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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산과 성호(星湖)가 만났던 봉곡사(鳳谷寺)

문근영 2012. 4. 22. 08:21

다산과 성호(星湖)가 만났던 봉곡사(鳳谷寺)



1795년은 다산의 나이 34세이던 해입니다. 그해 초봄에 당상관(堂上官)이라는 높은 지위의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임명되어 학자 임금 정조와 함께 국사를 돌보며 세상을 온통 변혁시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때인데, 그해 4월 중국사람 주문모(周文謨) 신부가 변복하고 국내로 들어와 천주교의 선교활동을 벌이다 탄로되어 나라가 온통 야단이 났습니다.

그 무렵이면 다산은 이미 천주교와는 손을 씻고 벼슬살이에 전념하던 때인데, 남인 시파들인 채제공이 정승, 이가환이 판서, 다산이 승지의 높은 벼슬에 오르자 노론이나 다른 벽파들 쪽에서는 자신들의 세력 유지와 지위 확보를 위해 이가환과 정약용이 주문모 신부의 영입에 관련이 있다고 상소를 올리며 온갖 모함을 퍼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머리 좋고 학문과 실학에 뛰어난 두 신하를 곁에 두고 온갖 개혁정치를 펴려던 정조는 여론에 밀려 할 수 없이 이가환은 충주목사, 다산은 충청도 홍성지역의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으로 형편없는 좌천의 발령을 내렸습니다.

금정에 이른 다산은 참으로 정성스럽게 그 조그만 지역의 역무(驛務)에 충실히 근무하면서 그 지방에 번성하던 천주교 신자들을 설득하여 제사를 지내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에도 열중하도록 타일러 많은 효과를 보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세력을 잃고 선비의 도(道)나 지키며 학문에나 일삼던 그곳 내포(內浦) 일대의 남인고가(南人古家) 후예들과 접촉하면서 시를 짓고 글을 읽으며 세상을 보냈습니다.

그해 10월 하순 눈이 내리던 초겨울 다산은 당대의 그 지방 학자 목재 이삼환(木齋 李森煥 : 성호선생의 從孫)을 모시고 10여 명의 소장 학자들과 함께 성호선생의 『가례질서(家禮疾書)』라는 책을 교정하고 의미를 파악하는 학술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10월 26일에서 11월 5일까지 장장 열흘간의 기간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산과 성호가 책으로 만났으니, 바로 지금의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에 있는 봉곡사(鳳谷寺)라는 절이었습니다.

당대의 남인 학자들이 모여 성호학을 강론했던 봉곡사, 이제는 아무런 흔적도 없어 너무 쓸쓸하기만 합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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