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김영택의 펜화기행46- 화려한 상륜부의 極樂鳥, 燕谷寺 東浮屠

문근영 2013. 4. 21. 10:25

제목: 김영택의 펜화기행46-화려한 상륜부의 極樂鳥, 천년의 이끼 털고 날아오를 듯 - 燕谷寺 東浮屠
분류: 칼럼
이름: 8.김영택




10년전에 그린 연곡사 동부도
상륜부가 잘못 조립되어있습니다.



연곡사 동부도와 부도비


동부도
상륜부가 제대로 고쳐졌습니다.



동부도비


부도를 지키라는 임무는 잊고 제 꼬리를 물고 맴을 돌며 놀기 좋아하는 사자


사천왕상
고개를 갸웃하게 숙인 모습이 장군이라기 보다 연애하다 들킨 수줍은 총각 같지요
이런것이 한국인의 마음입니다.



동부도 상륜부
조각이 화려하지요?



팔부신중,
팔부신장이라고도 합니다.



북부도
동부도와 아주 비슷하지요?
그런데 보통 문화재를 국보와 보물로 구분할 때 나중에 만든 것으로 모방성이 높으면
앞에 것은 국보, 뒤에것은 보물로 지정하기 쉬운데 이것은 둘 다 국보라 이상합니다.
조각도 생략이 되고 수준도 낮은데...
하기는 "남대문은 국보 1호인데 왜 동대문은 보물 1호냐"고 물으면 전문가도 대답을 못하고 달아납니다.



가릉빈가
머리는 사람인데 몸은 새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소리를 낸답니다.



북부도 몸돌
가운데 조각이 사리기입니다.
큰스님의 사리를 모셨다는 것이지요.
좌측의 사천왕도 목이 짧고 어색한것이 동부도의 솜씨에 비하여 훨씬 떨어져 보이지요.



북부도 하대석
동부도와 다른것은 연잎조각뿐입니다. 기왕에 모방하려면 전부 모방을 하지 왜 이것만 다르게 하였을 까요?
전부 컨닝했다고 야단 맞을까봐 하나를 바꾸었나 보지요.



소요대사 부도
상륜부가 확실합니다.



소요대사 부도 몸돌 사천왕상
동부도와 북부도에 비하여 돋을 새김이 확실하게 튀어나왔습니다.
통통한것이 봉제인형처럼 귀엽지요?



현각선사 부도비의 귀부와 이수


연곡사 전경


삼층석탑

 

                                                 김영택의 펜화로 보는 한국 46

                                                        연곡사 동부도


    국내 부도 중 가장 잘 생긴 것을 고르라면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부도’를 드는 분과
‘구례 연곡사(?谷寺) 동부도’를 손꼽는 분이 계십니다.
둘 다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부도로 쌍벽을 이룬다고 봅니다.
철감선사 부도는 대석과 몸돌, 지붕돌의 비례가 좋고 몸돌이 크고 수직적이어서 남성답습니다.
거기에 비해 동부도는 조각이 섬세하며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형태여서
여성적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둘 다 신라 때 만든 소중한 문화재로 철감선사 부도가 국보 제57호이고, 동부도는 국보 제53호입니다.

 
    연곡사에는 동부도 외에도 국보 제54호인 북부도, 보물 제154호인 소요대사 부도가 있습니다.
동부도비와 현각선사 부도비도 보물 제153호, 보물 제152호이며
절 아래 마당에 있는 삼층석탑이 보물 제151호입니다.
큰 절이면서도 보물 한점 없는 곳이 허다한데 국보가 2점, 보물이 4점이 있으니
연곡사는 산골 박물관인 셈이지요.

 
    지리산 피아골 입구에 자리 잡은 연곡사는 유물이 말 해주듯 무척 큰 절이었답니다.
한때는 화엄사가 연곡사의 말사였다고 주장하는 스님도 계십니다만 믿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통일 신라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임진왜란에 불탄 것을
인조 5년(1627)에 소요대사(逍遙大師)가 중창하였습니다.
구한말 의병장 고광순이 연곡사를 본부로 하여 의병활동을 하다 패하는 바람에 절이 불타버립니다.
이후 6.25동란 때 다시 재난을 입습니다.
근래에 지은 여러 당우들이 있습니다만 넓은 빈터는 사라진 옛 영화를 말해 줍니다.

 
    연곡사 동부도는 세밀한 조각의 화려한 상륜부가 온전하게 남아 있어 전문가들을 흥분케 합니다.
하나로 만들어진 상륜부도 남아있는 경우가 드문데  6부분으로 나누어 만든 상륜부가
완전하게 남아있다는 것은 기적이지요.
다만 극락조의 머리는 모두 훼손이 되었습니다.
도굴꾼들이 부도의 사리기를 훔쳐가려고 부도를 쓰러트리는 등의 사고 후에 상륜부의 부재들을 다시 얹을 때 순서가 바뀐 경우가 있었습니다.
펜화는 순서가 뒤바뀌었을 때 그렸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과 다릅니다.

 
    동부도는 어느 스님의 부도라는 기록이 없어 절의 동쪽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부도로 부릅니다.
동부도는 팔각원당형부도으로 크게 나누어 지대석, 대석, 몸돌, 지붕돌
그리고 상륜부로 구분합니다.
사각 지대석 위에 놓인 하대석에는 8면마다 사자를 한 마리씩 조각하였습니다.
사자는 부도를 지키는 수호동물입니다만 장난꾸러기 같아서 놀기에 바빠 보입니다.
사자 아래에는 구름과 용이 어우러졌으니 부도가 구름위 천상의 세계, 즉 불국토라는 뜻입니다.

 
    중대석에는 각 면마다 팔부신중 한분씩 조각하였습니다.
부도는 오랜 세월 거친 풍상을 겪으며 조각이 마모되고 이끼가 덮여
세밀한 조각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부도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으려니
해가 움직일 때마가 그림자가 변하며 조각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팔부신장의 손톱만한 발바닥에 발가락 다섯 개가 보이고
상대석의 가릉빈가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줍니다.
천년 저편의 석공이 말을 걸어오는 듯 온몸을 스치는 전율에 휩싸였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서양의 사실적 조각에 비해
우리의 조각이 빈약하고 사실적이지 못하다고 낮추어 봅니다.
서양은 인간중심입니다.
그래서 사람도 실물처럼 만들어 놓습니다.
자연과 우주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는 사람을 조각하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왕릉의 문인석이나 무인석을 포함해 부처와 신장 등 도식적인 조각이 전부입니다.
인체를 사실적으로 만들 일이 없었던 것이지 재주가 없어서 만들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경복궁 영제교 좌우에서 금천을 지키는 4마리의 천록을 보시면
우리 선조들의 조각 능력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종교와 정신세계를 조각한 것입니다. 차원이 다르지요.
요즈음 간략화 되고 추상화 되고 있는 세계 조각의 추세를 일찌감치 앞서간 것입니다.

 
    상대석의 두 겹 연잎은 정교하기 그지없습니다.
연잎 가운데의 국화문양이 아름답습니다.
그 위의 몸돌 받침은 상다리 모양인데
그 사이에서 가릉빈가가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고 있습니다. 
불국토에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는 상징입니다.
팔각 몸돌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비가 2면, 사리기가 2면, 사천왕이 4면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큰 스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지붕돌은 목조건물의 겹처마지붕을 본뜬 것입니다.
서까래와 부연이 확실하고 추녀에 사래도 사실적입니다.
기와골도 훌륭한데 추녀마루도 명확합니다.
풍탁을 달았던 구멍이 있습니다.
온전한 모습에 풍경소리가 아름답던 옛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신라와 고려 때에는 국가와 종단에서만 부도를 만들었습니다.
국사와 같은 큰 스님의 부도만 크고 정교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절에서 만들게 되면서 작고 소박한 부도가 나옵니다.

 
    상륜부에는 연잎을 위로향한 앙화 위에 보륜이 겹쳐있고
그 위에 극락조 네 마리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려 합니다.
새의 머리까지 남아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맨 위에는 보주로 끝마무리를 하였습니다.
동부도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너무 탐나서 일본으로 반출하려고 하였으나 실패를 하였답니다.

 
    동부도 옆에 동부도비가 비신을 잃어버린 채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습니다.
거북 등에 날개가 있고 이수 위에 보주가 하나 있습니다.
제작연대는 동부도와 다른 고려시대로 봅니다.
따라서 같은 스님의 부도와 부도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동부도 왼쪽으로 난 길을 오르면 절 북쪽에 북부도가 있습니다.
동부도를 모방하였는데 격식이 좀 뒤떨어져 보입니다.
하대석의 사자 대신에 연꽃잎으로 바꾸었을 뿐 모든 것이 동부도와 닮았습니다. 
석질이 약해서 마모가 심해보입니다.

  
    서부도라 불리는 부도는 소요대사 부도로 명문이 뚜렷하여 조성연대(1649)가 확실합니다.
몸돌에 새긴 사천왕상의 조각이 큼직하게 돌출되어있고 지붕돌의 귀꽃이 화려합니다.
소요대사 부도의 상륜부가 동부도와 북부도의 상륜부를 바로 올리는데 표준이 되었습니다.
두개로 나누어져 있어 뒤섞일 염려가 없었거든요.

 
    절 서쪽에 놓인 현각선사(玄覺禪師) 부도비는 
큰 거북머리통에 등짝의 무늬가 선명하여 용맹스러워 보입니다.
고려 경종 4년(979)에 만든 것으로 파손된 것을 붙여놓았습니다.

 
    연곡사 답사의 특징은 지리산 피아골의 수려한 풍광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절 앞 계곡도 좋지만 올라갈수록 계곡의 깊은 맛은 더해집니다.


그림. 글. 사진= 김영택 펜화가 honginart@hanmail.net

출처 : 청정남
글쓴이 : 청정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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