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김영택의 펜화기행 12- 보신각

문근영 2013. 3. 18. 08:12

제목: 김영택의 펜화기행 12- 보신각
분류: 칼럼
이름: 8.김영택





1890년대의 보신각.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지요.


1890년대 이전의 보신각, 전차가 다니기 전 모습입니다.


사람 그리가 참 힘듭니다. 흐릿한 사진으로는 제대로 그리기 힘듭니다. 그래서 몇명만 그렸습니다.


보신각 정면


보신각 후면


이승만 대통령이 쓴 현판

보신각

  시계가 없던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은
종각(鐘閣)에서 치는 ‘인경’소리가 하루의 시작과 끝이었습니다.
먼동이 트는 새벽 4시 파루(罷漏)라 하여 종을 33번 쳐서 4대문과 4소문을 열었고,
저녁 10시에는 종을 28번 쳐서 인정(人定)이 되었음을 알려 통행을 금하였습니다.
종각의 종을 ‘인경’이라 부른 것은 ‘인정’이란 말이 변한 것으로 봅니다.

  종각은 태조 5년(1395) 지금의 인사동 입구에 2층 누각으로 세웠는데
태종 13년(1413)에 운종가(雲從街-지금의 종로) 네거리로 옮깁니다.
세종 22년(1440) 동서 5칸, 남북 4칸 건물로 크게 고쳐짓고
위층에 종을 달고 누각 아래로는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게 합니다.
그래서 종로(鐘路)란 이름이 생긴 것입니다.

  처음에는 종루에 물시계를 설치하였으나 정확하지 못하여
세종 19년(1437) 부터 경복궁 안의 자격루에서 잰 시간을 기준으로 하였답니다.

  종소리가 멀리 들리지 않는다 하여 남대문 등에 종을 달았으나
서로 다른 시각에 타종을 하여 혼란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인정종을 친 후 통금위반으로 잡히면 시간이 늦을 수록 매의 수가 많았습니다.
물론 새벽에는 매의 수가 꺼꾸로 계산되었지요.
  
  세종 때 지은 높고 우람한 종루는
임진왜란 때 종과 함께 불에 타 없어져
광해군 11년(1619)에 종각을 새로 짓고
세조 14년(1469)에 만든 원각사(圓覺寺)종을 옮겨 답니다.
이 종은 목숨이 끈질겨 숙종 12년(1685)과 고종 6년(1869) 때의 화재에도 살아남고,
6.25동란 폭격에도 목숨을 유지합니다.

  종각은 고종 32년(1895) 보신각(普信閣)으로 이름이 바뀌고,
순종 3년(1909) 일제가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였으나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국민들은
보신각종을 하루 종일 울려서 해방의 기쁨을 만천하에 알립니다.

  높이 3.69m, 무게 19.66톤의 거대한 원각사 종은 여러 차례의 병화에 손상이 가고,
소리도 변하여 1985년 8월 15일 현대식 디자인의 새 종에게 임무를 넘기고
517살의 나이로 은퇴를 합니다.

  새 보신각은 세종 때의 규모와 같이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누각으로
제법 그럴듯해 보이지만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쓴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종로 지하철 공사 중 세종 때 세웠던 종각의 주춧돌이 발견되어
같은 크기로 복원한 것입니다.
옛 모습과 크게 다른 점은 없던 기단과 난간이 생긴 것입니다.
경복궁에 가면 옛 주춧돌을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컬럼에 몇자 더 적었습니다.

출처 : 청정남
글쓴이 : 청정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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