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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중해를 건너는 법 [조상호]

문근영 2012. 11. 12. 00:13

제 621호
지중해를 건너는 법
조 상 호 (출판인)

몇년 만에 작심하고 휴가를 강행했다. 8월 하순을 원초적인 태양이 작열하는 스페인에서 보내는 용기를 부렸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히트한 광고카피를 빌미삼아 이제라도 다리에 힘 있을 때 길을 나섰다. 국립박물관 고위과정의 늦깎이 학생인 아내의 학부형 자격으로 유럽미술 현장학습에 동참할 수 있었다. 피카소•달리•미로•벨라스케스•고야•보쉬의 그림과 가우디의 예술건축이 공부대상이었다. 알량한 미술책에서 조악한 복사본 그림으로 예술의 허기를 달랬던 그 어렵던 시절을 보상받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쳐들었는지도 모른다.

스페인의 열정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 14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마드리드 공항이 가우디의 곡선의 미학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반긴다. 여기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2시간 만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20년 전 1992년 8월 88서울올림픽 다음의 개최지인 이곳의 도심중앙에 얌전하게 자리한 몬주익 언덕을 가로지르며 마라톤 금메달을 향해 내품었던 황영조의 거친 숨결이 귀에 닿는 듯하다.

버스로 1시간을 달려 톱니모양의 산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몬세라트 수도원에 다다랐다. 가우디가 이 산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것도, 카사밀라, 구엘 공원과 150년째 짓고 있는 성가족 대성당을 둘러보면 빈말은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 마이산을 닮은 말귀모양의 우뚝 솟은 바위 위에 휘날리는 분리독립을 외치는 카탈루냐 문장이 선명하다. 전통적 투우의 광기가 그대로 옮겨온 축구열풍도 이와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가 맞붙는 날이면 한일전 몇 배의 긴장과 환호가 터진다고 한다. 분리독립을 오랫동안 외치며 카탈루냐 문자도 따로 배우는 바로셀로나의 자존과 분노가 함께 하기에 더욱 그러리라 싶다.

돌산 위의 검은 성모상

이런 척박한 바위투성이의 돌산에 수도원을 건축한 그들의 신앙심이 경외로울 뿐이다. 이곳은 베네딕투스 수도원으로 나폴레옹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보존한 검은 성모상을 모시고 있다. 이 영험한 성모상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참배객의 줄이 끝이 없다. 튼튼한 유리관을 뚫고 봉긋하게 내민 성모 마리아의 오른손 손등은 수많은 기도의 화답처럼 반질반질했다.

대성당 앞의 성모 조각상의 눈길과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여러 각도에서 볼 때마다 눈길이 따라오고 표정이 변화한다. 천년 전의 작품인데 그들은 3D화면구성을 이미 터득했단 말인가. 피카소미술관에서 체험한 그림 속의 침대는 보는 위치에 따라 늘기도 하고 줄기도 했다. 어렵게 찾은 달리미술관에서는 치밀한 사실주의와 눈속임 기법에 다빈치가 20세기에 현현한 것 같았다.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된 벨라스케스 작품 시녀들도 그림 속의 화가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누가 객체인지 누가 주체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레이나 소피아미술관은 피카소의 게르니카 한 작품을 위한 미술관 같다. 가로 7.8미터 세로 3.5미터의 초대형 거작 앞에 숨이 막힌다. 전쟁의 부조리에 울부짖는 인간의 절규가 핏빛색 하나 없이 검은색 톤만으로도 장엄하게 울림과 떨림을 준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위하여

유럽 사람들은 피레네 산맥의 서편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을 유럽이라 부르지 않으려 한다. 가톨릭이 이슬람에게 지배당했던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스페인 남부에는 가장 로마네스크한 성당과 가장 아라베스크한 예술이 혼재해 있다. 그 중심에 석류의 붉은색이 투영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 그들의 고향 지중해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이 지중해를 건넌 것은 종교전쟁보다는 사막을 건너 유럽대륙에서 오아시스를 찾으려는 염원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지브롤터 해협까지의 지중해 물길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3,100미터의 만년설이 뒤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향해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북진했음에 틀림없다. 그 산 아래 만년설이 녹아내린 헤닐강의 물길을 이용해 물의 궁전을 세운 것이다. 그들은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의 대항해를 지휘하고 무적함대의 영광을 구현한 이사벨라 여왕에게 성을 내주고 다시 지중해를 넘어 북아프리카로 돌아가기까지 250년 동안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지는 이슬람 예술의 결정체를 구가했다. 그리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클래식 기타의 선율로도 지중해의 푸른 물결과 함께 꿈꾸듯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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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상호

· (주)나남출판 대표이사
· 나남수목원 이사장
· 고려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 지훈상 상임운영위원
· 저서 : <언론 의병장의 꿈>
<한국언론과 출판저널리즘>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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