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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막판에 등장하는 나이든 그녀의 자태, 양자경이 재현해내는 주름이 성성한 자애로운 모습의 화룡점정은 머리에 한 묶음 두른 꽃들이다. 순간 이라크 파병 직전, 평화집회를 하러 한국에 왔던 틱낫한 스님의 꽃사상이 떠오른다. 그때 그가 전해준 평화로운 꽃사상은 이렇다. “우리는 이 세상에 꽃으로 왔습니다. 당신이 남자든 여자든 어린이든 노인이든, 꽃으로 온 것이지요. 그런데 평화로워야 꽃이 핍니다.” 그 말을 전해주던 평화집회가 <더 레이디>를 보면서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순간 그녀가 영화 속에서 또 현실에서 말하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란 의미가 가슴 깊이 전해온다.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적 상태는 자유로움이다. 그런데 그 자유로움을 방해하는 것은 공포이다. 독재정권은 혹 권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독재권력 치하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유를 추구하다 피해를 당하리라는 공포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거다.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건 피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인해 길들여진 탓이다. 여리고 가냘파 보이는 그녀가 민주화와 자유로움, 평화 투쟁의 꽃으로 피어난 것은 운명적 고통으로 점철된 인생을 풀어가는 마음수련의 힘일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여성의 탄생은 가능하다. 여자라고 좁게 가족에 갇혀 살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녀에게 경배를 돌리며 그녀를 닮고 싶다. 양자경도 그런 열망이 있기에 <니키타>와 <제 5원소>같은 여전사 영화를 만든 뤽 베쏭에게 <더 레이디>를 만들자고 한 것이리라.
[팁] 1. 군부독재가 ‘아웅산 수치’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도 금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레이디’라고 불렀다고 한다. 2. 영화에서 오리엔탈리즘적 경향이 발견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한 관객의 말처럼 그녀의 위대한 존재감과 아름다운 아우라를 양자경의 힘을 통해 느끼는 게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