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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유의 꽃으로 피어난 아웅산 수치 [유지나]

문근영 2012. 10. 25. 07:34

제 615 호
자유의 꽃으로 피어난 아웅산 수치
유 지 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폭염을 일용할 양식처럼 먹는 와중에 <더 레이디>를 보았다. 아웅산 수치의 극적인 삶을 담아낸 영화이기에 여성관객과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뉴스에서 간간히 접하던 그녀를 두 시간에 걸쳐 바라보는 것. 그 자체가 특별한 감정구조를 만들어낸다. 영화가 끝난 후 눈물 어린 관객의 얼굴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나 역시 그중 하나다.

양자경이 열연한 <더 레이디>를 보노라니 눈물이

이 영화를 보노라면 왜 눈물이 나는 걸까? 홍콩 액션영화 황금기 ‘예스 마담’이었던 양자경의 변신이 감동적이어서? 가정주부라는 사적인 삶보다 조국 민주화에 인생을 건 여성에게 감동을 받아서? 버마였던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의 고통과 아픔이 남의 일이 아니어서? 답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 가운데 내 마음을 깊이 관통한 것은 자유와 평화로 피어나는 여성의 존재감이다. 남성 영웅이 넘쳐나는 영화세상에서 위대한 여성을 만나는 건 매우 희귀한 일이니까 말이다.

아주 어린 시절, 두 살 때, 아버지 아웅산 장군이 딸 수치의 머리에 꽃을 꽂아준다. 귀엽고 사랑스런 딸에게 보여준 자연스러운 부성애이다. 곧 이어 그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암살당한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흘러 영국에서 남편과 두 아들 뒷바라지를 하며 살던 가정주부의 삶은 급변한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고향에 잠시 돌아온 것이 그녀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어머니를 간호하며 그녀는 민주화 운동으로 죽어가는 청년들을 목격한다. 마침 뜨겁게 달아오른 민주화 투쟁 열기 속에서 그녀가 함께 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세력도 있다. 총선결과도 무시하는 군부독재 치하에서 가시밭길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 임종 후, 남편과 두 아들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간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가족에 헌신하는 여성의 삶은 도처에 널려있다. 위대한 남성 뒤에서 여성이 누군가의 아내로, 어머니로 존재하는 걸 칭송하는 세상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녀는 모국에 남기로 한다. 영국으로 떠나면 군사독재 정권이 그녀가 모국으로 돌아올 기회를 박탈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결단의 순간이다. 가족을 챙길 것인가? 아니면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건 이들과 함께 할 것인가? 바로 이 순간의 결단으로 그녀는 민주화의 꽃씨로 거듭난다.

민주화와 자유에 대한 그녀의 연설, 평화의 꽃을 꽂고 나선 그녀의 존재감은 총선승리에 큰 기여를 한다. 그러나 총선 결과도 무시하는 군부 독재정권은 그녀를 가둔다. 이후 그녀는 15년간 가택연금을 당한다. 영국 가족과의 만남도 봉쇄된다. 전화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감금과 감시 상태에 놓인다. 노벨평화상을 아시아 여성 최초로 수상하지만 그 자리에도 당연히 참석할 수 없다. 그런 압박 속에서도 분명한 것은 자유를 위한 투사로서의 진화이다. 그 상징으로 그녀는 늘 머리에 꽃을 꽂는다. 때론 난꽃으로, 때론 장미로 그녀의 검은 머리에서 피어나는 꽃은 단순한 머리 장식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양심의 아름다움, 자유로운 정신의 피어남으로 고귀한 경지를 보여준다.

독재권력과 공포가 가둘 수 없는 민주화와 자유

영화 막판에 등장하는 나이든 그녀의 자태, 양자경이 재현해내는 주름이 성성한 자애로운 모습의 화룡점정은 머리에 한 묶음 두른 꽃들이다. 순간 이라크 파병 직전, 평화집회를 하러 한국에 왔던 틱낫한 스님의 꽃사상이 떠오른다. 그때 그가 전해준 평화로운 꽃사상은 이렇다. “우리는 이 세상에 꽃으로 왔습니다. 당신이 남자든 여자든 어린이든 노인이든, 꽃으로 온 것이지요. 그런데 평화로워야 꽃이 핍니다.” 그 말을 전해주던 평화집회가 <더 레이디>를 보면서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순간 그녀가 영화 속에서 또 현실에서 말하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란 의미가 가슴 깊이 전해온다.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적 상태는 자유로움이다. 그런데 그 자유로움을 방해하는 것은 공포이다. 독재정권은 혹 권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독재권력 치하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유를 추구하다 피해를 당하리라는 공포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거다.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건 피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인해 길들여진 탓이다. 여리고 가냘파 보이는 그녀가 민주화와 자유로움, 평화 투쟁의 꽃으로 피어난 것은 운명적 고통으로 점철된 인생을 풀어가는 마음수련의 힘일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여성의 탄생은 가능하다. 여자라고 좁게 가족에 갇혀 살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녀에게 경배를 돌리며 그녀를 닮고 싶다. 양자경도 그런 열망이 있기에 <니키타>와 <제 5원소>같은 여전사 영화를 만든 뤽 베쏭에게 <더 레이디>를 만들자고 한 것이리라.

[팁] 1. 군부독재가 ‘아웅산 수치’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도 금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레이디’라고 불렀다고 한다.
2. 영화에서 오리엔탈리즘적 경향이 발견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한 관객의 말처럼 그녀의 위대한 존재감과 아름다운 아우라를 양자경의 힘을 통해 느끼는 게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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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 <2005 동국대 명강의상> 수상.
· 저서 :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 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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