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인도 여행기 (7) 마날리

문근영 2013. 4. 20. 09:56

꿈과 현실을 기억할 때

 

인도 여행기[7] 마날리

 

2010년 06월 18일 (금) 17:26:32 박주현 babyss8@hotmail.com

 

   
▲ 러시아 작가 Nicholas Roerich의 'Star of the Hero'. 그는 마날리 에서 51km떨어진 쿨루밸리(Kullu Valley)에1928년 Urusvati(뜻: Light of the Morning Star)라는 히말라야 연구소를 건립하고 마지막 여생을 보냈다. 현재 건물은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새벽에 출발한 버스는 흙먼지가 폴폴 날리는 메마른 땅을 한참 달렸다. 달리고 달리다 보니 하얀 눈이 보이기 시작하고 창틀 사이로 콧물까지 얼게 할 차가운 바람이 스멀스멀 기어들었다.

 

 버스 안 오싹한 공기 사이로 빠른 박자의 힌디 노래가 울려 퍼졌다. 흥겨운 노래를 무표정하게 흥얼거리는 버스기사를 보자 살갗이 오톨도톨 올라왔다. 거기엔 설산을 바라보며 느끼는 경이로움에서 찾을 수 있는 그 무언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스피티(Spiti)지역 카자(Kaza)에서부터 마날리(Manali)까지 200킬로미터 정도 꼬불꼬불 아슬아슬한 절벽을 타고 이어진 도로를 6시간 정도 쉬지 않고 운전하여 만년설이 자리한 곳까지 오른 그의 여유로움이 만든 것이었다. 

 

나는 그 덕분에 불과 몇 시간 만에 여름에서 겨울로 여행을 했다. 고도 4천 미터에 있는 도로 로탕패스(Rohtang Pass)를 지나치면서부터는 내리막길 저 멀리 푸른 골짜기가 눈에 잡혔다. 건조한 스피티 지역의 돌산만 바라보다 아득히 보이는 푸르름만으로도 무척 상쾌했다. 주위에 생긴 뿌연 안개는 하늘에서 구름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신비감을 불러일으켜, 지상의 낙원, 여행자의 천국이라 불리는 마날리(Manali)가 가까워 진 것이 분명해졌다. 

 

 

   
▲ 만년설과 나란히 달리는 버스에서. ⓒ박주현

 

그런데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길 위에 멈췄다. 앞에서도 차가 멈춰 서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아득한 저 멀리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 나도 고개를 쑥 내밀어 보니 얼마나 내려왔는지 다시 한 여름 같은 날씨가 이마 아래 땀을 송골송골 맺히게 했다. 기지개를 켜고 껴입었던 옷 몇 개를 벗어둔 다음 무슨 일이 났나, 사람들을 따라가 보았다. 

 

모인 사람들 몇몇이 웅성거리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찾았다. 차 사고라고 하는데 보이지는 않고 그냥 차들이 쭉 도로를 따라 일렬로 멈춰선 것뿐이었다. 눈에 정작 들어오는 것은 사이사이로 자란 커다란 나무들뿐. 이렇게 건강해 보이는 땅 아래를 내려다보자 시원한 신령바람에 몸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보이지도 않는 차 사고는 뒤로하고 돌아설까 망설이면서 발을 딛는 순간, 주위가 온통 하얗게 변하더니 나는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더 깊고 깊은 곳으로 빠지는데 얼핏 새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음이 무척 편안했다. 얼마쯤 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살며시 떴을 때야 시꺼먼 얼굴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이거 뭐지’ 생각하는 순간 등 아래가 축축한 걸 느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키니 내가 살포시 어느 흙 위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재잘재잘 새소리는 여전히 들렸는데 하얀 공백이 이렇게 사람들과 도로, 흙, 나무로 채워지자 잠깐 꿈을 꾸었단 생각이 들었다. ‘나 기절했지’ 라고 알아차리기 까지 얼마가 걸렸다. 

 

 

   
▲ 마날리와 가까워지며 푸르게 변하는 풍광. ⓒ박주현

 

 

이렇게 종종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있다. 시원한 바다를 헤엄치던 꿈에서 깨어나 축축해진 이불에 놀라 ‘아, 나 오줌 쌌구나’ 순간적으로 알아차릴 때는 현실로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지만 시간이 더 필요할 때도 있다. 어느 날 꿈에서 방해 받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데 누가 자꾸만 내 이름을 불러 신경질적으로 눈을 떠보면 아침 밥 준비하면서 엄마가 나 깨우느라 몇 번이고 내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그런 난 꿈에서부터 들리던 내 이름을 눈을 뜨고서도 이어서 듣게 되자 ‘내가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으니깐 지금까지 하던 일은 모두 꿈에서였지’ 라고 생각하기까지 짧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특히나 확률적으로 적지만 내가 방에 누워 있던 꿈을 꾸고 깨어나면 더더욱 내가 있는 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서 하고 있던 것, 듣던 것, 보던 것, 냄새 모두가 꿈속이 아니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의 영화 <수면의 과학(Science of Sleep)>에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주인공 스테판이 앞집 여자 스테파니를 좋아하며 꿈에서 그녀를 만났던 것 때문에 스페판은 스테파니보다 둘 사이에 추억이 많아 현실에서 스테파니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 스테판이 꿈꾸고 있는 모습, 영화 '수면의 과학' 포스터.

 

 

프로이트의 이론에서처럼 스테판은 스테파니와 함께 있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그녀를 꿈꾸었을 수도 있지만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꿈속은 단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물질적인 것들의 일상생활처럼 자아가 밤마다 여행하는 추상적인 공간일 것 같다고. 결국 꿈은 단지 상상에 공간이 아니라 현실의 연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씩만 그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지상의 천국 마날리로 도착하고는 근처 바쉬쉿의 온천이 있는 힌두사원 옆에서 지내며 배  따시게 채우고 게으름 피우며 꿈같은 일주일을 지냈다. 다시 기억하면 지난날은 아주 희미해서 거짓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느 여행자 분에게서 받은 기대치도 않던 책 선물이 추억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 그 책은 다른 평범한 선물과 달라 서둘러 책 이야기를 한다.

 

류시화 작가가 번역한 <티벳 사자의 서>인데, 선물해 주신 분도 선물 받았고, 여행 중 우연히 만난 류시화 작가에게서 받은 친필 사인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당시 류시화씨는 그 책을 발간한 후 해준 첫 사인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소중한 책을 매 여행지마다 들고 다니다가 그날 저녁은 이제 누군가에게 건네어 줄 시간이 된 것 같다며 산들바람이 부는 처마 밑에서 다소곳이 내밀었다.

 

나는 신문 구석에서 읽었던 어느 인도 젊은이의 기사가 생각났다. 이런 소설 같은 기사가 떠오르자 나도 인쇄소에서 바로 나온 깨끗한 새 책이 아니라 사연이 있고 손때가 묻은 낡은 책을 받은, 보물을 건네받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먼저 종이를 사다가 책을 깨끗이 싸고 나서 읽기 시작했다.  

 

 

   
▲ 선물 받은 책. ⓒ박주현

 

 

환생을 믿는 티베트의 사후세계에 대한 안내서이다. 파드마삼바바라는 티베트 불교 스승이 죽음과 환생의 중간지대 ‘바르도’를 여행하고 상세히 기록한 것으로 현실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꿈을 꾸듯 죽고 난 후에도 결국은 지금 살고 있는 곳과 외형적으로는 많이 달라도 자신만의 여행을 계속해 가는 곳이라는 생각에 꼼꼼히 읽어 보았다. 

 

이는 꿈과 현실 모두가 거짓이 아니라고 내게 자꾸만 상기시키는 듯 했다. 그래서 이 책이 마날리에서의 희뿌연 기억을 증명하는 듯도 하다. 나의 상상이건 실제 일어났던 일이건 간에 추억을 할 땐 차이가 없다. 마날리는 기절했을 때처럼 지친 심신을 쉬어갈 수 있는 편안한 빛의 숲이 가득 찬 꿈같은 곳이었다. 

 

▲ 신문기사 ‘빠하르간지에서 마르케스를 만나다(Meeting Marquez in Paharganji)'

 

   
▲ 신문 기사 ‘빠하르간지에서 마르케스를 만나다(Meeting Marquez in Paharganji)'

여행자거리 빠하르간지 서점에서 샀던 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Love in the Time of Cholera(콜레라 시대의 사랑)>는 1989 미국 ‘Alfred A. Knopf’에서 출판되었다. 

 

여행자거리 빠하르간지 서점에서 샀던 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Love in the Time of Cholera(콜레라 시대의 사랑)>는 1989 미국 ‘Alfred A. Knopf’에서 출판되었다.  

 

다음 해 7월 27일 목요일, 미국 와이오밍 주 셰리던 마을의 플래그스태프(Flaggstaff) 카페에서 패트릭 오닐l이란 청년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는 바람에 날리고 있던 거트루드 플래너리에게 책을 선물 한다. 2년 6개월 뒤 거트루드는 시카고의 로널드 리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사를 하던 그녀는 필요 없는 소설책(<Love…>도 포함해서)들을 크래이그 중고 서점에 팔고, 뉴욕에서 온 한 학생은 그 책을 여자 친구 마르사(Martha)를 위해 산다.

마르사는 퀸즈에 있는 주유소에서 야간 판매직원으로 일했다. 그녀는 어느 날 터키에서 이민을 온 일마즈(Yilmaz)와 사랑에 빠지고 그의 가족을 만나러 이스탄불로 날아간다. 비행기에서 그녀는 가져온 마르케스의 책을 읽는다.

하지만 터키에서 그녀는 일마즈의 동생으로부터 박대를 받는다. 상처입은 그녀는 책마저 잊어먹고 거길 떠나게 된다. 남겨진 책은 어쩌다 이스탄불의 중고 책방 사하플라 카르시시(Sahaflar Carsisi)로 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인도로 가던 알베르토는 거기서 그 책을 산다. 4일 후 델리 여행자 거리 파하르간지를 걷던 그는 ‘잭슨’이라는 책방에 멈춰 마르케스의 <Love…>를 팔고 <Vikram Seth>를 산다. 그리고 그날 저녁 <Love…>는 기사를 쓴 청년의 손으로 들어간다.(간추려 말하면 여행자의 거리 빠하르간지에 가면 역사가 있는 책을 구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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