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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편지와 우정 [강명관]

문근영 2012. 11. 20. 07:20

제 246 호
편지와 우정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널리 알려져 있듯 담헌 홍대용은 1766년 2월 북경에서 엄성•반정균, 육비와 만나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쌓는다. 담헌의 중국 여행기인연기을병연행록을 보면, 담헌과 엄성 등은 2월 한 달 동안 단지 7차례 만났을 뿐이다. 만나지 못하는 날은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7차례 만남도 필담(筆談)으로 이루어졌으니, 우정은 말이 아닌 글로 문장으로 쌓은 것이었다.

1766년 4월 11일 담헌은 압록강을 건넜고 5월 2일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담헌은 1783년 사망 때까지 18년을 더 살았다. 18년 동안 담헌의 삶을 지배한 것은 엄성•반정균, 육비와의 우정이었다. 담헌의 생각은 온통 북경에 쏠려 있었다. 세 중국인 친구는 절강성 항주 출신으로 과거를 치기 위해 북경에 와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 불합격하자, 모두 항주로 돌아갔다. 담헌이 항주로 편지를 보내기 위해서는 중간에 메신저가 있어야 했다. 북경 매시가(煤市街)에서 점포를 열고 있었던 반정균의 외사촌형인 서광정(徐光庭)과 담헌이 북경에서 돌아오는 중 만나 사귄 손유의(孫有義)가 메신저 역할을 맡았다. 담헌이 황력재자관(皇曆賫咨官)이나 동지사 편에 편지를 보내면, 이들은 서광정과 손유의에게 전했고, 서광정․손유의는 다시 그 편지를 항주로 전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더디가고 더디왔던… 편지에는 그리움 절절해

편지는 더디 갔고 더디 왔다. 동지사가 북경을 갔다고 오는 데 6개월이 걸렸다. 또 북경에서 항주까지 가는 데 몇 달이 걸렸다. 따라서 항주에서 다시 답신을 보내면 꼭 같은 시간이 걸렸으니, 아무리 빨라도 1년을 넘어야 받아볼 수 있었다. 그것도 중간에 메신저를 맡은 사람이 아무런 사고가 없어야 했다. 서광정과 손유의가 다른 지방으로 가 있으면, 편지는 사람의 손을 떠돌다 몇 해를 넘겨 전해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주고받은 편지 중 엄성․반정균, 육비 등으로부터 받은 편지는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담헌이 보낸 편지는 담헌서의 ‘항전척독(杭傳尺牘)’에 실려 있다. 물론 이 편지도 온전히 남은 것은 아니다. 그 남은 편지만 읽어보아도 담헌과 엄성 등의 깊은 우정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담헌은 편지에서 중국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펼쳐내면서 오직 학문과 자기 수양에 힘쓸 것은 권유하고 있다.

담헌은 중국인 친구 중 엄성과 가장 가까웠다. 엄성은 과거에 낙방하자, 고향 항주로 돌아갔고 1768년 복건성에서 학질에 걸려 죽었다. 엄성은 병이 위독할 때 담헌이 예전에 선물한 조선 먹과 향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떠났고, 사람들은 그 먹을 관에 넣어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반정균은 편지를 통해 엄성의 죽음을 전해들은 담헌이 비통해 했던 것을 말할 필요조차 없다. 담헌은 제문을 지어 손유의에게 보냈고, 손유의는 그 편지를 다시 항주로 전했다. 담헌의 제문이 도착한 날은 엄성의 대상(大祥)날이었다. 엄성이 친구의 제문을 기다렸던 것이다.

손으로 쓴 편지의 감동 …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담헌은 엄성이 너무나 그리웠다. 1769년 경 항주로 편지를 보내 엄성의 유고(遺稿)와 초상화를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뒤 1778년 이덕무가 북경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손유의를 만나 항주에서 온 유고와 초상화를 받아온다. 담헌이 부탁하고부터 꼭 10년이 걸린 것이었다.

매일 아침 이메일을 열어본다. 스팸메일이 가득하고, 중간에 더러 소용이 닿는 메일이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도 담헌이 엄성 등에게 보냈던, 엄성 등이 담헌에게 보냈던 그런 편지는 없다. 손으로 쓴 편지를 받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 자 한 자 쓰면서 친구를, 연인을 그리던 그 시간과 설레임은 이제 깡그리 증발하고 만 것이다.

엔터키를 치는 순간 나의 이메일을 지구 반대편까지 전해진다. 하지만 그것을 편지라 부를 수 있을까? 그 속도 속에서 담헌과 엄성의 우정이 있을까? 죽은 친구의 초상을 걸어놓고 그리워하던 그 마음이 있을까? 초가을에 담헌의 편지를 읽는 마음이 무한히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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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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