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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케팅의 두 얼굴 [염재호]

문근영 2012. 10. 28. 06:34

제 616 호
마케팅의 두 얼굴
염 재 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종종 회의 중에 진동으로 해 놓은 휴대폰 전화가 울리곤 한다. 무시할까 하다가도 혹시 급한 일인가 하여 밖에 나가서 받아 보면, “안녕하십니까? VIP 고객님...” 하는 마케팅 상담원의 목소리가 튀어 나온다. 아무리 목소리가 친절하고 상냥해도 반가울 수만은 없다. 마치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초인종을 누르고 불쑥 찾아온 낯선 방문객과 마주 선 느낌이다. 휴대폰이 보편화되면서 휴대폰을 통해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의 사적 공간을 침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발신자 이름을 확인하고 아는 전화만 받든지, 아니면 우선 문자로 내용을 전달하고 나서 전화를 걸어야만 받는 경우가 점점 더 보편화되는 추세이다.

상품판매에만 급급한 고객감동의 마케팅

자신이 판매하는 물건을 많이 팔아야 하고 그 업적은 매우 정교하게 평가되어 금전으로 환산되기 때문에 시장주의는 극대화된 효율을 지향한다. 그래서 마케팅은 인간의 심리까지도 분석해서, 고도로 정교한 방법과 집요한 수단을 활용하여 고객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소비자는 왕”에서 시작하여 “고객만족”으로 발전하고, 이제는 “고객감동”이라는 표현까지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고객을 배려하는 이러한 마케팅은 상품을 판매할 때에만 적용되는 것 같다.

올해 초부터 온 가족과 함께 중국 북경대학에서 일년 동안 연구년을 보내게 되어 지난해에 그 동안 사용하던 몇 가지 상품서비스를 정리하고 오랜 기간 구독하던 신문도 정리를 했다. 그런데도 호텔 멤버십 카드 갱신하라는 전화는 국제전화로 연결되었다는 메시지에도 상관없이 북경으로 끊임없이 걸려온다. 선거기간에는 설문조사 전화와 이메일이 또 끊이지 않고 찾아 들었다. 이미 구독료를 다 내고 정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은 고객의 요청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배달되었다. 두 달 이상이 지나 수차례 다시 중지를 요청하자 그럼 한달치의 구독료라도 더 내라고 해서 그걸 내고서야 겨우 중지가 되었다. 배달이 멈추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지난 달부터 신문배달이 계속되었다. 가끔 서울에 일을 보러 오면 아파트 앞에 이삼일치의 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다. 안으로 들여 놓으면 또 구독료를 내라고 할 것 같아 그대로 놓아두면 며칠 뒤 지난 것은 치워버리고 새로 신문을 배달한다.

집요한 마케팅은 소비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신문구독사절’이라고 써 놓아도 소용이 없다. 마치 숨바꼭질하듯 신문은 배달되고 며칠 후 지난 것은 치워지고 다시 새 신문이 배달되곤 한다. 여름 휴가철이 되어 신문이 문 앞에 수북이 쌓이면 빈집처럼 보일 것 같아 걱정이 되어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하고 신문배달 중지를 요청했다. 상담원은 “고객님! 불편을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배달이 안 되게 보급소에 연락하겠습니다.”라고 친절하게 답을 주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새 신문은 문 앞에 삐쭉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러면 다시 전화를 걸고, 상냥한 답은 반복되고, 일주일 내내 신문과 숨바꼭질하며 전화를 했다. 결국 소비자보호원까지 들먹이며 야단을 치고 나서야 신문이 오질 않았다. 신문이 드디어 배달되지 않은 첫날 다시 북경으로 돌아오면서 마약보다 끊기 어려운 질긴 마케팅의 집요함에 손을 들었다. 이제 아무리 감미로운 마케팅을 해도 다시 종이신문을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귀국하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신문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종이신문의 종말이 더 빨리 다가오는 것 같은 안타까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종종 대기업조차도 상품에 문제가 있을 때 리콜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반품하는 것을 마지못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신문사처럼 대기업들도 마케팅을 위탁경영하면서 소비자들이 엄청나게 시달리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상품개발이나 상품을 판매할 때보다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집요한 마케팅보다 친절한 마케팅으로 고객을 감동시켜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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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염재호
·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고려대 법대 졸업
· 미국 스탠포드대 정치학박사
·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
· 한국정책학회 회장 역임
· 저서 : <딜레마 이론>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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