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봉사 대웅전
세계 최고의 목조건축 기술을 지닌 우리 조상들은
요즈음 건물 20층 높이와 같은 황룡사 9층 대탑을 비롯한 여러 목탑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많은 전란으로 모두 불타버리고
임진왜란 후 중건한 법주사 팔상전(八相殿)과 화순 쌍봉사(雙峰寺) 삼층목탑만 남았습니다.
5층탑인 팔상전은 지붕의 넓이가 위로 올라가면서 급하게 줄어들어
경주 남산 바위에 새겨진 마애탑이나 우리 선조들이 일본에 세운 목탑과는
사뭇 달라 보입니다.
이에 비해 쌍봉사 3층탑은 지붕의 넓이가 수직적으로
우리 탑다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쌍봉사는 신라 경문왕 때 도윤(798~886)스님이 창건한 큰 절입니다.
임진왜란에 소실된 후 인조 6년(1628)에 중건 했습니다.
목탑은 1690년에 중건하고 1724년에 큰 수리를 하여 대웅전으로 이용하던 중
1984년 화재로 전소됩니다.
이때 동네 농부가 불길 속에서 불상 3구를 구해낸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장정 4명이 간신히 들 수 있다는 석가모니불을
아들과 둘이서 업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그 덕에 협시불인 가섭존자의 아름다운 미소를 볼 수 있습니다.
‘염화미소’라 하는데 부처님이 제자들 앞에서 꽃 한 송이를 들자 다른 제자들은 아무도 그 뜻을 못 알아차렸는데 가섭존자 만이 빙그레 웃어 답하였다는 뜻입니다.
수제자인 가섭존자의 높은 수행정도를 부처님도 크게 인정을 하여
남루한 옷에 냄새가 고약한데도 의자에 함께 앉도록 하였답니다.
부처님을 구한 농부는 돌아가시고 그 아들(47세)은 살아있는데도
농부의 꿈속에 부처가 나타나 “절에 불이 났으니 빨리 가라”고 했다는 것은
주지스님 주장이고,
소설가 정찬주씨는 “대웅전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뛰어왔지, 꿈은 무슨 꿈이냐”고
다른 말을 합니다.
쌍봉사가 좋아 오래 전부터 절 앞에 사는 정찬주씨의 주장이 맞을 것 같습니다.
주지스님이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다행히 1962년 해체 수리 때 만든 실측도가 있어 1986년 다시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해체 때 발견한 대로 3층 지붕을 팔작지붕에서 사모지붕으로 바꾸고
상륜부를 올려 탑다워 졌습니다.
그러나 보물 지정은 해제가 ?습니다.
그림은 1910년대의 사진을 바탕으로 그렸습니다.
가난하고 힘들던 때의 모습입니다.
절 마당이 온통 밭이고 논입니다.
잡초가 우거진 마당 구석에 요사채로 지은 초가건물도 보입니다.
도윤스님은 중국에서 큰스님으로 인정받은 스님으로
귀국하여 쌍봉사를 창건하고 높은 능력을 인정받아 국사(國師)가 됩니다.
당시 쌍봉사는 구산선문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컸습니다.
그러나 조선조 후기로 들어서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보존하기 어려워진 목조불상들을 장성 백양사로 보냅니다.
전임 주지인 관해스님이 부임하여 절을 크게 되 살려 놓았습니다.
그 덕에 송광사 말사 중 쌍봉사 주지 자리가 높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새 주지인 영제스님은 송광사 재무스님을 겸하고 있습니다.
재무스님은 큰 절의 돈 관리를 맡은 스님으로 보통 주지의 오른팔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쌍봉사에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감(澈鑑-도윤)스님의
부도(浮屠-고승의 사리를 넣은 돌탑)가 있습니다.
구례 연곡사 동부도와 쌍벽이라 하지만 철감선사 부도를 더 쳐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국보 제57호로 보물 제 170호인 철감선사 부도비가 함께 있습니다. 앞발을 들고 힘차게 걸어 나가려는 듯한 거북이의 모습이 참 좋습니다.
쌍봉사는 펜화가가 사랑하는 절입니다.
화순 운주사와 묶어서 답사를 하셔도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