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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들리는가, 어린 낙엽이 지는 소리가 [유지나]

문근영 2012. 11. 24. 07:16

제 623 호
들리는가, 어린 낙엽이 지는 소리가
유 지 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 고풍스런 낙엽. 도처에 널린 아름다운 가을 풍광 속에 사노라면 시몬과 구르몽이 떠오른다. 아마도 오래전 익힌 구르몽의 시 <낙엽>의 연쇄작용 효과일 것이다.

“시몬, 너는 좋으니 낙엽 밟는 소리가” 라며 말거는 이 시는 기막힌 운치로 낙엽과 삶을 하나로 돌린다. 땅 위를 구르는 낙엽, 그건 바람을 타고 왔다가 가는 인생을 성찰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을이면 구르몽의 인생 낙엽론을 음미하며 가을편지라도 쓰고픈 욕망에 잠긴다. 그런데 낙엽보다 먼저 떨어져 땅위를 구르는 청소년 자살 소식이 가을편지로 가슴에 꽂힌다.

금메달 행진과 경제력으로 상위권에 속한 걸 과시하고 ‘강남스타일’ 말춤으로 세계를 즐겁게 하는 한국. 그런 한국이 자살률에서 고공행진을 벌이는 점은 모순의 극치이건만, 더 이상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이 좋은 가을날, 가을편지로 날아든 청소년층 자살률 급증 소식은 보고 또 봐도 아프고 충격적이다. 10년간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인데, 두 배로 급증했다. (2000년, 13.6%->2010년, 28.2%). 이들을 지도하는 초·중·고 교사의 자살률도 지난 2년간 두 배로 급증했다. (교육과학 기술부 자료, 2010년 17명->2011년 31명). 얼마 전 특수 고등학교와 교원 연수 특강을 다녀온 탓일까? 배우고 가르치는 이들이 맞물려 푸르른 잎조차 피우지 못하고 낙엽보다 먼저 떨어지는 사회란 지독하게 병든 것임을 가슴 저리게 실감한다.

잇따른 청소년 자살… 바라보기도 너무나 가슴 아파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바로 직전, 9월 23일 청소년공동체 ‘희망’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추모의식을 거행했다. “더 이상 우리를 죽이지 마라”는 호소를 하면서. 청소년 자체 조사에 따르면, 경쟁위주 입시제도, 청소년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이 자살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만난 청소년의 유사한 상황이 떠오른다.

좀처럼 인도영화를 수입하지 않는 한국에서 청소년층의 폭발적 인기에 눌려 뒤늦게 개봉한 <세 얼간이>를 되새겨 보자. 40만명 지원자 중 200명을 뽑아 최고로 돈 잘버는 공학인재를 길러내는 명문 공대가 무대이다. 학장은 신입생들 앞에서 ‘뻐꾸기-인생경쟁론’을 주입시킨다. “너희들이 합격하면서 떨어트린 지원자들은 뻐꾸기 둥지에서 떨어져 깨진 알들이며, 모든 이를 딛고 승자만 우뚝 솟는 경쟁력 향상에 매진하라”는 것이 교육철학이다. 이런 경쟁판에서 조이와의 만남은 란쵸에게 경쟁하지 말고 자기 식으로 살기 정신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다. 기계에 미쳐 이곳에 온 조이는 헬리콥터를 만들지만 제출기한을 못 맞춰 절망한다. 학점과 상관없이 강의를 듣다가 선배 조이를 알게 된 란쵸는 그가 기숙사 한 구석에서 절망스럽게 젖어 노래하는 모습을 엿본다. “ 내가 살아온 인생/다른 이들의 삶/단 한 순간만이라도/ 삶이란걸 살게 해주오/내게 햇빛을 내려줘, 비를 내려줘.” 그의 절규를 들은 란쵸는 친구들과 밤새워 조이의 헬리콥터를 완성해 다음 날 그의 방에 날려준다. 헬리콥터를 따라 카메라가 올라가 잡은 그의 창문, 그 안에서 목매어 자살한 조이의 모습이 잡힌다. 조이의 장례식에서 란쵸는 학장에게 따진다. 그건 자살이 아니라 당신이 죽인 것 이라고. 유사한 상황이 <죽은 시인의 사회>에도 나온다. 명문사립고 웰튼 아카데미, 연극을 하고픈 페리는 아버지 몰래 오디션을 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페리를 강제로 엘리트 군사학교로 전학시킨다. 자신이 생각하는 출세로 가는 길에 아들을 집어넣은 것이다. 페리는 죽음을 선택하고, 이를 부추겼다는 이유로 로맨스 인생론을 가르친 키팅 선생은 파면 당한다.

물론 이건 허구 영화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직면하는 청소년 죽이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청소년은 판도라 경쟁 상자에 갇혀있다. 경쟁을 덮고 자신의 기질대로 살아갈 재미를 배우는 교육을 누가 세워나갈 것인가? 어른들 역시 인센티브 경쟁 구조 속에서 살아가기에, 앞으로 더 그런 세상이 될 것이란 짐작에, 다음 세대에게 경쟁으로 줄 세우기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것일까? 대선을 앞둔 가을, 온갖 희망이 공약으로 나부낀다. 그 가운데 청소년을 경쟁 상자에서 꺼내주는 정책과 전략이 발생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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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 <2005 동국대 명강의상> 수상.
· 저서 :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 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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