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남원의 광한루원을 꼼꼼이 알차게 돌아보기

문근영 2012. 5. 28. 09:28

 

  토끼가 거북이 등위에 올라탄 까닭은 !!!!  ????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 오작교 넘어 광한루의 절경

 

  광한루 정면의 편액.동양위 신익성(東陽尉 申翊聖) 1588~1644의 書. 신익성은 선조임금의 사위이자 상촌 신흠의 아들이다.

 

  광한루    보물  제281호. 이 건물은 1626년 당시 우의정 상촌 신흠의 아우인 남원부사 신감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월랑은 정면1칸 측면3칸(삼단)으로 처음 두 계단은 땅속을, 2단을 올라 인간세상을, 

  마지막 계단 올라 신 선들의 세계에 이르는 형태로 돼 있다.

 월랑 초단에는 코끼리 암수가 월랑 밖을 향하고  있는데, 

 tlas는 하늘과 땅 사이를 받치는 기둥을 버티고 있는 존재)가 지구를 이고 있는 것처럼

 누각을 짊어진다는 뜻이며 신성시되는 장소임을 상징하기도 한다.

 3단 인방위 좌우에는 자라등에 올라탄 토끼로 용궁길을 인도하는 화반을 놓았고

 아래 살창에는 삼지창에 태극문양을 장식하여 광한루의 영원을 기원하며 삿된무리들을 경계하였다.

 

  우측면의 암토끼

 

  좌측면에는 숫놈의 토끼가 거북이 등에 올라타고있다.

 

  코끼리상. 광한루는 신성시되는 공간이며 힘이센 코끼리가 이 누각을 굳건히 지키고 있슴을 상징하는듯!!!

 

  廣寒樓= 中國項乃登   (癸酉孟冬1453년 1513년 1573년 1633년중 쓴것으로 사료됨)

 

  桂觀= 남원유지 강대형1931년書 신미맹하

 

 완월정은 1971년 신축된 수중누각으로 호두각집이라는 형식으로 형조건물이다.

 현재는 춘향제 행사 본무대로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고한다.

 

  삼신섬 (봉래섬-영주섬-방장섬)중 방장섬

 

  열녀춘향사 김태석書 1931년.거북이와 토끼는 바다 물결을 가르며 용궁으로 가느길인지 용궁을 빠져나오는길인지 !??

 정면 중앙칸 화반벽에는 자라등위에 토끼 모양을 조각하여 끼워졌다. 이러한 조각형상은 수궁가에 나오는

자라와 토끼를 상징하는데, 자라는 죽음을 무릅쓰고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로 나오는 충신의 상징이요,
토끼는 번득이는 기지로 용궁을 탈출한 지혜의 상징으로, 동해의 밝은 해가 솟아오르는 희망의 날을,

춘향사를 건립할 당시 암울했던 사회상을 극복하려는 선조들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춘향영정

 

  오작교(烏鵲橋)
하늘에사는 옥황상제의딸 직녀와 미천한 소몰이 견우가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하여 결혼을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게으름으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격리되어 1년에 한번

칠월칠석날 다리도 없는 은하수에서 만나도록하였다.

둘의만남이 너무도 애닯아 이날에는 지상의 까치와 까마귀가 모두 은하수로 올라가 다리를 만들어 둘을

만나게 했는데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다리를 밟고 만나는 견우와 직녀의 눈물이 비를 만들었다.
칠월칠석날이 되면 비가 오고 까마귀와 까치를 볼 수 없는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까치의 머리가 흰것은 오작교가 된 까치의 머리를 견우와 직녀가 밟아 벗겨졌기 때문이라고한다.

 

이 같은 하늘나라 견우와 직녀의 사랑은 신분의 벽을 뛰어 넘는 이도령, 성춘향의 사랑과 흡사하다.
이러한 전설을 지상에 펼쳐놓은 것이 광한루원의 호수와 오작교다.

그래서 오작교는까마귀오(烏), 까치작(鵲), 다리교(矯)자를쓴다.

 

  조롱박 수세미터널

 

  월매집 행랑채

 

  월매집

 

  월매집 부용당. 부용당은 춘향이가 기거하는 별당의 용도로 2칸의 온돌방과 반칸의 대청.

 

 

  장원급제기원단:
『비나이다 비나이다 天地之神 日月星辰 化位同心하옵소서, 무남독녀춘향이가

죄없는 매를 맞고 옥중에 갖혔나이다. 다만 바라옵건데 한양가신 몽룡도령이 장원급제 이루시어

전라감사나 전라어사로내려와 내딸 춘향이를살려주게 하옵소서, 빌고 또 비나이다.』

 

  월매집 행랑채 초가지붕위에는 고두박이 주렁주렁

 

  선취각 편액: 우란 한갑수題   (雲山) 양택술(梁澤述)   2000년 봄

 

  그네.  울타리가 매우 정감이...

 

  광한루  방장섬앞.                                                                                연못가의 비보와 염원의 돌자라

 

  비석군(碑石群) 
 담장밑에는 30기의 비석이 두줄로 나란히 서 있다. 부사, 관찰사. 어사들의 선정비, 선덕비 등이다.

 

광한루원(廣寒樓苑)     명승  제33호   전북 남원시  천거동 78번지 등

광한루원은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가에 월궁<月宮>을 상징하는 광한루와 지상의 낙원인

삼신산<三神山>이 함께 어울려 있는 아득한 우주관을 표현한 한국 제일의 누원<樓苑>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 황희가 광통루<廣通樓>라는 작은 누를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세종 26년(1444)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에 노니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은 달나라 미인

항아<姮娥>가 사는 월궁 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한후 광한루<廣寒樓>라 이름을 고쳤다.

 

세조 7년(1461) 남원부사<南原府使> 장의국<張義國>은 광한루를 중수하고

요천<蓼川>의 맑은 물을 끌어들여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고,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7월 7석날

단 한 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烏鵲橋>을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때 왜군이 남원성을 침공하여 광한루가 불타고 누원이 모두 황폐하였다.
선조 40년(1607)에 작은 누각이 복구되고,

인조 17년(1639)에 남원부사 신감<申鑑>이 현재의 광한루를 복원하였다.

 

정조 18년(1794)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에 방장정<方丈亭>이 건립되었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처소로도 유명하여

1920년대에 경내에 춘향사<春香祠>를 건립하고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畵伯>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端午節>에는 춘향제가 성대히 열린다고 한다.

 

집안 효도여행 일정에 없던 공한루?에  다녀와 아쉬움이 많이 남는데,

다음기회에 좀더 알차고 보람된 광한루원 여행을 기대하며....... 

 

출처 : 참 나를 찾아 산사로의 여행
글쓴이 : 신기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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