포대가 잇달아 늘어서 있습니다.
전등사는 호국 사찰로서 수도 방위와 왕실의 원찰 기능을 함께 담당하였습니다.

 
    전등사는 1920년대에 발간한 조선고적도보의 사진과 현재의 모습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큰 불사를 일으켜 절을 키우는 것이 자랑이 된 요즈음
변함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전등사에 정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거목이 된 은행나무뿐만 아니라 절마당의 느티나무도 엄청 큰 등치를 자랑하고 있고,
대조루 옆의 단풍나무까지 큰 고목이 되어서 전등사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절 뒤편 잡목들을 베어내서 잘 생긴 소나무들이 들어나 보이는 것이 참 좋습니다.
스님 말씀이 소나무의 생장에도 좋아서 매년 잡목제거 면적을 넓혀나갈 예정이랍니다.
소나무와 잡목이 섞여있는 숲을 가진 절에서 참고 할만한 일입니다.

 
    절 뒤편 서쪽 숲에 자리 잡은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는 복원 된지 5년밖에 안되었는데
목재들이 습기에 검게 변하여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합니다.
주위의 나무가 너무 잘 자란 것도 탈이 되네요.
잡목들을 제거하여 통풍이 잘 되게 하여야 해결될 것이랍니다.

  바다가 보이는 전등사에서 맞는 일출도 장관이어서 정월초하루 새벽에는 절 마당이
인산인해가 된답니다.


그림.글.사진=김영택 펜화가honginart@hanmail.net

출처 : 청정남
글쓴이 : 청정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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