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현산(玆山)과 다산(茶山) [박석무]

문근영 2012. 11. 18. 06:43

현산(玆山)과 다산(茶山)

그때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귀양살고 정약용은 다산(茶山)에서 귀양살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정약전은 강진의 신지도(薪智島)에 있었고, 정약용은 포항시 곁의 장기(長鬐)에 있었건만, 「황사영백서」사건 이후로 재차 감옥에 갇혀 다시 국문을 받고, 혐의가 없자 귀양지만 바꿔 같은 전라도에서 지냈습니다. 유배 초기 이때는 신지도와 장기의 참으로 멀고 먼 거리, 전라도와 경상도에 나뉘어 살면서 형과 아우가 서로를 못 잊어하던 심정은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렵고 힘든 아픔이었습니다.

땅은 이쪽 저쪽의 끝에 있기에 天地共天涯
같은 해 아래서 만나지 못 한다네 人從日下疎
하늘 땅 사이 눈물어린 두 눈 乾坤雙淚眼
몇 줄 서찰로 안부나 묻고 마네 存沒數行書
……

모진 괴로움 왜 없으리오만 豈能無苦毒
오히려 평안하다고만 하셨네요 猶自報平安
그 얼굴 그 모습 뒷세상에나 뵈울까요 顔髮他生見
지난해는 그래도 전원에서 서로 즐겼는데 田園去歲歡
천석(千石)의 술 마신다 해도 縱饒天石酒
마음 속 맺힌 한풀기가 어렵습니다 難使此心寬 (得舍兄書)

신지도에서 보낸 형님의 편지를 받고, 다산이 가눌길 없는 형제애를 읊은 비탄의 시입니다. 귀양살이 시작 후 2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를때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못 뵙고, 뒷세상에서나 뵈울 수 있을까의 절망, 그래도 그들 형제는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보내온 편지에 술이나 실컷 마시며 세월을 보내자는 제안에도, 다산은 천석의 술을 마신다 해도, 이 쓰라린 마음이 풀리겠느냐 라는 답 속에, 그들 형제의 아픔이 통째로 담겨 있었습니다.

뒷날 다산과 현산에 흩어져 귀양살면서, 정약전은 아우를 다산이라 호칭하고, 아우는 형님이 살아가던 곳을 현산이라고 호칭했습니다. 지난 주말, 실학기행에 함께한 우리 일행 90여명은 현산·다산의 아픈 마음을 몸으로 느껴보려고 유적지 답사를 떠났습니다. 흑산(黑山)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다산은 검을 현(玆)이라는 글자로 바꿨습니다. 그래도 어음이 덜 무섭고, 덜 두렵다는 의미에서 현산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두 형제가 주고받은 글에는 언제나 ‘현산’, ‘다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절해의 고도 현산, 16년의 귀양살이에 누가 그곳을 찾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다산은 글 마다에서, 육지에서 사는 고통이 이러할진데, 외딴 섬에서 살아가는 형님의 고통은 얼마나 심할까를 근심하고 걱정했습니다. 신안군 흑산면 사리(沙里)의 「사촌서실(沙村書室)」의 마루에 앉아 우리 일행은 현산의 아픔과 고통, 아우를 그리던 애절한 마음을 새겨봤습니다. 다산초당의 마루에 앉아서 멀고 먼 바다 속의 움막에 앉아 아우를 그리는 형님의 마음을 헤아리던 다산의 마음도 읽어보았습니다. 잘못된 권력은 그렇게도 무섭습니다. 그런 천재 학자들을 묶어 놓고, 자신들은 부귀영화 누리기에 여념이 없던 그 당시 집권세력의 폭압정치에 저주와 증오를 보내지 않을 자 누구일까요.

이 땅에 다시는 그런 비극의 정치가 없어야 할텐데, 예견하기 어려운 미래, 오늘의 돌아가는 정치를 보면서 마음이 우울한 것은 저만의 마음일까요.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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