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김영택의 펜화기행 8- 석파정

문근영 2013. 3. 14. 00:55

제목: 김영택의 펜화기행 8- 석파정
분류: 칼럼
이름: 8.김영택






석파정 사랑채 부속건물인 벽돌 건물을 제 자리에 복원했습니다.
벽돌 건물을 잘 보이게 하려고 소나무의 키를 약간 키웠습니다.



석파정 사랑채와 노송. 부속 건물이 옮겨가 보이지 않습니다.
석파정에서도 부속 건물의 위치를 잘 못 알고 있다가
내가 찾은 사진을 보고서야 제 위치를 알게 되었답니다.



석파정 전경(2006년 촬영)
좌측이 사랑채, 우측 앞이 안채, 안채 뒤 언덕에 있는 건물이 별당채입니다.



석파정 안채로 ㅁ자 건물입니다.


별당채로 올라가는 입구의 벽돌로 모양을 낸 홍예틀입니다.


별당채로 제일 높은곳에 있습니다.


석파랑으로 옮겨진 사랑채 부속 건물로 청국 기술자가 지었답니다.


소치실록에는 '수각'이라고 했으나 후에 '유수성중관풍루'라 이름을 고친것으로 보입니다.
바닥이 2평 남짓한 작고 예쁜 정자입니다. (2006년 촬영)
주변에 마삭줄 등 야생식물을 많이 심어서 별천지 같습니다.
김흥근이 살때도 기화요초가 많았다고 합니다.



손재형의 저택에서 식당으로 변한 석파랑 안마당
제가 사진을 찍은 자리 뒤에도 큰 건물이 또 있습니다.
경매 때 분할되어 개인이 산답니다.



석파랑에서 제일 좋은 방
점심이 1인당 4만5천원, 저녘이 10만원에서 15만원입니다.


 

석파정


   조선조 말 한양 최고의 별장은 자하문 밖 ‘삼계동정자(三溪洞亭子)였습니다.

인왕산 수려한 계곡에 차일을 친 듯 넓게 퍼진 소나무를 중심으로

안채, 사랑채, 별당에 정자가 4개나 있어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답니다.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의 별장으로

현대루(玄對樓)란 사랑채에 월천정(月泉亭)과 육모정(六茅亭) 외에도

청국 기술자가 벽돌로 지은 사랑채 부속 건물과
동판으로 지붕을 올린 이국풍의 작고 예뿐 수각(水閣-流水聲中觀楓樓)이 있었습니다.

  

   남종화의 대가 소치의 ‘소치실록’을 근거로 하였기 때문에

건물의 숫자나 이름이 다른 기록과는 다를 것입니다.

소치는 삼계동정자에서 김흥근의 환대를 받으며

서화에 대하여 수준 높은 담론을 하였다고 하니

김흥근의 학식과 미적 안목이 높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동김씨 가문 중 ‘장동김씨’로 권력의 정상에 있던 김흥근이

큰 재산과 정성을 들여 가꾼 삼계동정자를 대원군에게 빼앗깁니다.

김흥근은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임금의 아버지가 정사에 참여하면 안된다.’며

대원군을 배척합니다.

결국 권력을 잡은 대원군은 미운털이 박힌 김흥근의 재산을 빼앗으며

“삼계동정자를 사겠다.”고 합니다. 

김흥근이 거절하자 “하루만 빌려 달라.”고 청합니다.

당시 별장 주인에게 ‘빌려 달라.’면 빌려주는 것이 한양의 풍습이었기에

마지못해 허락을 합니다.

정자를 빌린 대원군은 고종을 불러 하룻밤 묵도록 합니다.

왕이 묵은 곳에 신하가 살 수 없는 법이라 삼계동정자는 결국 대원군의 수중에 들어갑니다.

  

   대원군은 삼계동 별장에서 바라보는 북악산과 북한산의 바위 모양을 따서

자신의 아호를 ‘석파(石波)’라 짓고 별장 이름을 ‘석파정’으로 바꿉니다.

현재도 석파정, 또는 ‘대원군별장’이라 합니다만

대원군이 지은 건물은 없고 약탈만 했으니

원래대로 ‘삼계동정자’라 하거나 ‘김흥근 별장’이라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삼계동정자는 이후 대원군의 후손에게 물려오다 남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1958년 서예가 손재형이 벽돌로 정교하게 지은 사랑채 부속 건물을 매입하여

계곡 아래 홍지동 125번지로 옮겨 놓습니다.

지금은 ’석파랑‘이란 식당의 별채가 되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합니다.

벽돌 건물이어서 제자리로 옮길 수 없다면 새로 짓는 것은 어떨까요.


   손재형은 덕수궁 돌담, 운현궁, 선희궁, 박영효와 김옥균 가옥이 철거될 때마다

재료를 사모아 크고 멋진 집을 짓습니다.

현재 한정식식당 ’석파랑‘의 본채와 식당 앞 큰 고가가 모두 손재형의 저택이었습니다.

  

   손재형은 서예와 골동으로 큰돈을 벌어
추사의 ‘세한도’를 일본에서 찾아오기도 하고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택을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 한국 최고의 주택도 결국 경매에서 나뉘어 팔립니다.

권력과 재물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많은 분들이 한식당 ‘석파랑’을 석파정으로 착각을 합니다만
석파정은 고개위로 두 정거장을 올라가면 터널 입구 좌측 언덕에 있습니다.

  

  석파정은 대지가 만 3천여 평에 달하며 숲이 우거져있어
서울에 이런 곳이 남아있나 싶을 정도로 한적합니다. 
부채관계로 소송에 걸려있는 석파정을 나라에서 사들여
없어진 건물도 복원하고 새로 가꾸면 도심 속의 명소가 될 것입니다.   


   석파정 사랑채 옆 소나무 뒤에 있던 벽돌 건물을 제자리에 펜화로 복원했습니다. 

현재 석파랑에 옮겨 지은 건물은 옛 사진과 다른 부분이 있어 고쳐 그렸습니다.


출처 : 청정남
글쓴이 : 청정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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